유독 햇살이 쨍한 날이었다. 이런 날은 어디로든 외출해야 한다며, 무작정 남편과 강남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가는 길에 결정하기로 했다. 편안한 온도와 청순한 하늘을 보니, 이런 날은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가 어울릴 것 같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카페 검색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브런치에 올렸던 글의 조회 수가 순식간에 20,000을 넘어섰다. 어딘가 내 글이 공유된 모양이었다. 숫자가 커질수록 불안감이 밀려왔다. 평소라면 알람만 확인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날은 굳이 어디에 공유됐는지 찾고 싶었다. 끈질긴 검색 끝에 한 플랫폼에서 내 글을 찾아냈고. 그 밑에 달린 수십 개의 댓글을 읽게 됐다. 글을 공감해주는 댓글 속에 지독한 악플도 있었다.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제외하고,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글은 이거다.
- 씨발, 미친년이 지랄하고 있네.
가끔 결혼생활에 대한 글을 썼었다. 많은 글을 올린 건 아니었지만, 여러 플랫폼에 글이 옮겨지곤 했다. 놀랄만한 조회 수를 확인하는 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어떤 식으로 어디에 글이 공유되고 있는 건지 찾아볼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브런치에 달린 댓글만 확인했다. 그날을 싸한 기분에 굳이 찾아본 것이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저런 욕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악플을 읽는 내내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욕이라면 나도 걸쭉하게 할 자신이 있다. 한데 도저히 반격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그는 위로 대신 내가 좋아하는 수제버거 집으로 끌고 갔고, 그 매장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해줬다. 꾸역꾸역 버거를 씹고 또 씹었다. 남편 몫의 탄산음료를 마시고도 부족해, 추가로 음료를 사 마셨다. 그 후에는 대용량 아메리카노까지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나 끝내 햄버거를 소화시키지 못했다.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체한 것이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바늘로 엄지손가락을 깊게 찔렀다. 여드름 속에 곪아있던 피지선이 터지듯. 작은 구멍 사이로 까만 피가 쉼 없이 흘렀다. 그러고도 주말 내내 침대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겨우겨우 힘을 내 버스에 올랐다. 입구까지 사람들이 가득한 시간. 평소라면 휴대전화만 보고 있을 나지만, 그날은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문득 소름이 끼쳤다. 혹시 이중에도 내게 욕을 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기가 생겼다.
다시 그 플랫폼에 들어갔다. 악플러들 아이디를 하나하나 클릭해 그들의 SNS를 보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비공개 계정이거나. 아무런 게시물이 없었다. 그러다 위에 소개한 악플을 쓴 사람의 아이디를 눌렀다. 그의 SNS로 연결됐다. 모두 공개로 해둔 수많은 게시물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까지도 말이다.
꽤 귀여운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 찡긋 윙크하고 있는 셀카를 클릭했다. 커다란 눈과 둥근 얼굴에 화사한 원피스를 즐겨 입는, 어쩐지 목소리 마디마디에서 비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역시 겉모습 따위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군, 싶었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불쾌했던 마음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게시물과 댓글을 꼼꼼히 살폈다. 글의 맥락과 상관없이 욕을 퍼붓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고립된 이들일 것 같았다. 한데 그녀는 꽤 사교적인 듯했다. 동창회, 동호회, 회식, 여행까지. 수많은 사진은 여자가 밝고 환한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임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그녀의 지인 SNS까지 들어가 봤다. 서로의 얼굴과 삶을 아는 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댓글을 쓰는지 알고 싶었다. 글을 하나하나 찾아 읽을 때마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여잔 섬세하고 다정했다. 결혼식, 돌잔치, 생일 등. 가까운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상이 담긴 게시물마다 정성이 가득한 글을 남겼다. 그에 비교하면 정작 본인 게시물에는 댓글이 적은 편인 듯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000에 000이란 글을 쓴 사람입니다. 제 글에 ‘씨발’이니 ‘미친년’이니 하는 욕을 남기셨던데요. 왜 그런 욕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글의 맥락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 같진 않아서요. 이유를 설명해 주시면, 그 이유가 납득이 되면, 제가 올린 글을 삭제하겠습니다.
회사에 도착할 때쯤 나는 저런 글을 쓰고 있었다. 여자에게 쪽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한 배우에 대한 글을 썼다가 악플이 달린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글을 지웠다. 악플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배우의 과거를 언급한 댓글 때문이었다. 스텝을 폭행했다던 그가 끝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절반은 사실인 듯했다. 그래서 지웠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피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읽히면 안 될만한 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여자에게 쪽지를 보내지 않았다. 아무리 따져봐도, 여잔 내게 화풀이를 한 듯했다.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감정과 속내를, 내 글에 배설한 건 뿐이었다. 그런 사람과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계속 저렇게 자신의 공개 계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모른 채. 여기저기에 악플을 쓰고 다니다가. 어느 날 쌓이고 쌓인 악플이 부메랑이 되어 여자에게 날아들길 바랄 뿐이었다.
요즘 ‘n번방’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익명이란 가면 뒤에 숨어서 타인의 고통을 즐겼던 사람이 26만 명이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숫자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대략 5,178만 명이다. 그들의 잔인함에 치를 떠는 사람이 대략 5,152만 명쯤 된다는 얘기다. 부디 그 26만 명의 사람들이 준비되어있길 바란다. 얼굴을 모르는 5,152만 명에게 비난과 욕설을 들어가며 살아갈 준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