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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n 22. 2020

알람을 끄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5시 30분, 5시 35분, 5시 40분, 5시 45분, 5시 50분….


  하나씩 늘려가던 아침 알람이 마침내 개가 됐을 때, 나는 퇴사했다. 사실 마지막 알람에도 귀를 틀어막고 몸을 둥글게 말아,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버릇이 생겼을 때쯤 예견했던 일이었다. 아, 어쩌면 이 회사를 그만 다녀야 할 수도 있겠구나. 물론 ‘인력 감축’이란 이슈를 만들어 보다 신속히 퇴사하게 만들어 준 것은 회사였지만 말이다.



      

  4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관두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택배를 보내는 일이었다. 사실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한 번도 짐을 싸서 나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지간해서는 내 물건을 회사에 두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왜 그랬을까. 책상 위, 서랍 속에는 어떤 이유로 가져온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과자와 티백을 모두 버리고도, 사과 상자를 가득 채울 만큼의 짐이 나왔다. 회사 동료 도움으로 1층에 있는 택배 거래소까지 겨우 옮길 수 있었다.

     

  “명절 선물인가 봐요?”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던 택배 담당 직원이 무게를 확인하며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동료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어쩌겠는가. 하필이면 추석을 앞둔 9월이었고, 또 하필이면 택배소에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상자가 쌓여있었으므로 그런 질문이 나올 법도 했다.

     

  “네. 맞아요. 선물.”


  4년 반이 넘는 회사생활 중에 쌓인 짐을 명절 선물로 둔갑시키자. 직원도 나도 더는 할 얘기가 없어져서는 씽끗 미소만 지었더랬다.     




  그렇게 몇 주가 흘러 마지막 출근을 한 날. 업무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이미 택배로 짐을 보내 놓고도 내가 이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갈 것이 아무것도 없단 사실이 섭섭했다. 허구한 날 내 손목과 스킨십하며 까맣게 그을린 노트북. 언제나 내 발의 쉼터가 되어준 민트색 발 받침대. 끝내 부러졌지만, 덕지덕지 테이프를 붙여 살려낸 노트북 받침대 등. 회사에 대해 미움으로도 회사 소속 물건에 대한 애정을 지울 순 없었다. 차마.      


  얕은 바람에도 휘릭 흔들리는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회사를 나왔다. 신호등 하나. 지하도 하나. 꽤 가까운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음에도 이것들을 건너고 들어가지 않고는 닿을 수 없었다. 가끔 버스를 놓칠 때면 번거로운 퇴근길을 흘겨보곤 했다. 눈앞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두고 곳곳에 신호와 꼬불꼬불 길이 가득한 국도로 돌아가는 것 같아 싫었다. 한데 어쩐 일인지. 마지막 날은 장애물처럼 여기던 퇴근 코스도 일사천리였다. 신호등은 내가 다가오자 파란불로 바뀌었고, 지하도를 빠져나오자마자 타야 할 버스가 눈에 보였다. 평소라면 버스 꽁무니를 향해 내달렸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 습관적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실시간 검색어를 살피다가, 웹툰을 보다가, 의미 없는 연예 뉴스를 훑다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없나 살폈다. 이상했다. 웃긴 게 웃기지 않았고, 놀라운 게 놀랍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뭔가에 몰입하기 힘든 기분이란 걸 깨달았다.      


  이럴 땐 정리가 최고다. 출근하지 않아도 될 내일을 위해 휴대전화 속부터 재정비하기로 했다. 일단 업무와 관련된 회사 앱을 모두 지웠다. 회사 관련 단체 대화방을 모두 나왔다. 개인 메일 계정에 남아있던 업무 자료도 쓰레기통으로 옮겼고, 아침 알람도 껐다. 많은 걸 지우고, 나오고, 취소하고, 꺼버렸으나. 버스는 여전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더는 할 일이 생각나지 않자, 문득 음악이 듣고 싶어 졌다. 검색창에 이런 글을 입력했다.      


  ‘위로되는 노래’     


  기억에 없는 것인지 몰라도 ‘위로’란 단어를 처음 검색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놀랐다. 위로와 관련된 노래들이 페이지가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진 탓이다. 그중 오앤의 <오늘>이 첫 곡으로 흐르는 영상을 클릭했다. 참 익숙한 곡인데, 모든 가사를 곱씹어보니 새로운 노래처럼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음악을 듣다가 영상에 달린 천 개가 넘는 댓글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힘들다. 힘내세요. 우리 행복해져요. 누군가는 하소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위로하는 글들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읽어 내린 글 중에는 꼬장꼬장한 악플 따위는 없었다. 참 다행이었다.



    

  그날 밤 ,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막막한 기분이 까맣게 밀려왔다. ‘시원 섭섭’이란 말이 있던데, 이건 ‘시원 답답’에 가까웠다. 퇴사 후에 해방감을 느끼던 과거와 달랐다. 대출이자, 대출원금, 명절 횟수, 집안 행사 횟수, 보험료, 통신료, 부모님 용도, 이사 등. 내 삶에 깊숙이 파고든 숫자를 헤아렸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하다. 매우 자주 오류가 발생하는 내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계산기를 멈추기 위해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알람을 확인하자. 지우지 못한 알람이 있다. 5분 간격으로 10번이 울리도록 설정해 둔 것이었다. 삭제.      


  뒤척이다 새벽 3시쯤 잠이 들었다. 내일은 누구도 날 깨우지 않을 테니, 오랜만에 언제까지 잘 수 있나 시험해 보기로 한다.


  아무런 꿈을 꾸지 않는 깔끔한 숙면 후,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시퍼런 어둠이 내려앉았다. 설마 시곗바늘이 운동장 한 바퀴를 다 뛸 때까지 자 버릴 걸까.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몸을 달싹이자 인기척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 자고 있다. 당황스러워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침 알람을 끄자, 새벽에 눈이 떠졌다. 눈꺼풀이 가볍다. 다시 잠들 것 같지 않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간다. 그곳엔 사과 상자가 놓여있다. 맞다. 몇 주 전에 회사에 있던 내가, 더는 회사에 없을 내게 보낸 택배다. 조용히 상자를 열어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보낼 때는 꽤 묵직했으나. 정리는 아쉬울 정도로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더는 해야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 새벽. 당분간은 알람 없이도 이 시간에 눈이 떠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지난해 가을, 퇴사한 다음날 쓴 글입니다. 그때는 저런 감정이 오글거리고 낯설어 써놓고 묵혀뒀는데요.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비슷하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그때 감정이 떠올라서 다시 글을 꺼냈습니다. 늘 회사와의 헤어짐을 염두하고 출근하는 직장인이었으나. 갑자스런 이별에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렇지만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감정 옅어지고, 나름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개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쨍한 하늘을 보며 까맣게 밀려드는 막막함에 불안한 분들의, 그런 나날도 빨리 흘러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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