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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ul 04. 2020

그것은 '무좀'일뿐이었다


  그것은 ‘무좀’이었다.     


  얼마 전부터 발바닥이 심상치 않았다. 건조했다가, 갈라졌다가, 끝내 갈라진 틈으로 피가 고였다. 본래 마음 대신 계절을 타는 피부인지라 이번엔 얼굴이 아닌 발바닥이군,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쩍쩍 갈라진 땅처럼 변해가던 발에 통증까지 생겼다. 매일 족욕 후 비싼 보습크림을 발라줬건만, 촉촉해지기는커녕 욱신거리다니.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이거 무좀인데요?”     


  유난히도 희고 매끈한 피부를 지닌 의사 입에서 ‘무좀’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나는 그의 피부보다 밝고 창백한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발바닥에 그런 것이 생길 리 없다. 이건 오진이다.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족욕을 하고, 얼굴용 보습크림을 발에 양보하는 배포를 지닌 사람이다. 믿기지 않아 다시 내 발을 봐 달라고 하려던 찰나, 진료실 앞에서 어린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떤 말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커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맞다니까?' 하는 말처럼 들려 숙연히 일어서게 만들었다.       


  “제가요. 아침저녁으로 발을 씻고, 족욕도 자주 하고, 보습크림까지 발라주거든요?”     


  정작 이 말을 꺼낸 건 약국에서였다. 처방전대로 약을 챙기던 약사에게 말이다. 피부연화제와 항진균제를 봉투에 담던 그녀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무좀은 여러 경로로 생길 수 있고, 그 위에 족욕이나 화장품 등으로 발을 자극한 게 문제였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해줬다. 약사 얘기를 듣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무엇으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부모님 집에 갔다가 앨범을 발견했다. 펼쳐보니 나의 학창 시절 사진이 가득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보다가 중학생 시절 얼굴이 보이자, 기분이 묘해졌다. 그때 내 얼굴은 여드름이 점령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붉은 여드름이 코와 인중을 제외하고는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그랬다.      


  “얼굴에 여드름이 많네?”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할 때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세수를 자주 하고 있는지. 어떤 좋은 세안제와 화장품을 쓰고 있는지 덧붙였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말이다. 실제로 나는 굉장히 자주 세수를 했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교재를 깜빡할 때는 있어도 세안제를 놓고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봤다.     


  “쟤 얼굴 봤어? 더러워. 여드름.”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진 않다. 저런 말이었던 것 같다. 학원에서 나오는 길에 남학생들이 내게 다가와 편지와 선물을 건네고 돌아서며 한 말이었다. 물론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윤지’거였다. 단짝 친구였던 윤지는 나와 달리 희고 깨끗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녔었다. 어딜 가나 외모가 눈에 띄는 탓에 옆에 있는 내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도도한 춘향이에게 접근하기 위해 넉살 좋은 향단이를 먼저 공략하는 것. 이런 닭살 돋는 유치한 얘기는 책이 아닌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고. 나는 일찍이 남의 연애사에 자주 휩쓸리는 향단이가 되곤 했다.     


  딱히 그 무리 중에 내 이상형이 있던 건 아니었다. 한데 그들의 수군거림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치욕과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아 침대에 누워 울다가. '밥 먹자'라며 방으로 들어온 아빠에게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마흔이 넘은 아빠 피부는 까맣고 칙칙하고 군데군데 여드름 피었다 사라진 자국이 가득했다. 어쩐지 그날의 설움이 아빠로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야, 너 코에 코딱지 있거든? 더러워.”     


  다음날까지도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던 나는 편지와 선물을 챙겨서 학원에 갔다. 그리고는 그 남학생 무리에게 다가가. 윤지가 이거 받기 싫다고 했다며 거짓말하며, 내 여드름이 더럽다고 했던 아이에게 저런 말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그 후 벌어진 일은 비슷하다. 여드름용 세안제와 화장품을 썼다. 저녁에는 오이, 감자, 우유 등.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자재를 자르고 갈고 부어서 얼굴에 올렸다. 그러다 여드름이 심해지고 급기야 가려움증이 생겨 병원에 갔다. 당시 의사는 '지난 친 세안과 정체불명의 팩이 여드름을 자극한 것 같다'라고 진단했다. 그때 그 의사도 피부가 밝고 깨끗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코에 코딱지가 있는 것. 사춘기 시절에 여드름이 나는 것. 어쩌다 무좀에 걸리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더럽다고 생기는 게 아니란 걸 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더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들로 나를 오해하면 어쩌나 신경 쓰는 것. 이것 또한 나이와 상관없이 이따금 생길 수 있는 일이고 마음일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무좀'일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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