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Jul 12. 2020

내가 쓴 가장 나쁜 글

이미지 출처: MBC 무한도전 (요즘 광희가 좋더라)




  시작은 이랬다.     


  “이게 어디서 까불고 있어!”     


  이 정도는 부지기수. 진짜들은 더 독하고 잔인했다.      


  “너 밥벌이 그만하고 싶어? 내가 못 할 것 같아? 거지 같은 게.”

  “못 배운 년이 누굴 가르치려고 들어?”

  “씨* 야 너 죽고 싶냐?”     


  예전에 한 회사에서 블랙컨슈머 응대 스크립트를 제작할 때였다.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고객에 대한 분석을 위해, 잦은 악성 민원과 폭언을 해대는 이들의 음성을 모아 듣기 시작했다. 전에도 다른 스크립트를 제작하며 냉소적인 말투와 폭언의 경계에 선 단어를 모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대는 이들의 목소리를 익히 들어왔던지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듣기 시작한 지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손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려, 소름 돋는 말과 목소리가 입력되고 있는 머리만 짓눌러 댔다.

      

  예시로 소개한 말보다도 수위가 높은 언어폭력이 상당했으나, 지금도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정도다.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그들의 지난 삶 일부를 10배 속도로 들춰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곳에서 장전된 화를 엉뚱한 곳으로 발사한 것만은 분명할 테니까.     


  녹음된 파일을 듣는 나도 힘든데, 실제로 그들을 상대한 사람들은 얼마나 괴롭고 아팠을까.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고객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기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이곳에 연락한다는 건 ‘불편한 문제’ 또는 ‘시급한 해결’인 경우가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난 말투가 된다거나. 다그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훗날 내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저 나만 조심하고 살면 되겠지 했었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들어간 회사에서였다.      


  사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제안 들어온 일들이 무산되고, 이런저런 사정이 생겼을 때 강의와 글과 관련된 일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함께 일해 보잔 회사를 만났다. 이 말 철석같이 믿은 건 아니지만, 일단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한데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나와는 맞지 않는 자잘한 업무가 많았다. 특히 SNS 관리가 그랬다. SNS를 하긴 하지만, 뭔가 이런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가꾸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용어라던가 마케팅 관점에서의 활용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SNS 이벤트를 기획하란 업무가 부담됐다.


   결국, 다른 채널을 둘러보며 급하게 이벤트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사 지시로 이벤트 내용이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용어로 인해 이벤트 참여자가 혼란스러울 만한 실수를 하게 됐다. 고백하면 짧은 시간에 크고 작은 업무를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꼼꼼한 편이 아닌지라. 퀄리티를 만드는 일보다 수량으로 밀어붙이는 업무에 약하기도 하니. 조마조마했는데 터진 일의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사죄하시죠?”     


  무료 쿠폰을 주는 이벤트에 참여했으나, 내가 혼동한 용어 때문에 상품을 받을 수 없게 된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첫마디부터 사죄라니. 실수는 맞지만, ‘용서받기 힘든 죄’로 둔갑하는 건 억울했지만 일단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모든 분들이 상품 받으실 수 있도록 다시 참가 내용확인하는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니까. 당신이 한 잘못을 인정한다는 거죠?”

  “네? 네...

  “어떻게 사죄할 건데?”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다시...

  “이 이벤트 엄마들 참여 많은 거 몰라요? 지금 엄마들 기만해?”     


  기만? 기만이란 단어는 ‘남을 속여 넘김’이란 뜻이 있던데, 난 속인 게 아니고 실수를 했고, 실수를 인정하고 수습하는 중인데 ‘기만’이라. 거듭된 사과에도 소리를 지르는 여자에게 더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협박을 해댔다.     


  “나 맘 카페 회원이야. 어디 맘 카페 무서운 줄 모르고! 회사 망하게 하고 싶어? 인정하면, 당신이 책임져!”     


  설마, 지금, 맘 카페 이용해서 날 해고하거나.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는 말?     


  화가 났다. 사과했고, 바로 잡겠다고 했고, 또 사과하고, 다시 사과했는데, 여기서 ‘맘 카페’와 ‘엄마’ 얘기는 왜 나오는 것이며. 이 시국에 몇십 명의 밥줄을 지켜주는 회사를 망하게 하겠다고? 왜? 무료 쿠폰을 못 받아서? 제일 화가 난 부분은 ‘맘 카페’와 ‘엄마’란 단어였다. 이딴 상황에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건. 건강하게 맘 카페 활동하며, 타인을 배려하려 애쓰는 엄마들에게도 원치 않는 프레임을 씌우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몇십 분간 그녀의 폭언을 듣고 있을 수밖에. 끝끝내 사과하며 말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블랙컨슈머 응대 스크립트’를 찾아봤다. 한데 아무리 뒤적거려도 자료가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공저로 관련 서적을 쓰기 위해 메모했던 내용을 찾아냈다. 그 내용을 보자 내가 쓴 대응 방안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는 분노하고 고민하며 만든 스크립트였지만, 실제 상담사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겠구나. 내가 들은 말보다 훨씬 날카롭고 아픈 단어를 모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끝끝내 사과했겠구나 싶어 자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가장 아팠던 건, 사실 스크립트를 쓰면서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단 것이다. 이 스크립트 직원을 보호하기보다는, 회사 이미지와 평판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한 목적이 훨씬 크단 사실을 말이다. 난 그 목적에 충실한 내용을 썼고, 훗날 그 목적 때문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묵묵히 견디며 도리어 상처 준 사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쓴 글이 훗날 나를 아프게 할 줄 몰랐다.

  그 글이 내가 쓴 가장 나쁜 글이 될 줄 몰랐다.            



     

  여담이지만, 그날 욱해서 회사를 관둘까 했다. 퇴사하고 개인 휴대전화로 여자에게 사비로 산 쿠폰과 함께 세상 살며 들어본 적 없는 욕을 함께 보내줄까. 이런 유치한 고민 했다. 어차피 소심하고 간이 콩알만 해서 그런 일을 벌이지 못할 나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쳇.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은 '무좀'일뿐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