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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Feb 24. 2021

그쪽도 제 취향은 아닌데요

투고 실패에도 글쓰기를 관두면 안 되는 이유

이미지 출처: 영화 <사랑의 가위바위보>



 “투고 성공 비법 같은 게 있을까?”   

  

 가끔 받는 질문이다. 세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이유 탓일 거다. 한데 나의 경우 해줄 말이 많지 않다. 투고로 계약한 책이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 출판사에서 브런치를 보고 먼저 연락해 왔다. 맞다. 이렇게 말하는 거 재수 없다.

    

 그렇지만 ‘투고’ 뒤에 ‘실패’란 단어를 붙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나의 투고 경험은 모두 실패였으니까.     


 브런치를 시작하고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찔끔찔끔 쓴 원고들이 제법 두둑해졌다. 게다가 브런치에 쓴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하게 됐다는 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출간이라……. 은근 욕심이 생겼다. 그날부터 투고와 관련된 글을 찾아봤다. 검색해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투고에 관한 키워드를 잘못 입력하면 죄다 광고다. 출간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 강좌 광고. 이런 것들을 걷어내고 나니 몇몇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1. 서점에서 가서 내 글과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를 메모할 것.

 2. 킬링 포인트부터 독자 타깃까지 정리한 상세한 기획안을 작성할 것.

 3. 목차 포함 3분의 1 가량의 원고를 정리해 둘 것.

 4. 2, 3번을 1번을 통해 추려낸 출판사에 보낼 것.

 +) 이때 메일 제목 본문 그리고 파일 등에 출판사명을 기재해 줄 것. ‘난 너에게만 내 글을 보냈어’라는 표시.     


 이렇게 열 개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간혹 그런 후기가 있다. 투고 메일을 보낸 당일 날 계약하자는 연락이 왔다던가.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후기.     


 기대했다. 내게도 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하지만 투고한 첫날 달려드는 출판사는 없었다. 둘째 날, 셋째 날, 일주일이 지나서까지. 두세 곳에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보내올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하나둘 답변이 오기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온 메일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상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시연하는 줄 알았다.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멘트를 날릴까.     


‘보내주신 원고는 저희 출판사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대체 출간 방향이 뭔데요? 좀 알려주시죠. 이렇게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 그 원고는 얼마 후 브로치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받고 다른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아 계약했다. 다음 해 우수 출판 콘텐츠로 선정도 됐다. 그래, 여기서 판매 대박까지 가 보자! 이렇게 외쳐댔다.      


 기대와 달리 출간 후 독자 반응은 썰렁했다.  자주 이용하는 서점에도 겨우 한 권 들어와 있었는데, 그마저도 매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었다. 키 160이 좀 안 되는 내가 까치발을 들어야 꺼낼 수 있는 곳에 꽂혀있었다. 신간인데 말이다.


    



 그 뒤로 출간에 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글을 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참 게으르게 쓴 것 같은데 글들이 또 도톰하게 모여버렸다.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또 투고해봐?     


 다시 위에 1번부터 4번까지의 과정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다섯 군데 출판사에 보냈다. 그래도 출간 경험이 있으니, 이 정도 보내면 입질이 오겠지.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면서.     


 두 번째 투고 답장은 더 빨랐다. 한 출판사에서는 브런치에서 작가님 글을 애정 하며 읽고 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번에는 순조로우려나?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또다시 그 문장과 만나고야 말았다.     


  보내주신 원고는 저희 출판사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애정 한다면서요! 따지고 싶었으나 내 손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답변 주셔서 고맙다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라고. 이어서 다른 곳에서도 차례로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언젠가 책 출간 강의 후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투고만 100여 곳 넘게 했다는 했다. 잠시 고민했다. 나도 메일 100통 쏴 버려? 이런 생각도 잠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내 글이 구린 거라고. 두 번째 출간 따위는 없을 거라고.      


 출간 미련을 접고 지냈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간절했던 일이 이뤄진다고 했던가. 이상하게도 그 후에 출간 제안이 (내 기준에서는) 밀려들었다. 대략 일곱 곳에서. 그때 좀 황당해서 이게 웃어도 될 일인가 싶었다.


  그 후로 인기와는 거리가 먼 두 권의 책을 더 냈고, 최근에는 그중 한 권의 개장 판을 출간했다.     




 자! 여기까지는 순한 맛 실패담이다. 이제부터가 매운맛이다.     


 친절한 거절에도 마음이 상했던 난 또 투고했다. 이번에는 웹소설이었다. 장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특별한 건 아니었고, 임신 시험관 시술을 하며 소소하게 작업한 거였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어느 날 보니 원고가 제법 모여있었다. 그랬다. 투고 병이 또 돋았다.     


 아직도 내게 웹소설은 미지의 세계이므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에세이 투고할 때와 비슷한 과정으로 준비했다. 보낸 곳은 대략 열 곳이었다.      


 이때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반나절 만에 한 출판사에서 내 글이 마음에 든다며 당장 계약 하자고 했다. 정말 하루 만에 이런 답장이 오기도 하는군. 실실 웃음이 삐져나왔으나 신중해져야 할 때였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보니 만족스럽지 않았다. 초짜 주제에 거절 메일을 보냈다. 분명 다른 곳에서도 계약하자고 연락이 올 거란 망상을 부풀리며.     


 일주일쯤 지나자 하나둘 답변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거절이었다. 또 서로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끝에 가서는 메일을 열기가 싫을 정도였다. 그런데 두 곳에서는 좀 다른 답변을 보냈다.     


 방향을 좀 바꿔서 수정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근데 경험상 본래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바꾸기가 어렵더라고요
  

 응? 이건 마치 ‘네가 좋은데 사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썸남의 어장관리와 비슷했다. ‘그쪽도 내 스타일은 아닌데요?’라고 쓰다가 말았다. 그러나 곧 마지막 메일과 비교하면 이건 애교였단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글을 쓰실만한 능력이 없으신 것 같아요.
저희도 이런 글을 성공시킬 능력이 없고요.     

 

 자세히 쓰긴 그렇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능력이 없다는 거야. 네가 능력이 없다는 거야. 너랑 나 둘 다 능력이 없다는 거야. 그래, 능력 문제는 그렇다 치고. 무슨 거절을 저렇게까지 예의 없게 하실까.     


 시간이 지나 찾아보니. 막말로 유명한 출판사인듯했다. 나처럼 마음 상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걸 보면 말이다.      


 혹시나 궁금해할 것 같아 이야기하면, 저렇게 여기저기서 외면받은 원고도 현재 좋은 출판사와 만나 작업 중에 있다.




  이런 투고 실패담을 늘어놓으며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투고에 실패했다고, 누군가 네 글은 나무의 희생을 의미 없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아주 잠깐만 속상해하란 거다.

      

  본래 사람은 긍정적인 반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에 귀가 잘 열리는 법이다. 시장 상황과 독자 반응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에 휘청거려 쓰러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어차피 쓰다 보면 나와 짝짜꿍하게 되는 출판사와 독자가 운명처럼 나타난다. 게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떤 글이 터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투고에 실패한 당신과 내가 글쓰기를 관두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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