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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28. 2016

당신에게 행운이 깃들길

[酒目하다] 잭 셀라스 본 댄스 메를로

그날은 J의 두 번째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결혼-이혼-재혼이 아니라 같은 사람과 일가친척들만 모여 치른 결혼식과 친구들만 불러놓고 하는 두 번째 결혼식. 결혼을 친구들 앞에서 선포하고 식사를 대접한다는 명목의 자리였는데 여섯 명 정도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스무 개 정도 있는 자리였다.


확고한 비혼 두 명, 장기 연애 중이라 내년엔 결판을 내리겠다 결심한 한 명, 기혼자 한 명, 연애 새내기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J의 친구로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여섯 명 모두 J가 품고 있던 야망이 이뤄지는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J가 우리에게 결혼 소식을 알릴 때 그의 매력은 ‘돈’이라고 확실히 밝혔다. “그를 사랑해?” “응, 물론이지. 난 그가 가진 돈을 사랑해. 아마도 그건 변치 않는 매력일 거야. 너네가 말하는 잘생김이라든지, 취향의 합일이라든지 혹은 좋은 성격 같은 것보다 변하기 힘든 조건일 걸?” 반박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J의 그런 선택을 두고 속물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J가 돈에 구속되어 자신을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그 조건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J는 현명했고 원하는 것이 뚜렷하고 그걸 이뤄내는 사람이었다.


그림 . ㄱㅎㅇ



돈이 좋다는 건 입에 넣는 순간 사라지는 안심 스테이크가 나왔을 때보다 각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와인을 보았을 때 확신했다. J는 자신을 축복해주러 온 사람들에게 정성을 들여 접대할 수 있는 재력의 편리함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20개의 테이블마다 고가의 와인이 제공되었는데 각기 다른 레이블이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 중 와인 취향이 좋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와인이라는 건 확실했다.


결혼식 전에 따로 J를 만났을 때 스테이크와 함께 어떤 와인을 마셔보고 싶은지 내게 물었었다. 그때 막 떠오른 건 켄우드 잭 런던 메를로였다. 아무래도 결혼식을 고려해서 묻는 것 같아서 수컷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와인보다는 행운을 빌어줄 수 있는 재미있는 와인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 졌다.


그래서 추천한 건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한 잭 셀라스 와이너리에서 만든 본 댄스였다. 와인메이커인 크레이그 맥글린과 디자이너인 케이티 제인, 조엘 템 플린가 설립한 자크 셀러스 와이너리는 와인의 이름과 병 디자인에서 창의력을 발휘했다. 트럼프 카드, 주사위, 카지노 칩 등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미지들을 병에 구현해냈는데 입과 코를 만족시키는 것을 넘어 눈에도 즐거움을 안겨주는 와인이다. 잭 셀라스 JAQK Cellars라는 이름도 트럼프 카드 J 기사, Q 여왕, K 왕, 그리고 A 에이스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게임을 할 때 굴리곤 하는 주사위는 샤머니즘 시대에서부터 염원의 마음을 담아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뼈를 갈아 주사위를 만들었는데, 행운에 대한 기원을 담아 만든 와인이 바로 본 댄스 메를로 Bone Dance Merlot였다.


사실 본 댄스 메를로는 마셔보았지만 분명 마셨지만 기억에 없는 비운의 와인이었다. 와인은 먹고 마시고 죽자 하기에 절대 좋은 술이 아니고 그렇게 작정하고 마시면 보라색으로 추해지기 마련인 술이다. 그런데도 한동안 와인에 빠져 즐기는 던 때에는 아니 정확하게는 술에 빠져 죽도록 취하는 게 필요했던 시기에는 숙취도 심한 와인으로 하루 걸러 달렸다.


앞서 셋이서 마신 세 병의 와인들이 훌륭해서 신이 났고 그래서 샴페인도 따고 음악도 좋아하는 것으로 크게 틀고 춤도 추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정도 취해서 인사불성인 애들이 뒤엉켜있으면 바 마스터도 본 댄스 같은 와인은 따지 말았어야지! 취하기 전부터 바에 새로 입고된 잭 셀라스의 3종 와인병을 구경했는데 나는 특히 본 댄스에 끌렸던 터라 술에 왕창 취해서는 마셔버리자!!! 한 것. 다음날 본 댄스의 코르크 마개는 내 손에 꼭 쥐어진 채 발견되었는데 내 머릿속에는 그 술을 마신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아악. 맛도 기억나지 않는 와인이라니!




그런 추억도 있고 해서 이번 기회에 제정신으로 제대로 맛보고 싶어 졌다. 그런 연유로 우리 테이블에는 본 댄스 메를로가 올라왔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자리한 친구들도 와인 라벨 디자인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 친구들의 시선이 와인에 집중되는 그 순간에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속에서 밀려오는 흐뭇함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코르크 마개가 열리고 각자의 잔에 와인이 담기고 눈과 코로 와인의 질감과 향을 즐기는 순간에도 감탄이 멈추질 않았다. 본 댄스를 취한 상태로 마셨다는 게 마시는 순간에도 후회할 정도로 밸런스가 너무 좋고 향미가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 고기와도 너무 잘 어우러졌다. 남의 살을 어금니로 으깰 때 나오는 육즙과 본 댄스의 산도와 당도는 맛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 결혼을 마음 깊은 곳에서 축복해주고 싶은 기분이 밀려 올라오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J가 잘 살아나갈 것을 의심치 않지만 축하하는 마음에 행운까지 따르길 덧붙여 빌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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