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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22. 2023

어떤 면접

기혼 여성의 면접이라고 해야 할까요

최근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면접을 봤다.


업계 내 꽤 규모가 회사였는데 신생 부서가 생기며 충원을 하는 듯했다. 약 7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면접을 봤지만 항상 긴장되는 일이다. 회사 사이트를 꼼꼼히 살펴보고 관련 분야의 업무 중 미진한 부분의 정보는 따로 찾아가며 익혔다.


1차 면접 당일. 세련된 느낌의 건물 외관과 달리 사무실 내부는 꽤 오래돼 보였고 칙칙했다. 신생 부서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으로 예상되는 면접관을 따라 커다란 회의실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그의 눈가는 어두웠고 상당히 피로해 보였지만 이력서 한 줄 한 줄 볼펜으로 체크하며 그간 내가 해왔던 업무와 성향을  꼼꼼하게 파악했다. 경직된 분위기였지만 호의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면접은 꽤 길었고 오랜 대화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기혼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그때부터였다. 그동안 내가 면접 자리에서 듣지 못했던 질문들이 이어진 건.


"오늘 면접 보시는 건 남편분과 상의되신 걸까요?"라는 그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서 나는 고개를 대차게 갸우뚱하고 싶었지만 이성을 부여잡았다. "서로의 커리어에 관련된 부분은 부부 사이에 당연히 정보를 공유합니다. 동시에 서로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있고요."라고 대답했다. 께름칙하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던 그는 비슷한 결의 질문을 이어나갔다.


"야근이 많을 수도 있는데 남편분이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출장을 가게 될 수도 있는데 남편분이 괜찮다고 하실까요?"


낯설고도 황당한 그 질문들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머리가 아파왔다. 내 남편은 아내인 나의 선택을 응원하고 아주 무탈한데 왜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 그의 안위를 끊임없이 걱정하는 걸까. 구구절절 설명하며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아 형식적인 짧은 대답을 유지했다. 곧이어 이어진 질문은 자녀 계획이었다. 앞전의 질문들에 비해선 어느 정도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오히려 담담했다.


이전의 면접들이 'N 년 차 경력직' 혹은 'OO분야 N 년 경력' 등에 초점화 되었다면 이번 면접에서의 나는 그저 '30대 무자녀 기혼 여성'으로 정의되었던 것이었을까. 후자의 정의로 타인이 날 바라본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니까. 하지만 기혼 여성의 사회 활동을 마치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질문들과 다 큰 성인임에도 '남편'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 오랫동안 씁쓸했다.


예상외로 면접관은 '합격'이라는 결과를 줬다. 마음이 식어버린 나는 이 결과를 받았을 때도 그저 무덤덤했다. 결론적으로 다음 단계인 '대표 면접'은 보지 않았다. 최종 면접에 참석할지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경력직 채용이 취소되고 신입 채용으로 형태가 변경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던 것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면접 시간을 조율하던 인사팀 직원은 연신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최근 들어 가장 밝은 목소리였다. '마침 저도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라는 말은 살짝 유치해 보이니 마음속에만 담아 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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