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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Sep 26. 2023

어긋난 위로

A. 공허하다. "나 지금 위로가 필요해."라고 말하고 싶은데 너 또한 큰 위로가 필요한 상황인 건 아닐까 싶어 애써 아픔을 삼키고 쓴웃음을 짓는다.


B. 너의 모습이 어쩐지 위태로워 보여 다가가보려다 멈칫했. 주제넘는 건 아닐까. 요즘의 나도 휘청이는데 너의 상황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커다란 아픔이면 어떡하지. 겁이 나. 일단 내 앞에 닥친 골 아픈 일들과 감정들어느 정도 잔잔해지면 네가 좋아하는, 플랫화이트와 수제 쿠키가 맛있는 카페에서 너의 얘기를 들어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


A. 쓴웃음을 자꾸만 짓다 보니 어쩐지 괜찮아진 것 같다. 최면인 걸까 강해져 덤덤해진 걸까. 요즘 내 일에만 몰두해서인지 너의 일상은 평온했던 거지, 위태로웠는데도 삼키고만 살았던 건지 궁금해. 지난번 나의 얕은 한숨에 너는 분명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던 것 같았는데. 나의 아픔이 너에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야. 그저 내가 말하지 않아서 묻기 어려웠던 거겠지. 나이가 먹을수록 아슬아슬한 선을 지켜야 하는 게 정말 어렵다.


B. 쓰라린 현실 속에서 여러 번 비틀댔지만 이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진 것 같다. 너의 지난 일들은 잘 해결된 걸까. 아니면 지난 일이 아닌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인 걸까. 괜히 다시 물어서 그때의 한숨을 억지로 떠올리게 할지도 몰라.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도 하겠다. 이번 주에 따듯한 플랫화이트를 마시러 가자고 해야겠어.

.

.

가을의 색을 담은 에스프레소와 눈을 닮은 우유가 어우러진 플랫화이트 속 부드러운 거품을 바라보다가 너의 얼굴을 바라봤어. 달콤한 쿠키를 반쪽씩 잘라먹으며 잠시 망설이다 힘들어 보이던 너의 상황을 언급해 봤어. 답답하면 내게 쏟아내도 되는데. 전혀 아무 일 아니라며 되려 얼굴을 붉히는 너의 언짢아 보이는 모습에 나 또한 얼굴이 붉어져 접시 위 쿠키 부스러기만 만지작 거렸어. 마지 감정 같아서.


A. 네가 나에게 궁금한 거라곤 항상 이런 것뿐인 걸까.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던 부분 너의 주관적인 평가 섞인 말에 나는 자주 초라해지곤 해. 내가 진짜 힘들어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어긋난 위로는 서로를 고립시킨다.


개인의 관점에만 충실한 위로는 상처다. 내게는 위로인데 너에게는 참견이 되어버리는 아픔.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다가 되려 상대가 원치 않는 충고로 전달되는 것이다.


또 배려라는 명목 하에 드리운 어둠을 애써 모른 척하며 넘어간 순간을 시간이 지나 커다란 폭풍으로 휘몰아쳐 올 때 지독하게 후회되기도 한다.


적절한 위로라는 건 마치 세 잎 클로버 속에 숨어있는 네 잎클로버와 같아서 종종 요즘 즐겨마시는 커피는 무엇인지.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공간에 자주 가는지 묻다 보면 어느 날에는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까.


여전히 서툰 위로로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닿는 순간을 바라며.






[이미지 출처 -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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