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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 28. 2024

작은 수치

매일매일 작지만 무수한 감정들을 마주하며 산다. 어느 날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큰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작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내겐 짜증, 화, 기쁨, 슬픔 등의 감정들보다 형언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 바로 수치스러움. 속된 말로 '아 쪽팔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진 정도의 수치스러움 정도야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며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밝은 단계의 수치스러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존심을 짓밟힐만한 폭언에 속수무책 당한 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때. 평생 지니고 싶던 아픈 과거가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났을 때. 승진에서 누락된 인사 공고 메일을 받았을 때. 콤플렉스를 건드릴만한 상황들에 마주했을 때처럼 어둠이 가득한 수치를 느끼는 상황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자주 다가온다.


일상 속 작은 수치들이 다가올 때마다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을 부끄러워하곤 했다. 수치를 느끼는 순간 지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얼굴이 붉게 물들며 동공이 흔들려도 '이 따위 것에 난 아무렇지도 않아' 라며 외면하곤 했다. 수치스럽다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짜증, 화 정도로만 치부해버리곤 했던 것이다. 창피함을 외면하기 위해 억지로 밝은 척을 하기도 하고 과한 행동을 취한 경우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외면했던 그 감정들은 어느 순간 문뜩 화를 일으키기도 했고 스스로를 혐오하는 단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굉장히 가볍게 치부해 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져서 지독히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주 당혹스러웠는데 몇 년이 지난 끝에 '사실 난 그때 수치스러웠던 거야.'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의 감정을 오롯이 바라보고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게는 긍정적인 깨달음을 주는 지인들이  많다. 그중 한 지인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너무나도 억울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 일로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 지인은 순간적으로 그 수치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며 크게 슬퍼한 뒤 금세 감정을 추스르고 그 사건이 옳지 않음에 대해 명료하게 대응하고 새로운 대안책을 찾아 현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나였으면 어둠 속에 처박혀 부끄러운 감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삭히고 억지로 강한 척하며 외면했을 텐데. 수치스러움을 아무 부정 없이 받아들인 뒤 그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현실적인 해결책에 몰두하는 지인의 모습은 멋졌다.


이처럼 살다 보면 누군가의 모함에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도 있을 테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다가 굴욕적 감정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수치스러운 감정이 들었다는 건 내 마음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있다는 증거다. 때론 나의 잘못됨을 인정하는 계기로 나아갈 수 있는 감정일 수도 있을 텐데 이럴 땐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증폭제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상대의 잘못으로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라면 내가 수치스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점에 확신을 가지고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함에도 느끼고 있지 못하는 대상을 안타깝게 바라보자.


수치스러운 감정이 일렁 때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소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 하지만 '창피할 수도 있지 뭐.'라며 일상 속 작은 수치들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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