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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01. 2024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생 아이냥

38. Chartres, Eglise Saint-Aignan






파리에는 6개의 기차역이 있습니다.

파리 북역(Gare du Nord), 파리 동역(Gare de l'Est), 파리 리옹역(Gare de Lyon), 파리 오스터리츠역(Gare d'Austerlitz), 몽파르나스역(Gare Montparnasse), 생 라자레 역(Gare Saint-Lazare).

프랑스와 유럽 대부분의 목적지로 갈 수 있지요.

샤흐트(Chartres)로 가기 위해 몽파르나스역으로 갑니다.

이곳은 나비고 패스가 적용되지 않아 기차표를 구입했는데요.

티켓이 무려 18.4유로, 그동안 나비고를 이용하며 혜택이 얼마나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요.

흐린 하늘, 초록들판, 알록달록 물이 든 나뭇잎, 역사도 없는 간이역을 수도 없이 정차하며 도착했습니다.

역을 나오니 멀리 뾰족한 첨탑이 보여요.

아마도 그곳이 사흐트 성당이겠지요.

광장에 독특한 조각품이 있는데요.

벤치에 앉아 서로를 관찰하며 접촉을 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독일 예술가 해네케 버몬트의 작품입니다.



사흐트 역





샤흐트에는 프랑스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유럽 최고의 순수 고딕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대성당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는 1975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1,157개, 그중 59개의 유네스코 등재지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가 1위로 제일 많고 그다음이 중국, 프랑스와 독일은 52개로 3위입니다.


 




샤흐트 성당은 순수 고딕 건축이라는 것과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합니다.

그것 말고도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는데요.

'성모의 베일'이라고 불리는 천 조각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태어날 때 성모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샤를 2세 황제가, 예수가 태어날 때 성모가 입었다고 알려진 성모 마리아의 옷을 샤흐트 대성당에 하사하면서 그것을 보려는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주민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지요.

하지만 1920년 번개로 인한 대화재로 구 시가지와 대성당이 소실되어 주민들의 상실감은 엄청 컸습니다. 

성의가 타버렸으니 순례자들이 끊길 것이고 그들로 인해 먹고살던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을 게 뻔하니까요.

실의에 빠진 주민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에 타버린 성당을 파헤치다가 지하묘소에 성의가 안전하게 보관된 걸 발견했답니다. 

성당에 불이 나자마자 한 수도사가 성의를 지하묘소로 옮겼다고 하네요.

실제 성모의 베일이라고 불리는 이 천은 은은한 베이지 색 실크로 길이 5m 30cm, 너비 46cm의 천 조각으로 유리 상자에 넣어 놓았더군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지식인 중 한 명인 생 풀베르(Saint Fulbert) 주교 (960-1028)는 1037년에 대성당을 재건했는데요. 그의 동상이 성당 앞에 서 있었습니다. 




성모의 베일


사흐트르 성당 정면
사흐트르 성당 측면
사흐트르 성당 측면











생 풀베르(Saint Fulbert) 주교
사흐트 성당 (모리스 위트릴로)
사흐트 (모리스 위트릴로)



그날은 10월 31일로 할로윈데이고 다음 날 11월 1일은 만성절이라 휴일입니다.

만성절이란 가톨릭에서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이지요.

만성절의 전날인 10월 마지막 밤은 귀신이나 주술 등의 신비주의와 연관시켜 호박등들을 켜놓고 즐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인적이 뜸하고 거리는 한적하더군요.

사흐트 역시 프로뱅처럼 오래된 콜롱바주 형태의 집들이 많았고 중후한 느낌이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기념품 상점도 근사한 옷을 파는 곳도 없이 평범한 마을의 모습이었지요.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마땅한 테라스가 없어서 이 골목 저 골목 걷는데 분위기가 맘에 딱 드는 장소가 나타났지요.





















돌 벤치와 몇 잎 남아있지 않은 나무와 하얀 집의 어울림이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어요.

차가운 돌 의자에 잠시 앉았는데 희미하게 오르간 소리가 들렸습니다.

만일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 작은 성당에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오르간 소리에 홀린 듯 들어갔지요.

그렇게  주연보다 빛나던 조연 생 아이냥을 만났습니다.




     





생 아이냥(모리스 위트릴로)
생 아이냥(모리스 위트릴로)
사흐트(모리스 위트릴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우선 다색의 풍부함에 놀라게 되었지요.

보트 선체를 거꾸로 놓은 듯한 모양의 천장 프레임은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햇빛에 미끄러지듯 펼쳐진 그린과 옐로는 산뜻하고 달콤했지요.

젊을 때는 무채색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린색에 마음이 갑니다.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음악의 종류가 성가와는 관련이 없는 현대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아마도 오르간을 전공하는 학생이 연습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요.


이곳은 로마네스크 이전 시대인 400년경 샤르트르의 주교인 생 아이냥(Saint-Aignan)에 의해 처음 지어졌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고 프랑스혁명 동안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었는데, 한때는 군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감옥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식료품점으로 사용되다가 1822년에 예배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성당 앞 작은 광장 벤치에서 버터와 오렌지 마말레이드, 치즈를 넣은 비게트 샌드위치와 둥굴레차로 점심 식사를 했지요.     

오가는 사람 하나 없고 마른 나뭇가지만 바람에 살랑입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여행자로 보이는 노부부가 성당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아름다운 곳이니 들어가 보세요라고 했지요.



















파리로 돌아가는 길에 랑부예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샤흐트에서 기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니 잠시 들러가기로 했지요.

랑부예 성(Château de Rambouillet)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 대통령들의 여름 별장이었지만 현재는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성이 아니더라도 백조의 호수와 만추의 숲, 잘 가꾸어놓은 잔디 광장들이 아름답고 여유로운 곳입니다.

대부분 즐겨 찾는 베르사유나 퐁텐블로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나처럼 인적이 드문 당일치기 여행을 찾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르네상스의 위대한 왕인 프랑수아 1세가 1547년 랑부예 성에서 사망했습니다. 

그 후 루이 16세가 사냥터 확장의 일환으로 삼기도 했으며 1815년 나폴레옹 1세가 세인트 헬레나로 망명하러 가는 길에 이 성에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1830년 찰스 10세 국왕은 이 성에서 퇴위 서명을 했고 샤를 드골이 파리 해방을 준비하기 위해 본부를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 역사를 보면 1975년 최초의 G6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1896년부터 2009년까지 프랑스 대통령들의 여름 거주지였습니다. 




넓은 정원과 호수를 포함하여 성에는 볼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작은 건물인 왕비의 낙농장이었습니다. 

랑부예 성을 처음 본 그녀는 남편에게 

'내가 어떻게 이런 고딕 양식의 두꺼비 집에서 살 수 있겠어요?'

루이 16세는 사냥을 떠나는 동안 왕비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이 집을 지은 겁니다.

   

유제품을 맛보기 위한 시음실과 신선실로 만들어진 이 방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지요.

당시 최고의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세브르 공장에서는 왕비를 위해 소 모양으로 장식된 컵, 텀블러, 접시 등 유제품 전용 식기 108개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독창적인 작품은 숫양의 머리가 달린 삼각대로 지지되는 가슴 모양의 그릇이었는데요. 

이것은 오늘날 일명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 그릇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금으로 장식된 도자기 우유 그릇은 숫양 머리로 장식된 비스크 도자기 삼각대 위에 놓여 있는 형태로 그릇 안쪽에 세브르(Sèvres) 표시가 있습니다.     









파리의 가을 날씨는 항상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파랗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어김없이 비를 뿌립니다.

카메라를 비에 젖지 않게 꽁꽁 싸매서 배낭에 넣고 서둘러 역으로 향했지요.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 출출하더군요.

역 앞에 있는 작은 비스트로에 들어갔습니다.

메뉴가 온통 프랑스어라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셨는지 연세가 지긋한 사장님이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주시더군요. 

곧 저녁을 먹어야 하니 간단하게 에그 마요를 주문했습니다.

삶은 달걀 위에 마요네즈를 올리고 상추 몇 잎이 곁들여져 나왔습니다.

비주얼로 볼 때 영 맛이 없을 것 같아 실패했나? 하며 한 입 먹어보니 의외로 꽤 맛이 있더군요.

역시 프랑스 빵은 신의 한 수입니다.

어딜 가나 바게트는 기본 이상의 역할을 하니까요.





랑부예 역
에그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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