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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5. 2024

음악, 스스로 살아있는 쉼의 시간

런던 필, 백건우






꽃은 떨어지면서 울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떠나는 피아니스트의 뒷모습은 지는 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이 슬퍼 보였지요.

그는 음반으로 듣던 것보다 더 차분하게 건반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어른이고 모두가 주인인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협주곡이라기보다는 피아노를 곁들인 교향곡, 환상곡, 광시곡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1악장 카덴차에 이르자 빙판 길에서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지는 자동차처럼, 또는 발을 헛디뎌 돌산에서 미끄러지듯 그의 손가락은 건반에서 길을 잃고 있었지요.

그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실반지를 믿었습니다.

맨 뒷 좌석에 앉아있는 부인(배우 윤정희, 1944-2023)의 기도가 자일이 되었는지 이내 자리를 찾아가더군요.

그런 그를 보며 생각난 게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어떤 학생이 음악회에 다녀와 스승님께 자랑스럽게 말했답니다.

"선생님, 오늘 연주자가 두 군데서 틀린 걸 알겠던데요."

그의 말을 들은 스승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는 좋은 연주를 듣고 온 게 아니라 틀린 음만 듣고 왔구나."


잘 벼려진 칼은 녹이 슬지도 무뎌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올랐지요.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중략)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할 때는 없다.'


그렇습니다.

피아노와 백건우가 풍경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모던 발레리노를 연상시키는 체구의 긴 다리와 긴 팔의 지휘자 유로프스키는 포디엄의 세대교체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터니지의 '한스를 위한 자장가'와 헨체의 '두 번째 현악 소나타'는 독특한 액세서리 같았지요.

두 곡의 난해한 화성은 피카소를 닮았지만 명징한 음정은 몬드리안의 선을 보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호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음악들은 대중적인 익숙함은 없었지만 불규칙 속의 규칙성이 다른 나라의 민속의상처럼 흥미로웠습니다.

첫인상, 첫 문장, 첫 음은 중요합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콘트라베이스'에 그 악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의 음이라기보다는 뭔가 절박한 것 같이 바람결처럼 휙 지나가는 소리'

그 콘트라베이스의 이중음에 바순이 씨앗을 뿌리며 시작되는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 언제나 현악기의 맨 뒤에서 코끼리처럼 큰 덩치로 바닥을 깔아주는 엑스트라 같은 악기지만 이 곡에서는 그 역할이 사뭇 다릅니다.

이미 두 악기(콘트라베이스와 바순)의 저음에서 '비창'이라는 제목은 시작되고 있는 거죠.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라는 새로운 지휘자에 포인트를 맞춘 런던 필의 목관은 양털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이고 금관은 번개처럼 차고 날카로웠습니다.

섬광처럼 번뜩이는 간결하고 깔끔한 포르티시모는 방금 폭발한 화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그마였죠.

그러나 곧 드라이아이스로 종결시키고 또 다른 파트로 넘어가는 묘미는 가히 놀라웠습니다.

세련된 강약과 완급의 조절은 얼음동굴 속의 다이아몬드 칼처럼 빛났습니다.

그의 비트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바둑판처럼 정확했으며 자부심과 푸른 패기가 빚어낸 음악의 성취는 아주 컸습니다.

3년 전 내한했던 쿠르트 마주어(지휘자, 1927-2015)와 런던 필의 연주가 분청사기였다면 유로프스키가 이끄는 런던 필은 현대 미술가 베르나 팬톤의 빨간 의자를 연상시켰습니다.

마치 음악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향수 같았지요.


소중한 것들은 곁에 두고 싶은 법입니다.

그들의 연주가 그랬어요.

브로슈어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음악은 스스로 살아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살아있는 음악 또한 생명 아닐까요?

감사했습니다.

곡을 쓰는 수고, 연주자의 수고, 그런 수고 없이 귀와 눈, 가슴만 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시간이 말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더군요.

대리석을 먼저 차지하고 앉아있는 불빛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보석처럼 반짝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도처에는 아름다운 게 참 많습니다.

그걸 알아차리고 느끼는 사람이 보석의 주인이 되는 것이죠.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의 음악은 잠깐 그 이상의 휴식이었습니다. (2008년 4월 쓴 글)


*이 음악 한 번 들어보세요. (10분 27초)

오늘 같이 흐린 겨울 오전에 잘 어울립니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가 만든 '거울 속의 거울'입니다.




Spiegel im Spiegel for Cello and Piano (Arvo Pä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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