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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6. 2024

토스카나의 태양 '브라마솔레'

14. 코르토나(cortona)






'이태리어는 언어도 예술품 같다.'

<브라마솔레, Bramasole>


2013년 7월 13일,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라는 책의 이지에 내가 써놓은 글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책을 구입했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나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토스카나는 물론 피렌체, 로마, 포지타노 등 아름다운 도시들이 등장한다.

그중 내가 가장 꽂힌 곳은 '태양을 그리워하다'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래된 집 '브라마솔레'이다.


나는 이태리어의 어감이 좋다.

T와 C가 탁하지만 받침이 없어 부드럽고 분위기 있는 단어

'토스카나'

그곳을 좋아하는 건 그들의 이름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에나, 피엔차, 아레초, 오르지에토, 아씨시, 산 지미냐노, 코르토나,페루자...




브라마솔레, 영화 스틸 컷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결혼 생활을 끝낸 프란시스는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어느 작은 마을에 있는 브라마솔레라는 이름의 오래된 집을 구입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소소한 기쁨과 슬픔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화려하거나 거창한 것 없이 그저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뛰어난 영상미와 조연들의 연기가 맛깔스럽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 역을 맡은 다이안 레인(Diane Colleen Lane, 1965년~)의 연기도 일품이다.

그녀는 촬영 당시(2003년) 38세였는데 미모가 극치에 다다른 시점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이다.  


놀랍게도 비탈리타 예배당과 지그재그 사이프러스길(punto panoramico preses en zigzag) 장면도 나온다.

우리 숙소에서 300m 거리에 있는 바로 그곳이다.

내가 찍은 사진과 비교하니 집은 그대로지만 영화 속의 사이프러스는 키가 훨씬 작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자라 도로가 잘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스틸 컷(비탈레타 예배당)
영화 스킬 컷 (지그재그 사이프러스 길, 2003년 영화)
지그재그 사이프러스 길(2024년 5월 25일 촬영)
다이앤 레인
브라마솔레의 다이앤 레인



오늘의 목적지는 그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의 배경이 된 코르토나(Cortona)이다.

그곳 역시 해발 500m의 언덕 위에 자리한 코무네로 주차를 한 후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벼룩시장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지인 아레초(Arezzo)이다.

매월 첫 번째 주말에 벼룩시장이 열리므로 당연히 6월 1일(일) 일정은 아레초에 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생각 없이 찾아온 코르토나에도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 연두색 카디건 어때?'

'좋아 보여요.'


그렇게 코르토나에 도착하자마자 BB는 카디건을 구입하고 10유로의 행복을 맛보았다.















코르토나는 에트루리아(이탈리아 중부 지방에 있던 옛 나라 이름)의 중심지였으며 이곳 역시 2km에 달하는 긴 성벽이 있다.     

고대 궁전, 성당, 좁은 자갈길, 장인들이 이어가는 작은 상점 및 고전적인 토스카나의 전형적인 중세 건축물로 인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수제 아이스크림 가판대가 귀엽다.

브라마솔레라는 이름의 카페도 보인다.

사실 나는 영화에 나온 집, 브라마솔레에 가보고 싶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중심 광장에서 약 2km, 혼자였으면 당연히 가보았을 테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언제랄 것도 없이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면 커피부터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그곳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시간을 즐기는 거다.

특히 카푸치노의 매력에 푹 빠진 B와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애플파이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물론 테라스석은 자릿세를 따로 내지만 실내로 들어가는 일은 없다.


카페 맞은편에 페레티라는 이름의 궁전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한눈에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남자의 콧수염이 보였다.

바로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달리의 꿈꾸는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11월 3일까지 전시 중이다.

그의 고향 스페인 피게레스에서 그의 극장 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다.

기상천외한 초현실주의에 입체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천재 작가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는 스타일이다.










브라마솔레(현재는 호텔 개념의 빌라로 운영중)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코르토나는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한다.

이런 행사는 마을의 전통, 관습, 신념을 반영하기 때문에 주민은 물론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코르토나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행사는 스테이크 축제, 사그라 델라 비스테카(Sagra della Bistecca)로 매년 7월 공공 정원(Parterre)에서 일주일 동안 열린다.

둘레가 무려 14m(이탈리아 최대 규모)에 달하는대형 철재 그릴에 티본(T bone) 스테이크를 구워 먹는데 오후 6시에 시작해서 11시까지 이어진다.

숯불에 굽는 티본스테이크라니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스테이크뿐 아니라 전형적인 토스카나 음식을 판매하는 가판대도 열리는데 인근에 있는 마을인 키안티의 레드 와인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유럽의 축제는 보통 여름인 7,8월에 열리므로 참여해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때도 있다.









시뇨렐리 광장에서는 황금 화살을 얻기 위한 석궁 대회, 조스트라 델 아르키다도(Joust of Archidado)도 열린다.

이 대회는 1397년, 코르토나의 영주와 시에나의 귀족 가문의 신부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매년 6월 둘째 주 일요일, 거리는 중세 스타일로 장식하고, 숙녀, 기사, 깃발을 든 사람, 석궁수, 군인, 시종, 행정 및 종교 당국자, 모두 당시 의상을 입고 축제에 참여한다.

토스카나 지방은 특히 가죽 공예가 발달했는데 중세 복식을 보면 옷은 물론이고 가죽으로 만든 벨트나 가방 등을 적절하게 매칭하여 훨씬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한다.









이탈리아를 패션의 나라라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이 만든 옷이나 가방, 구두 등을 명품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중세 시대의 의상을 보더라도 그 색감이나 디자인의 감각이 무척 뛰어나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왜 그토록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 건축을 만들 수 있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예로부터 그들은 예술과 밀접한 자연환경과 언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성악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유학을 많이 가는 곳이 이탈리아이다.

이탈리아어는 말이 빠르기 때문에 언어로는 다소 시끄럽고 요란스럽게 느껴지지만 노래로 부르면 얘기가 다르다.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이요, 이탈리아어로 만든 가곡, 그리고 대중가요인 칸초네까지 최고의 매력은 가지고 있다.


2007년에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물론이고 시각 장애인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도 이탈리아 가수이다.

<대부> , <시네마 천국> 등 500여 편의 영화 음악을 만들고 2020년에 타계한 영화 음악의 대부, 엔리오 모리코네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다.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역시 전 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탈리아 음악가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칸초네 중 최고는 단연코 니꼴라 디 바리가 부른 마음은 집시(Il cuore E Uno Zingaro)이다.

이렇듯 음악도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은 실력을 가진 매력적인 나라이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도 등장하는 깃발 던지기 페스티벌도 있다.

깃발 던지기의 가장 큰 매력 역시 역사적인 의상을 볼 수 있다는 거다.

깃발 던지기는 보통 젊은 남성들만 참여했지만 요즘은 젊은 여성들의 참가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반디에라토리로 알려진 공연자들은 드럼 연주자들과 트럼펫 연주자를 동반하기도 한다.

두 명의 파트너에게 동시에 두 개의 깃발을 던지거나 자신이 던진 깃발을 잡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들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각각의 코무네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문양은 물론이고 컬러가 매우 멋지다.

게다가 중세 의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강렬한 색상으로 화려하지만 촌스럽다거나 예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하물며 보색의 대비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건 비단 혼자만은 아닐 거라 믿는다.

 











지금은 시청으로 사용하는 팔라초 광장에도 벼룩시장 상인들의 가판대가 가득했다.

그때문인지 광장은 여행자로 붐비고 있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인지 모르고 주차시간을 3시간으로 비교적 짧게 잡았다.

주차요금을 지불한 시간까지 돌아가려면 레스토랑에서 식사할만한 시간이 없다.

종업원과 아이 컨택하여 주문하고 음료 받고 음식 받고 식사가 끝나면 계산서 받기 위해 또 종업원과 눈 마주치려고 열심히 이리저리 살피고 하다 보면 1시간 30분은 훌쩍 지나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점심은 피자 포장해서 주차장 벤치에서 먹는 게 어때요?'

'좋지~'


지나던 길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피자를 포장해 줄 수 있느냐고 하니 10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인사이드 테이블에는 식사를 하는 할아버지 한 분만 계실 뿐 좌석이 모두 비어있었다.

마침내 고소한 치즈향을 솔솔 풍기는 갓 구운 따끈한 피자가 주방에서 나왔다.

피자 박스들고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골목을 걷는 BB의 뒷모습이 현지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판에 7유로, 게다가 맛있다.

바람은 산들산들 불어오고 새들은 아카펠라로 노래한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부온콘벤토(Buonconvento)'


1년 전 발 도르차에 가려고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시에나에서 환승하여 내렸던 작은 간이역이 있던 곳,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지나고 보면 좋은 기억보다 고생한 기억이 더 오래 남기 마련이다.


부온콘벤토의 성벽이 보이는 넓은 주차장에는 주차 정산기가 보이지 않았다.

주차된 차에 타고 있는 사람 두 명에게 물어봤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주차 건물이 아닌 노상 주차장은 간혹 일요일은 무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확실하게  필요가 있었다.


근처 미술관 앞의 출입문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는 약간의 언어 장애와 지적 장애가 있었다.

당연히 소통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멀리 있는 한 아주머니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여기는 두 가지 주차 구역이 있어요. 파란색 선은 유료지만 흰색 선은 무료예요. 무료공간을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아주머니는 이태리어로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파란색을 뜻하는 '아주로', 흰색을 뜻하는 '비앙코'라는 단어 때문이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그 남자의 친절하고 순수한 마음에 정말 감사했다.


나무판자에 쓰여 있는 'Welcome Buonconvento'라는 글씨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여겨져 슬며시 혼자 웃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성벽의 성문으로 들어갔다.

재스민 향기가 코를 찌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마을은 한가했다.

웨딩촬영을 하는지, 뒤풀이를 하는지 성장을 한 사람들이 골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의 미모가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다.


벽돌로 만든 아치형 문,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꽃 상자, 작은 궁전 등 중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들이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거의 모든 상점이나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고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도 없다.

낡은 헛간 앞에는 녹 슨 철재  화분대위에 토분에 담긴 제라늄들이 오손도손 피어있다.


유럽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전히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시멘트가 아닌 돌로 만든 벽, 아스팔트가 아닌 크고 작은 돌을 깔아 만든 길, 붉은 흙으로 만든 기와, 스테인드 글라스, 나무로 만든 창틀과 덧문, 두 손으로 밀어도 겨우 열리는 두껍고 육중한 나무 문, 말을 매어놓던 철재 고리, 게다가 화분은 흙으로 구워 만든 토분이나 돌확이다.

낡은 나무 창틀에 놓인 토분의 제라늄은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알루미늄 새시가 있는 베란다의 제라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침략자를 막기 위해 철로 마감된 무거운 나무 문이 세월을 견뎌낸 성자처럼 우직하게 서 있었다.




















저만치 부온콘벤토 역이 보였다.

길 건너 카페는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지만 1년 전 기억이 생생했다.

바깥의 나무 의자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고 있던 할아버지,

바그다드 카페를 연상시키던 바의 내부 인테리어,

그리고 한가한 거리,

그 길을 마테오의 차가 아니라 나 스스로 운전하여 달리고 있다는 것이 괜히 뭉클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곳을 들렸던 건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거기도 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온콘벤토 역사
1년 전 카페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던 할아버지



'그러나 저러나 사투르니아 온천에 간 A자매들은 온천욕을 제대로 즐기고 있을까?'


그날, 온천을 좋아하는 자매들은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사투르니아에 갔다.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니 꽤 만족한 시간을 보내지 싶었다.


여전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숙소로 향했다.

아름다운 사이프러스 길 앞에 멈췄다.

'보르고 베카넬라'라는 이름의 빌라로 지금은 호텔로 운영되는 곳이다.

후회 없는 하루가 또 지났다.

여행의 반이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여겨지면 뭔가 일상이 어렵고 지겹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건 그만큼 행복하다는 뜻이 아닐까?


시간은 죄가 없다.

그저 늘 같은 속도로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 시간 탓 하지 말고 오늘을 살 일이다.




사투르니아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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