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kg 와인 통을 굴려라
13. 몬테풀차노(Montepulciano)
토스카나에는 유독 몬테(monte)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다.
몬테는 산이라는 뜻, 즉 몬테가 붙어 있는 지명은 모두 산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에 몬테가 안 붙어 있어도 99% 산 위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몬테풀차노의 높이는 해발 약 600m로 피엔차보다 약 100m 높다.
산 위에 있으니 대부분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때에 따라 거의 유턴에 가까울 정도로 급하게 꺾인 도로도 심심찮게 나타나 주의집중이 필요하다.
몬테풀차노(Montepulciano)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생산지이다.
특히 노빌레 와인(vino nobile )이 가장 유명하다.
피렌체 렌터카 사무실의 청년 파스콸레가 꼭 마셔보라고 알려주었던 와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법적으로 노빌레는 몬테풀차노의 포도밭에서만 생산된 포도로만 만들어야 한다.
산지오베세(Sangiovese)지역에서 생산되는 레드와인으로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산지에서 약 3~4만 원쯤 한다.
몬테풀차노와 더불어 키안티(Chianti)의 와인이 유명한데 비교할 수 없이 좋지만 맛의 프로필은 상당히 다르다.
독특한 토양과 미세한 기후 차이로 인해 키안티의 와인은 과일과 꽃향이 많이 나는데 비해 몬테풀차노는 미네랄이 섞여있어 기본적인 맛을 베이스로 한다.
몬테풀차노 대표 와인 비노 노빌레
다른 유럽권 나라들보다 이탈리아가 확실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장인 정신이다.
산업 혁명 후 공장의 대량생산으로 수작업보다 훨씬 빠르고 혁신적인 시대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탈리아 장인들은 여전히 고객의 요구에 맞게 만드는 맞춤 방식을 고수하며 대를 이어 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라면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 이유이다.
와인 제조에서도 장인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세계 2위의 오랜 전통을 가진 와인 생산국이다.
그러므로 자국만의 와인 등급을 가지고 있는데 표준적인 등급은 총 4단계이다.
즉 DOCG는 최고급 와인, DOC는 고급 와인, IGT는 대중적인 와인, VDT는 가성비 와인이다.
DOCG와 DOC 라벨 이탈리아 와인 등급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ZTL 표지판이 보였다.
올드 타운으로 들어가는 성문이 바로 코 앞이다.
최적의 주차장을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역시나 산 위에 위치하여 숨 막히는 발 도르차 평원이 내려다보였다.
중세 때 세워진 성문, 포르타 프라토(Porta Prato)를 지나 입구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그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는 각 지역을 나타내는 문장과 깃발이 있는데 색깔과 무늬가 모두 달라 그때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같은 코무네 안에서도 콘트라다 (Contrada, 마을)에 따라 깃발이 다른데 색감이나 문양이 하나하나 모두 매력적이고 이색적이라 늘 눈길을 끈다.
몬테풀치아노에 8개의 콘트라다가 있고 각각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심벌과 깃발을 갖고 있다.
몬테풀차노 전경
성문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오르막인 몬테풀차노는 과연 다른 곳보다 와인샵이 많았다.
카페, 레스토랑, 현지 직물, 주방용품부터 그 지역의 우수한 농산물, 특히 와인과 올리브 오일과 현지 기념품 등 고급스럽고 세련된 물건들이 여행자의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그곳의 규모는 피엔차보다 훨씬 크다.
시계탑 위에 종을 치고 있는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특이하다.
하얀 레이스가 달린 복장은 피에로를 연상시키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저건 뭘까?
그건 일명 풀치넬리 탑이라 일컬어지는데 검은 가면을 쓴 광대는 나폴리 출신의 17세기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꼭두각시 캐릭터이다.
나폴리에 살던 풀치넬라는 식탐을 악덕으로 여기며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강한 아이러니와 대담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한다.
몬테풀차노에서는 매년 8월 마지막 일요일, 브라비오 델레 보티(Bravio della Botti)라는 축제가 열린다..
Bravio는 몬테풀차노를 치키는 수호성으로 세례자 요한의 얼굴이 그려진 헝겊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고
Botti는 포도주 통이라는 뜻이다.
브라비오 델레 보티는 '포도주통 굴리기' 대회이다.
통의 무게는 약 80kg, '푸셔'라고 불리는 두 명의 선수들이 와인통을 밀어서 굴린다.
문제는 와인통을 굴려야 하는 길이 오르막이며 거리가 약 1,600미터라는 것이다.
마을의 꼭대기 광장에 있는 두오모 성당에 먼저 도착하는 팀이 승리다.
이 경주는 매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다고 하니 무척 큰 행사이다.
오후 7시, 시청의 종소리가 울리면 심판의 출발 신호로 시작된다.
이 축제에는 몬테풀차노의 8개 콘트라다(마을 개념)에서 선수들을 출전시키는데 각 콘트라다의 배열은 당일 아침에 추첨을 통해 위치를 정한다.
각각의 콘트라다를 상징하는 깃발과 심벌이 그려진 의상을 맞춰 입은 선수들이 커다란 와인통을 굴리는 모습은 장관일 터이다.
우승팀은 브라키오라 불리는 천을 얻게 되는데 이것은 신성한 수호자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매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제로 밤늦게까지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가 지속된다고 한다.
브라비오 델레 보티(Bravio della Botti)포스터
14세기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원래 각 콘트라다의 대표들이 말을 타고 골목길을 경주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974년 돈 마르첼로 델 발리오 신부가 몬테풀차노의 전통 산업인 와인을 부각하기 위해 와인통 굴리는 대회로 바뀌어 다시 시작한 것이다.
8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에 열리는 와인통 굴리는 대회가 절정이긴 하지만 축제는 1주일 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중세복장을 입은 시만들은 수호성인상과 8개 지역의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와인과 로컬 푸드, 먹거리촌 등 마켓도 열린다고 한다.
올해 2024년은 와인통 굴리기를 시작(1974년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브라비오 델 발리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 더 특별하다.
2022년 우승기 2023년 우승기
시에나 캄포 광장에서는 매년 팔리오라는 경마가 열리고 몬테풀차노는 와인통을 굴린다.
지역마다 다른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이런 축제 또한 이탈리안들의 장인 정신이 아닐까 한다.
슈트를 제대로 갖추어 입은 첼리스트가 길거리 연주를 하는데 제법 수준급이다.
한참을 듣다가 동전 한 잎 떨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 후 친구들을 잠깐 초대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는 나의 메시지에 발렌티나가 따뜻한 답장을 보내왔다.
'친구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큰 접시에 루꼴라를 넉넉히 깔고 토마토, 올리브, 청포도, 치즈들을 올렸다.
소금과 후추를 톡톡 뿌린 후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넉넉하게 두르면 근사한 샐러드가 된다.
유럽은 감자가 특히 맛있다.
일단 기름에 감자를 익힌 후 버터를 넣어 구우면 고소하다.
주류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와인, 맥주, 그리고 쿠바산 럼주 하바나 클럽도 준비했다.
자매들의 숙소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리모컨을 챙겨 밖으로 나가니 세 명의 늘씬하고 경쾌한 동생들이 저 멀리 보였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인스타그램을 하는 SH는 고프로로 촬영하며 리포터처럼 까사 보나리를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다.
집구경을 마치고 리빙 룸에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잔을 부딪혔다.
그렇게 우리의 행복한 5월의 밤은 짧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