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Jul 10. 2024


중세의 맨해튼, 산 지미냐노

17.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치우시 키안차노 테르메(Chiusi-Chianciano Terme)역이 있다.

그곳에서 피렌체나 로마행 기차를 탈 수 있는데 기차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B와 내가 숙소에서 하루 쉬는 동안, A자매 중 2명은 로마에 갔다.

SY는 그냥 로마의 공기라도 맡아보고 싶다고 했고 MH는 그런 언니의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반면 SH는 작년에 다녀왔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단다.

그러므로 아침 일찍 언니와 동생을 치우시 역까지 태워다 주고 근처 트레킹을 간다고 했다.


책을 읽고, 사진을 랩탑에 옮기고, 유튜브를 보았다.

숙소에서 보내는 하루는 느리게 느껴졌다.

그렇게 각각의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 날,

피렌체에 가기로 한 날이다.

치우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된다. 

기차역까지 멀지도 않은데 괜히 차 두 대로 움직일 건 없지 싶어 다섯 명이 한 차로 움직였다.

 




치우시 키안차노 테르메



피렌체 역시 언제 와도 아름답다.

단 그 아름다움을 가리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너무 많은 여행자들이다.

어딜 가나 사람에 치어 마음이 차분하지 못하고 약간의 정서불안 같은 조급함이 느껴진다.

두오모 앞 벤치에 앉아 자매들이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한 조각 한 조각 다른 무늬로 만들어진 성당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예약한 시간이 되어 자매들은 피렌체 대성당의 종탑이 있는 쿠폴라로 가고 B와 나는 거리를 산책했다.

나는 B의 퍼스널 가이드가 되어 두오모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을 거쳐 베키오 다리로 안내하며 죽 살펴보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면 커피를 마시며 쉬고 그치면 다시 나갔다가 또 비가 세차게 내리면 생과일 오렌지 주스를 마시거나 젤라토를 먹으며 말이다.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빈티지 샵을 즐겨 찾는다.

각이 딱 서 있고 구김 하나 없어 누가 봐도 새 옷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손때가 묻어 부들부들해진 가죽이 좋고, 여러 번 세탁을 해서 색이 적당히 바래고 부드러워진 면 재킷등을 좋아한다.

한 마디로 옷도 자연스러운 게 좋다.

그날도 빈티지 샵을 몇 군데 찾아다녔다.


브라운 컬러의 부드러운 가죽 가방이 눈에 띄었는데 프라다 상징인 삼각 마크가 붙어 있었다.

가격을 흥정하려고 하니 보스에게 물어보겠노라며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는 원하는 가격을 말했다.

우리가 이 정도 가격이면 괜찮겠다고 예상했던 그 값이었다.

B는 흔쾌히 그 가방을, 나는 리넨 소재의 그린을 베이스로 네이비와 연두색의 체크무늬 긴소매셔츠와 반바지 셋업을 구입했다.      

사이즈도 잘 맞고 상태도 좋아 만족한 쇼핑이었다.

아주 세련되고 멋스러운 비주얼의 직원은 비가 오니 좀 기다리다 가도 된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머무르다가는 뭔가를 수도 있겠다 싶어 그곳을 빠져나왔다.

게다가 우리에겐 비옷과 우산이 있었다.








아르노 강
베키오 다리




베키오 궁전은 여러 번 가보았다.

그런데 시청사 안뜰에 처음 보는 조각이 있었다.

사자가 입에 뭘 물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 사람의 머리였다.

대체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알고 보니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프란체스코 베촐리((Francesco Vezzoli,1971년생)가 만든 '피에타'라는 작품이다.

이 인상적인 조각품은 20세기에 난폭하게 날뛰는 사자가 오래된 받침대 위에 서서 기원전 2세기 로마인의 머리를 부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데 이곳에 영구 미술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2023년 7월 24일)   




베키오 궁전
프란체스코 베촐리(Francesco Vezzoli) 작품, 피에타
프란체스코 베촐리(Francesco Vezzoli) 작품, 피에타
왼쪽부터 피렌체 문화재 의원, 베촐리, 피렌체 시장




그날은 원래 다섯 명이 모두 만나 점심으로 티본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그런데 우피치 미술관에 간 자매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각자 먹게 되었다.

피렌체에 9일이나 머물렀던 경험이 있기에 주변 동선은 빠삭하여 구글맵 없이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다.

그러므로 베키오 궁전이 있는 피렌체의 중심가, 시뇨리아 광장 부근의 레스토랑은 가격이 비싸다는 걸 안다.

심지어 젤라토 한 스쿱에 10유로를 주고 먹은 적도 있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 궁전 쪽으로 좀 걷다 보면 로컬들이 주로 이용하는 찐 맛집들이 있다.

매일 그 다리를 건너서 오갔던 시간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레스토랑 트라토리아(Trattoria da i Bigi e i Birghe)에 들어갔다.


티본스테이크는 무게(kg)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B와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다.

그러므로 왕새우 구이와 라구 소스의 라자냐, 사이드로 구운 감자와 시금치 볶음을 주문했다.

음식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큼지막한 새우는 질기지 않고 적당이 촉촉하며 쫄깃했고 넓적한 수제 파스타면으로 만든 라자냐 역시 쫀득하면서 고소한 치즈 맛이 일품이었다.

유럽은 어딜 가나 감자가 맛있으니 베이크드 포테이토 역시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버터에 볶은 시금치도 반찬 역할을 하여 주문하길 잘했다.

BB에게 물었다.


'식사 어떠셨어요?'

'오늘 최고로 맛있게 먹었어.'

'맛있게 드셨다니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식사를 마치고 그곳을 검색해 보니 평점이 무려 4.8이다. 

레스토랑 입구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분이 앉아있어서 물었다.


'혹시 당신이 셰프인가요?'

'아뇨, 셰프는 우리 엄마예요.'


프런트 데스크에 놓인 카드에 사진이 있어 물어본 것이다.

키 작은 할머니가 셰프 모자를 쓰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바로 그녀가 주인이었다.








키안차노 테르메에 온 지 벌써 나흘 째다.

이곳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물을 좋아하는 자매들이 온천을 지나칠 리 없다.

그녀들은 온천으로 우리는 산 지미냐노로 갈 예정이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는 투스카니의 언덕 마을로, 14개의 중세 탑이 스카이라인처럼 남아 있는 곳이다.

지난해, 그곳에 가려고 계획했으나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좀 어려울 것 같아 패스했었다.


이곳 역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쯤 되면 대체 이탈리아가 보유한 세계문화유산은 몇 개나 될까 궁금하다.

역시나 가장 많은 지역은 이탈리아이며, 중국이 57개,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52개로 뒤를 이었다.

조상 잘 둔 이탈리안들은 복 받은 민족이다.

우리나라는 16개를 보유하고 있다.




나라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순위




성문과 가까운 주차장은 P1, 만일 그곳이 만차라면 P2로 가야 하는데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한다.

다행히 P1에 빈자리가 있어 쉽게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산지미냐노는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도시 전체가 중세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니 약간 비뚤어진 삼각형 형태의 치스테르나 광장(Piazza della Cisterna)으로 이어졌다.

치스테르나는 우물이라는 뜻으로 1000년 전에 현지인들이 사용했던 우물이 광장 한 모퉁이에 있다.

우물 안에는 사람들이 던진 동전들이 그득했다.













광장에 다다르자마자 가장 눈에 띈 건 약 수십 명의 사람들이 광장을 가로질러 길게 줄을 있는 모습이다.

그게 뭔지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세계 젤라토 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을 했다는 젤라토 가게 돈도리(Gelateria Dondoli)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다.

오너이자 마스터 젤라토 메이커인 세르지오 돈도리가 곧 가게 이름이다.

그는 젤라토 클래스도 운영한다.  


돈돌리 젤라토는 물론 나의 일정표에도 메모를 해놓은 곳이다.

사람이 많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게 긴 줄에 합류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젤라토 메이커인 세르지오 돈돌리
돈돌리의 젤라토




광장 중앙의 우물가에는 마치 대가족이 빙 둘러앉아 젤라토를 먹는 것처럼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모습이 친근해 보였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 입안으로 들어온 젤라토의 시원함과 쫀득하고 달콤함은 보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사진이다.







산 지미냐노에는 왜 그렇게 많은 탑이 생긴 걸까?

당시 그곳의 귀족 가문들에게는 탑이 부의 상징이었다.

각 가문은 각자의 탑을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자체 군대까지 가질 정도였다고 한다. 

일부는 피난처로 짓기도 했지만 일부는 고귀한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굴뚝같이 비어있는 구조물로 짓기도 했다.

14세기, 산 지미냐노는 다른 언덕 마을과 마찬가지로 피렌체의 지배를 받아 그들의 탑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원래 72개였는데 어떻게든 지금까지 살아남은 탑이 14개이다. 

탑의 축성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당시 산 지미냐노의 인구가 1만 3천 명 정도였으므로 180명 당 한 개의 탑을 지은 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탑은 1200년대 초에 지어진 토레 로뇨사(Torre Rognosa)로 52미터, 가장 높은 탑은 54미터의 토레 그로싸(Torre Grossa)다.

토레 그로싸(Torre Grossa)가 제한 높이인 52m를 초과하자 최고 행정관은 탑의 과열경쟁을 막으려고 최대 높이를 52m로 제한하는 법령을 정했다.

이 규정이 발표되자 유세 가문들은 높이로는 경쟁이 어렵게 되자 쌍둥이 탑까지 만들었다. 

그것은 살부치(Salvuccis)가문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살부치 탑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탑은 단순히 위신을 세우기 위해 만든 속이 텅 빈 탑이다. 

어떤 이들은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여기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청사 옆에 있는 토레 그로싸는 올라갈 수 있지만 21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니 만만치 않다.












탑의 주인들은 경쟁자에게 빼앗길까 봐 출입이 어렵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탑의 출입구를 만들지 않거나 아주 비밀스럽게, 그리고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을 통해 출입했는데 낮에는 사다리를 걸어 놓고 밤에는 사다리를 치웠다고 한다.

탑 내부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가로, 세로가 1m로 아주 좁다. 

그러므로 발을 펴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보통, 1층에는 가게를 만들고  2층부터 사람들이 살았는데 작은 방 여러 개가 포개져 있었고 맨 위층에는 부엌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화재를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중세 시대에는 산 지미냐노에서 시에나나 피렌체까지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이곳은 로마를 오가는 순례자들의 중요한 중간 지점이 되었다.

광장에는 12세기 순례자 쉼터의 유적이 남아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여관과 선술집이 줄지어 있고 하녀와 아이들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이 광장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당장이라도 영화촬영을 한다 해도 문제없어 보였다.

광장에 펼쳐진 파라솔과 의자 테이블만 치우고 간판의 레터링만 중세 스타일로 바꾸면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갈 것  같다.








두오모 광장에는 도시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이 서 있는데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산 로렌초 상당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그곳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포폴로 궁전(Palazzo del Popolo)으로도 알려진 코뮤날레 궁전의 프레스코화였다.

1303년에 필리푸치오(Filippuchio)가 그린 이 프레스코화들은 중세 시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자세한 기록으로  가치가 높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벗겨지고 빛이 바래서 파스텔의 색조를 띄는 것이 더 아름다웠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지역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많이 가보았지만 산 지미냐노는 그중 손꼽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탑이 스카이 라인을 이룬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

건축물의 형태가 다른 점이 많다.

자세히 보면 창문이 거의 없거나 작고 높은 위치에 많다.

창문이 있던 자리를 아예 막아버리거나 작은 구멍이 뚫린 벽도 있다.

벽돌의 크기와 모양은 물론이고 색깔까지 모두 다르다.

물론 돌을 쌓아 만든 집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섬세하다.

라인이나 높이와 크기가 모두 달라 독특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있다.

높은 탑이 많아서 만들어내는 그늘과 그림자도 아름답다.

나는 왜 이렇게 중세의 집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이탈리아의 조용한 마을에서 1~2년 살아볼까?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물론 이렇게 여행자가 북적대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집마다 모양이 다른 창문과 벽의 독특한 구멍






12시부터 식사를 할 수 있다기에 우선 커피를 주문했다.

여행을 가보면 모두 놀러 다니는 사람만 있는 듯하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모순인데 말이다.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동의 없이 찍을 때, 그러니까 도촬을 할 때면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그래도 결과물이 괜찮으면 흐뭇하다.

식사 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메뉴를 보는 커플, 스케치하는 남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여인, 악기를 조율하며 버스킹을 준비하는 남자...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기분을 갖고 있다. 

 













광장 한쪽에 포토 폰타넬리라는 사진을 파는 상점이 있었다.

당연히 'No photo'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사진은 찍지 않았다.

흑백 사진이 주를 이루는데 좋은 사진이 많다.

그중 정말 맘에 드는 사진이 있었다.

1928년에 촬영된 작품이니 거의 100년 전이다.


'저 사진 한 장 살까 봐요.'

'뭐 하러, 자네 사진이나 별반 진배없구먼.'


그 말을 믿는 건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만보다 빈 손으로 나왔다.

산 지미냐노에서 한 가지 잘못한 게 있다면 그 사진을 안 산 것이다. 

그러나 후회해도 도리가 없다.


뭔가가 망설여질 때는 하는 게 맞다.

그냥 내 생각이다.




Fontanelli라는 상점에서 판매하던 1928년 사진 (출처 구글)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화살표와 함께 푼토 파노라믹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뷰 포인트라는 뜻이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호기심에 쭉 따라 들어갔더니 인근 평야에 펼쳐진 포도밭과 푸른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미 발 도르차의 아름다운 풍경을 너무 많이 보아온 탓일까?

큰 감흥은 없었다.

 










성문을 막 나섰는데 벤치에 개를 데리고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덩치는 크지만 얼굴이 순둥순둥하니 예쁘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뜻을 비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어떤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물었다.


'P2는 어디에 있나요?'

'미안합니다만 어디 있는지 몰라요.'


P1은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왠지 아쉬움이 잔뜩 남은 산 지미냐노에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을 뒤로하고 시에나(Siena)로 향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너져가는 절벽마을에서도 꽃을 가꾸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