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시킴(2)
그녀와 나는 이른 아침 차에 올랐다. 창문을 내리자 고산지대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차가 굽이길에 맞춰 흔들릴 때마다 나는 멀미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까 긴장했다. 멀미가 올라오기 전 나는 시선을 멀리 두려고 애썼고, 그녀는 창밖을 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대화라도 하면 이 흔들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
여행에서 가장 흔한, 그래서 가장 안전한 질문. 그저 멀미를 잊기 위한 통상적인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 질문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벨기에 국적이라고 했지만, 말끝을 흐렸다.
“I’m from Belgium. But…” 잠시 적막이 흐른 뒤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I was born in India.”
그녀는 시킴 아래쪽, 차로 유명한 도시 다르질링(Darjeeling)에서 태어났고, 갓난아기 때 벨기에로 입양되었다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인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막상 오니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스스로도 혼란스럽다고 했다. 태어난 고향에 온 것인지, 그저 낯선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국경은 지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있다 것을.
룸텍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거리만 보면 20여 킬로미터 남짓이라 가까워 보였지만, 고산지대인 이곳에서는 숫자가 쉽게 통하지 않는다. 차는 굽이마다 속도를 줄였고, 우리는 한 시간쯤을 달려서야 룸텍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한 달 일정으로 인도를 여행 중인데, 이렇게 오래 부모의 생활권 밖으로 떠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는 표정이 조금 밝아졌고,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다시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이야말로 그녀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 같았다.
사원 입구에 다다르자 대학 캠퍼스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산비탈을 따라 본전과 부속 건물들이 층층이 이어지고, 승방이 넓은 마당을 감싸며 하나의 구역을 이뤘다. ‘사원’이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컸고, ‘마을’이라고 하기엔 아직 작았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걸었다. 낮은 염불이 멀리서 번져오는 듯했고, 기도문과 깃발은 장식이 아니라 바람에 반응하며 살아 움직였다. 그러다 사원 한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영어로 옮겨 적어 둔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The difference between like & love.
when you like a flower, you just pluck it.
But when you love a flower, you water it daily.
직역하면 이렇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꽃을 좋아하면 꺾어버리지만, 꽃을 사랑하면 매일 물을 준다. 나는 그 문구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좋아한다’는 순간의 매력에 끌려 손을 뻗는 마음이고, ‘사랑한다’는 오래 바라보고 돌보는 마음이라는 뜻일까. 좋아함이 내 만족을 향한 감정이라면, 사랑은 나와 상대 모두의 행복을 위한 행동에 가깝다. 그 차이를 이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말해버리다니.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여행을 대하는 내 태도를 자연스럽게 되짚게 됐다. 2005년 처음 인도 여행을 시작했을 때의 나는 ‘좋아하는 방식’에 더 가까웠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디를 다녀왔는지’가 더 중요했고, 얼마나 많은 곳을 갔었는지 하는 ‘숫자’가 더 중요했다. 따지고 보면 그건 ‘나의 여행’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여행에 가까웠다.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여행은 가치가 없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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