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라
호스피스를 그만두고 6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저의 마지막 날이었던 11월 30일은 출근 전부터 무사히 가기를 고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돌보던 환우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당일 오후 2시 이후로 제 멘탈은 절반이 외출한 상태로 일을 했어요.
그새 환우와 정이 들었냐고요? 아니요. 보통 환우들이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상주한 가족들을 간호사가 챙겨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걸 charting 할 때는 emotional support라고만 표기하지만, 실상은 무척 버거운 일입니다. 돌아가시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문턱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족들이 애도하는 상태가 되기에 관련된 교육시키고(불안정한 정서 상태에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마는...), 같이 울고, 다독이고, 또 같이 울고, 듣고, 듣고, 듣고''' 이러면서 간호사들도 같은 배를 탄 처지에서 슬퍼하고 애도하게 됩니다.
저보다 멘탈이 좋으신 분들은 수월하겠으나 저는 올해 기록적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네요.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호스피스 환우들은 연로하신, 말기암으로 고통받으시는 부모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였어요. 83살이신 할머니께서 다른 자식들과 교대로 낮에 죽어가는 아들을 돌보고 있었지요. 임종 직전의 아들에게 성가를 불러주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저를 키워주신 할아버지께서 이런 마음으로 병풍을 걷어 차가운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으셨을까 하는 마음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엉엉 우는 저를 보고, 제 사정을 모르는 환우의 어머님께서 되려 진정시키시는 장관을 만들었네요. 25년이 지난 상황을 이렇게 다시 조우할 줄은 모르고 살았어요.
퇴근을 하고 나서는 늦게까지 놀아야지 하는 생각이 낮 동안의 경험덕에 10시에 자동 종료됐습니다. 불쌍한 와인, 겨우 몸뚱이를 씻고 10시에 쓰러져 잤습니다. 다음 날, 다다음 날이 되어도 사직한 것이 믿기지가 않더군요. 몸도 여전히 피곤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은 정말 살 것 같습니다. 이게 앞으로 제가 먹고살 일의 무게라는 것을 직감하는 때입니다. 허나, 환우분들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요. 제 생애 가장 보람되고 뿌듯한 순간이 이 분들을 씻겨 드리고, 분을 발라 드릴 때라... 앞으로도 감내하고 무쇠의 뿔처럼!
12월 4일에는 러쉬에서 첫 근무였어요. 4시간 근무, baby shift라고 하는데요, 너무 재밌었어요. 일단 호스피스 오프 때 무한 반복한 덕에 입욕제와 비누는 외워둔 상태여서 더 수월했어요. 하지만 처음 접하는 상품도 많아 어리둥절하기도 했고요. 다음 주에는 십 대 조카들을 데리고 매장에 가서 장바구니에 그들의 선물을 담을 예정입니다. 제 통장이 텅텅 털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일단 상품을 알아야 소비자에게 필요한 설명을 더 잘할 수 있기에, 샘플을 따로 담아왔는데요, 직원용 샘플 케이스가 따로 있더라고요. 매장마다 개수를 정해주기도하는 거 같은데, 안면이 있는 매니저였기에 농담으로 20개 정도는 샘플링해야 할 거 같은데 했는데, 진지하게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20개는 담으려고 해도 귀찮고요ㅋㅋㅋ 그렇게 말하면서도 개수를 집에 와서 세 보니 16개... 제일 만만한 샤워젤과 헤어 컨디셔너, 헤어 스타일링 크림을 공략했습니다. 4일 밤 제 온몸이 러쉬가 되어 기분이가 좋았지만, 이것도 잠시 향이 진동하니 머리가 나중에는 아프더라고요ㅋㅋㅋ 워~ 워~ 진정해 마음아...
이제 3주간 6일만 근무합니다. 많이 근무할 생각이 없기에 딱입니다. 앞으로 다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더라도 러쉬 일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간호일과는 180도 다르기에 마음을 분산시키기에 딱인 거 같아요. 고작 4시간인데 12시간 넘게 서서, 빠른 걸음으로 일하는 간호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 아니겠습니까ㅋ
이사 준비는 아주 느리게 진척되고 있어요. 이사 갈 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방을 찾고 있고요. 사실 이에 대해 풀 썰이 있으나 상기하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네요. 이 두통의 근원은 집주인이 중동인이라는 것까지만 말씀드릴게요.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 경험상... 노골적으로 쪼는, 융통성 없는 문화가 치를 떨게 하네요. 우웩.
구직은 어떻게 돼 가고 있냐고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지금 하는 게 의미가 없거든요. 보통 이력서를 보내면 연락이 오긴 하나, 2주 안에 인계를 받고 시작할 사람을 찾기에 12월 말에나 일을 할 수 있는 저의 상황상 그냥 기다리는 게 답입니다. 12월 셋째 주가 되면 이력서 공장을 돌리겠습니다.
제 인생 일대에 호스피스는 더 없습니다. 이번에는 풀타임이나 파트로 요양병원으로, 캐주얼로 응급병동을 지원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러쉬까지 저를 받아주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말이지요. 운명의 흐름대로 따라가겠습니다.
오늘은 이탈리안 토마토 파스티나 수프와 올리브를 넣은 디너롤을 만들었어요. 디너롤은 1차 발효를 시키는 중이고요. 수프를 맛있게 먹고, 현재 식곤증이 말도 못 합니다. 오후에는 장을 봐서 티라미수를 하려고요. 사실 어제 만들 줄 알았는데, 크림치즈가 없더군요. 정말 먹고 싶었는데 아쉬웠어요. 스트레스에는 당분이 답 아닌가요ㅋ
내일은 다시 러쉬 근무입니다. 예쁘게 차려입고 4시간 즐기고 오겠습니다. 이번엔 퇴근 후 샴푸바를 8개 정도 넉넉히 사둘까 해요. 직원 할인 50% 좋아요. 사장님 좋아요. 이 할인 맛에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것은... 전체 공개할게요ㅋ
Photo: Unsplash Trung Do B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