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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팜팜 Mar 09. 2021

[약사의 직업 여행기]

04. 공부에는 끝이 없어라

이전 글에서는 약국 시절을 돌이켜보며, 바람직했을 마음가짐에 대해서 썼다면

이번 글에서는 권고사항이 아닌 필수적인 자질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마음을 낮게 두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에 그친다면 그저 착하고 능력 없는 약사가 돼버릴 것이다. 

병태 생리, 약리학에 대한 복습은 물론이고 빠르게 개발되는 신약들에 대한 catch up

진료지침의 변화와 그에 따른 처방 트렌드 파악

양방과 병행 치료 시 도움이 되는 한방 제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공부는 필수 아닌 필수이다.


물론 최소한의 보수교육 이수시간만 채운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면허만 가지고 있다고 똑같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돌팔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겠는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면허를 따기 위해 치러야 하는 국가고시는 합격률이 매우 높은 시험이다. 

하지만 합격률이 아무리 높아도 운전면허 따듯이 대충 공부해서는 안될 시험이었고 

그 양도 방대하여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를 반복한 끝에 시험을 치러낸다. 

나의 경우, "수능 망하면 어쩌지?" 했던 걱정보다 

"면허시험 나만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더 큰 공포였었다.

무튼 이렇게 나만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열심히 공부하고 면허시험을 치렀으니

시험 직후에는 얼마나 따끈따끈 한 지식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겠는가.


최신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장착하고 약국 카운터 뒤에 섰고

첫 근무를 마친 후 깨달았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을. 

나는 따끈따끈한 지식을 가지기만 한 돌팔이라는 것을. 


지식을 바탕으로 5지선다에서 답을 고를 수는 있었지만 환자는 깔끔한 보기를 내어주지 않는다. 

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언제나 처방과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한 번은 통증의학과에서 삼환계 항우울제 중 하나인 약을 처방받아 온 환자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분명 우울증 약이라고 배웠는데 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아오지 않았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약을 들고나가서 환자에게 "혹시 좀... 울적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네??" 하고 황당한 대답을 하는 환자

뒤에서 지켜보시던 국장님이 깜짝 놀라서 대신 설명을 해주셨다.

알고 보니 그 약은 요즘엔 우울증 치료에 잘 쓰이지 않고, 작용기전을 활용하여 손발이 저릿저릿한 말초신경증상에 사용되었던 것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위산 분비가 심한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이 사마귀 치료를 위해 고용량으로 처방되는가 하면

항전간제로 배운 약이 다이어트 약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근거를 가지고 사용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자칫하면 진료지침에 맞게 난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환자에게 잘못된 안내를 할뻔한 상황들이다. 

환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불안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병원에 대한 괜한 불신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처방례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였다. 


지식뿐 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엄청난 경험과 공부가 필요하다.


한 번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다. 

야외에서 짐 나르는 일을 하시던 손님이 오셔서 

"나 더위 먹었어, 더위 먹은데 쓰는 약 좀 줘봐"라고 하시는 것이다.

더위 먹은 게 뭐지? 더위 먹음이 적응증인 약이 있나? 

질문이 소화가 안되어서 눈만 열심히 굴려대며 "더위를 먹으셨다고요??" 하는 질문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었다.

사실 더위 먹었다 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위 먹었다고 느끼는 증상이 무엇인지

즉 어지러우면 어지럼을 해소하고, 속이 울렁거리면 그 울렁증을 해소하는 대증치료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나는 곧이곧대로 더위 먹음에 사용되는 약을 찾으려 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이 수줍게 들어오셔서 

속삭이듯이 "밤에 쓰는 크림 좀 줘봐" 하시는 것이다.

아니 뭐 이런 질문을 이렇게 속삭이듯 말하지..라고 의아해하면서 큰 목소리로

"밤에 쓰는 거? 나이트 크림??? 영양 크림?? 수분크림??? 아아 기미 크림~~???" 

라고 물었다.

할머님은 답답한 얼굴로 "아유 그게 아니라... 아니에요 됐어"하고 그대로 나가셨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몰라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국장님을 쳐다보니, 할머니 어를 번역해주셨다.

정답은 뜨거운 밤을 보낼 때 필요한 윤활제

할머니 연령대에는 육체적인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눈치 없이 큰 목소리로 오답을 줄줄이 읊어댔으니...

할머니 죄송합니다..


여태 나는 눈치 하면 나! 의사소통하나는 자신 있지! 하고 생각했는데, 

사실 유연함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었다.

쉽게 말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경험의 누적으로 이제는 머리 회전이 좀 되긴 하지만 아직도 경력 있으신 약사님들을 따라가긴 멀었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 언어는 더욱이나


지식, 의사소통, 상담 방법에 대한 총체적인 공부에는 끊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약국을 다니지 않는 지금도

온라인으로 약사회 강의를 들으며 내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새로운 지식은 무엇인지 공부하고 있다. 

퇴근 후 2시간씩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지만

ZOOM 같은 최신 기술이 익숙하지 않으신 정말 나이 드신 약사님들도 열심히 꼬박꼬박 강의를 들으시는 모습을 보며 반성하고 또 자극받는다.


면허 하나로 만고 땡이 아니라 

면허는 시작점일 뿐 배움엔 끊임이 없다는 걸

열심히 노력해서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피해 주지 않는 것

가장 기본적인 약사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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