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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pr 19. 2022

BTS 병역 특례에 관하여.

단순히 기분 좋다고 면제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병역특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정치권이 BTS 병역 특례 통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시민 사회의 의견도 활발하다. 4~5년 전부터 꾸준히 논의된 이야기지만 멤버들의 입대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 


BTS의 입대 여부는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질문과 예술·체육요원 병역특례 기준 수정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국위 선양'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 단순히 기분 좋다고 면제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숨만 나온다. 케이팝의 성공을 바라보는 정치계와 우리 사회의 시각, 그리고 한계를 재차 확인한다. 




1.


케이팝의 국위 선양을 어떻게 정량화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빌보드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와 그래미 어워드를 언급한다.


일단 첫 번째 문제, 온통 미국 중심이다. UK 차트 1위, 브릿 어워드 수상은 병역 특례 해당 사항에 미달인가? 오리콘 차트는? 전 세계 곳곳에서 환대와 사랑을 받는 수많은 케이팝 그룹들은 어쩌고. 월드 투어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그룹, 코첼라 페스티벌처럼 큰 무대에서 활약한 그룹은? 일본 돔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룹이 등장한다면? 그들은 BTS만큼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군대에 가야 하나?


두 번째 문제. 미국 시상식, 차트를 기준으로 해도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한 슈퍼엠과 스트레이키즈는 국위 선양을 덜 했나? 케이팝 걸그룹이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받으면 어떤 혜택을 줘야 할까? 그래미 어워드 본상과 장르 필드 수상에 있어 어떻게 차등을 나눌 것인가. 셋 중 두 시상식, 아니 하나의 시상식에서만 상을 받는다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는 팬 투표로 결정되는 시상식인데 그래미와 동등한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나?


BTS의 성공 이후 케이팝의 글로벌 성공을 미국 시장에 한정 짓는 프레임이 더욱 공고해졌다. 원더걸스 때부터 케이팝 최후의 개척지처럼 여겨진 미국 시장에 깃발을 꽂았으니 감격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성공, 나머지는 그냥 글로벌 히트, 이런 시선은 잘못됐다.


세계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국가의 차트와 시상식에서 인정받는 것은 분명 값진 일이지만 이건 올림픽이 아니다. 케이팝의 글로벌 히트 속에서 우리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의 열광과 성공을 짚어야 하고 오늘날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견인한 각국 팬덤의 흐름을 조명해야 한다. 관계자들부터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정치계는 오죽하겠나. 레코딩 아카데미와 빌보드 관계자들이 웃을 일이다.


2.


병역 특례법이 통과된 후의 케이팝 시장을 상상해보자. ‘열심히 하면 군대 안 갈 수 있어’라는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긴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공백기를 없애고 국위 선양이라는 훈장까지 달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대형 기획사들에는 어려움이 없다. 미국 차트, 시상식의 기준에 맞춰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면 된다. 외국 작곡가들의 영어 곡을 받고, 미국 시장에서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케이팝에 더없이 친화적인 글로벌 플랫폼은 엄청난 바이럴 효과로 이들의 성공을 지원 사격할 것이다. 이제 케이팝은 국가의 주요 전략 수출품이 된다. 그들의 음악은 예술 작품을 넘어 국위 선양과 기획사의 미래 재무제표를 좌우할 전략 자산이 된다. 그렇게 해서 미국 중심의 어떤 기준 하나만 충족하면 군 면제다. 축하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허름한 빅히트 사옥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탄탄한 자본을 갖춘 회사의 신인 그룹과 영세한 기획사의 신인 그룹, 둘 다 무대 위 빛나는 모습을 꿈꾸며 피 나는 연습생 시절을 견뎌낸 이들임에도 그 결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 데뷔 조에 들지 못하고 다른 기획사로 들어간 연습생들의 미래가 정해져 버린다. 어떤 성공을 거두더라도 결국 나이가 차면 입대해야 하는 운명이다.


BTS 특례법 아래 깔린 가장 해로운 프레임이 여기 있다. 군대는 결국 ‘루저’들이 가는 곳이다. 특정 성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모이는 곳, 젊음을 희생해 열정을 털어놓았으나 미달한 이들이 가는 곳이다. '평등한 병역'이라는 이상이 이미 허망한 가운데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 스타를 위한 특례법이 제정된다... 현 징병제의 모순과 미래 대책을 논해야 할 시기에 또 다른 갈라치기를 하는 것이다.


3.


정치권은 케이팝의 성공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BTS 병역 특례법에 대해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법을 열겠다고 하더니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기획사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여러 차례 멤버들이 현역 입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언론에 조속한 결론을 촉구했다. 대중문화계는 병역 특례 추진에 환영한다. 동시에 여론은 병역 특례 제도 자체에 호의적이지 않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입대하면 좋든 싫든 그들은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군대에서 스토킹을 당한 지드래곤 이상의 별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군복을 입은 방탄소년단보다는 글로벌 스테이지를 누비며 본인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는 방탄소년단이 근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건 다른 그룹도 마찬가지다.


한 편으로는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현역 병사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노후한 군 시설이 보수되는 그림도 그려본다. BTS 멤버에게 부실한 도시락과 한국 전쟁 시기의 물통,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대물림되는 부조리를 던져줄 부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속전속결을 말하지만, 이 문제는 졸속행정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병력 특례 제도 자체의 수정, 대중예술인의 병역 특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 현 징병제의 모순과 한계 등 다양한 논의를 펼쳐야 한다. BTS가 세계를 호령하는 동안 넋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생색내기라니.


모두가 속전속결을 말하지만, 이 문제는 졸속행정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병력 특례 제도 자체의 수정, 대중예술인의 병역 특례에 대한 명확한 기준, 현 징병제의 모순과 한계 등 다양한 논의를 펼쳐야 한다. 어렵겠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유엔에서 한 연설처럼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다. 안타깝게도 무거운 침묵만이 흐른다. 자국에서 작아지는 케이팝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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