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홀카메라의 원리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우울증 진료 환자 수는 2019년 이미 약 80만 명에 달했다. 2020년 상반기의 경우 약 60만 명이 우울증 진료를 받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숫자로는 감이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2020년 6월 통계청 기준 전국 도시의 인구 순위와 비교해볼까 한다. 2019년 우울증으로 병원에 간 환자의 수는 약 83만 명의 인구를 가진 경기도 부천시(인구순위 15위)의 인구수와 맞먹는다. 그리고 2020년 상반기에 우울증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인구순위 19위인 경기도 안산시의 약 65만 명과 20위인 경기도 안양시의 약 56만 명의 시민들 사이 어디쯤에 있다.
나는 2016년부터 우울증 환자 통계의 숫자1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서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같이 끼어들기 어려웠던 아이는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병원을 방문했던 날 1차 면담에서 담당선생님이 나에게 “어떻게 오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살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되돌이켜 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A4 용지보다도 얇아서 찢어질 듯 말 듯 위태로울 때, 오히려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살고 싶었다.
다만 나는 살고 싶은데, 살 이유가 마땅히 없었다. 삶에 나를 붙들고 있는게 더이상 없다는 판단이 나를 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삶에 미련이 없다는 말은 어쩌면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서 왔다고 말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F32 코드(우울증 삽화)를 갖고 있는 공식적인 5년차 우울증 환자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오래 치료를 받게 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우울증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것도 최근이니까. 현재의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여 판단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정신건강, 기분의 문제는 숫자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5년 동안 치료를 받았음에도 치료를 받는 동안 내 자리가 제자리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1보라도 전진을 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2보 후퇴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어느샌가 내 자신이 우울했던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감정선을 점점 못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째서 나는 그 때 그런 생각을 한 거지? 그런 행동을 대체 왜 한 거지?’라는 질문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단절이 발생했다. 그러나 오해를 하면 안 된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나’가 되었다는 게 아니니까. 과거의 ‘나’는 여전히 내 토대를 이루고 있다.
내가 살고 싶어한다는 걸 막 깨닫기 전에, 그때의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치 바늘구멍이 뚫리지 않은 핀홀카메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그때를 생각하면 어쩐지 칠흑과 같은 어둠만이 기억 속에 떠오른다. 핀홀카메라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은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장치에 대해서 아는가? 핀홀카메라는 바늘구멍이 렌즈의 역할을 하는 카메라의 시초 발명품이다. 바늘구멍을 뚫었을 뿐인데 필름에 상이 맺힌다는 사실이 어릴 적 과학시간에 너무나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 작은 구멍을 통해서 필름에 커다란 세상을 담아낸다.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건 딱 그 바늘만큼의 숨구멍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어떤 핀홀카메라를 들고 있을까.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세상을 보고 있다. 내가 그때 살기로 결심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내 마음속 필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의 풍경과 뺨에 스치는 바람을 담아내지 못 했을테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점점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우울을 담아내려고 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나’를 새롭게 담아내는 일은 나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우울에게 작별을 고하는 인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