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2019_뉴트로 전주] 기욤 브락 감독의 〈보물섬〉을 보고
“보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내 가발을 걸고 말하겠는데,
이곳에는 분명 열병이 돌고 있어.”
_《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영화는 동명의 제목을 가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오프닝씬의 주인공은 네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이다. 휴양지의 해변으로 들어가려다 동행한 부모가 없어 경비원에게 제지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경비원들을 설득하려 나름 궤변을 펼치며 노력하지만 결국 쫓겨난 그들은 경비원들의 감시가 없는 쪽의 강을 헤엄쳐 건너 휴양지로 몰래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이들의 발칙하면서도 귀여운 잠입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이들을 따라 휴양지 안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영화 내내 드넓은 휴양지의 풍경을 이루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공간의 면면과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휴양지 안의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찍기로 정한 사람들, 그들을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였다. 카메라는 어린아이부터 젊은 남녀, 엄마와 딸, 가족 모임, 휴양지 경비원 및 여타 직원, 관리직 간부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따라간다.
처음엔 이들을 세대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철없이 뛰노는 어린아이들,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고 호기롭게 다이빙으로 담력을 시험하는 청년들, 그리고 홀로 여유와 고독을 즐기는 노인들을 보면서 휴양지라는 공간을 즐기는 방식이 세대별로 나뉘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영화가 점점 흘러가면서 다른 점들이 좀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휴양지 공간에서 맡은 역할과 규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에게 유희와 일탈의 자유로움을 제공하는 공간인 휴양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제한'을 거는 법과 규칙으로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나는 휴양지를 이루는 사람들을 '제한'을 법과 규칙으로 규정하는 사람, 규정된 '제한'들을 준수하도록 관리 및 감시를 수행하는 사람, 그리고 그 '제한'들을 준수하거나 때로는 속이고 어겨가며 휴양지를 즐기는 사람으로 나누어 보았다. 물론 세대별로 나누는 것도 이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이 될 것이고, 혹은 또 다른 방식의 관점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어떤 하나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 드넓은 휴양지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찬찬히 보여주며 다양한 시선과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휴양지의 사람들을 위와 같이 나눈 것은 다만 내가 '보물섬'을 탐험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루트일 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간부로 보이는 휴양지의 관리자 두 명이 회의를 하는 장면들이었다. 유희와 휴식의 공간인 휴양지와 대비되는 회의실(업무용 공간)이라는 공간도 그렇거니와 테이블에 앉은 두 관리자를 비추는 쇼트 또한 영화 내내 앵글과 사이즈가 고정된 채 바뀌지 않아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이들은 출입을 제한할 반려동물의 기준을 정하기도 하고, CCTV를 설치할 곳을 정하기도 하며, 소나기가 쏟아져 기온이 내려가자 폐장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회의실에서 정해진 규칙들을 적용해 실행에 옮기는 인물들이 휴양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경비원을 비롯해 해변의 감시요원, 보트대여소의 직원 등이 그들이다. 영화에서 유독 반복되는 상황 중 하나는 이러한 현장의 직원들이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게 제지를 가하는 장면이다. 이들은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하려고 벼르는 청년들에게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몰래 들어온 어린아이들을 잡아 훈계한 후 내보내기도 한다.
휴양지를 즐기러 온 일반인들은 대부분 규율에 따르며 정해진 범위 내에서 유희를 즐긴다. 줄을 맞춰 입장하거나 때론 정해진 개장시간을 파악하지 못해 근처에서 두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는 등 휴양지의 규칙을 준수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일탈을 제공하는 휴양지 공간 또한 인위적으로 조성된 일정한 시스템의 통제와 감시하에 운영되고 있다. 〈보물섬〉은 특히 회의실의 두 간부와 사람들을 제지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휴양지라는 공간에도 정해진 규칙과 감시, 관리가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이를 통해 이 영화가 '보물섬'을 발견하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큰 감흥을 주는 장면들은 휴양지가 정한 '제한'을 위반하는 순간들이다. 앞서 언급했던 오프닝씬에서부터 이미 이 위반의 즐거움, 일탈의 통쾌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직원들이 한 번 제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하는 청년들과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뒤따라 뛰어내리는 장면은 그 연달아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통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 위반의 즐거움과 일탈의 흥분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건 보트대여소 직원의 이야기다. 이 청년은 규율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감시, 관리해야 하는 휴양지 직원이면서도 그 누구보다 일탈의 유희와 낭만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해가 저물어 어슴푸레한 빛이 깔린 하늘을 배경으로 다이빙을 무서워하는 여자와 함께 높은 탑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서핑보드를 타고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또한 모험의 긴장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휴양지가 미지의 모험과 낭만을 품은 보물섬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정해진 규칙을 넘나들면서 벌이는 일탈의 모험은 흥미진진한 '보물섬'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보물섬을 즐기는 두 번째 방법은 개인의 삶의 비밀을 듣는 일이다. 휴양지의 야간 경비 일을 하는 기니 출신의 경비원은 사실은 말 한마디로 인해 독재 정권의 경찰들에게 납치되어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남자다. 휴양지의 밤을 홀로 지키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슬프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또한 휴양지에 놀러온 이주민 부부가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휘파람으로 백조들을 모을 수 있는 할아버지는 휴양지가 개발되기 전 자연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이 지역의 주민이다. 이러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은 휴양지의 시스템이 이들에게 부여한 역할을 넘어선다. 우리의 일상,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일탈, 새로운 '보물섬'이다.
이처럼 ‘보물섬’은 정해진 규칙, 익숙한 일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나타난다. 일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즐기고 현재를 소중히 하며, 타인의 삶까지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곧 보물섬을 발견하는 방법이 아닐까.
사실은 우리 모두 이러한 '보물섬'을 발견하는 능력을 한때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엔 골목, 언덕, 계단,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놀이와 탐험의 대상, 즉 보물섬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어린 두 형제가 노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금방 숨고 금방 찾는, 싱거워 보이는 숨바꼭질도 그들에겐 재미있는 놀이이고, 그들을 둘러싼 자연은 모두 색깔 찾기 놀이의 대상이다. 동생의 손을 이끌며 힘겹게 오르는 언덕은 그들에게 흥미진진한 탐험의 대상이다.
이렇듯 〈보물섬〉은 관객에게 추억 속에 있는 유년시절 각자만의 보물섬을 다시 찾길 권유하는 듯하다. 두 형제는 폐장된 휴양지의 문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폐장되었으니 마음껏 노는 거야."
*키노라이츠에서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로 선정되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