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모 Sep 03. 2020

최악의 락스타, 베키 썸씽의 기이한 강령회

[JIFF2019_뉴트로 전주]알렉스 로스 페리 감독의 〈그녀의 내음〉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 뮤지션이 외적인 성공에 비해 내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해 파탄에 이르거나, 파탄에 이를 뻔하다가 다시 회개하는 식의 스토리는 기존의 뮤지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작년에 개봉한 〈스타 이즈 본〉은 이미 이와 비슷한 스토리로 세 번째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고, 실제 인물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영화화한 〈보헤미안 랩소디〉 또한 비슷한 맥락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내음〉 또한 마찬가지다. 괴팍한 천재 뮤지션의 갱생 스토리. 다만 〈그녀의 내음〉은 그 괴팍한 천재 뮤지션이 여성(이자 엄마)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그녀가 속한 밴드 또한 멤버가 모두 여성이며, 나오는 동료 뮤지션들도 모두 여성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내음〉이 캐릭터의 전형성에 갇힌 채 단순히 성별의 전복만을 꾀한 영화는 아니다. 〈그녀의 내음〉에서 보여주는 ‘괴팍한 락스타’ 베키는 그 어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독보적이면서도 강렬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주인공 베키 썸씽(엘리자베스 모스)이 속한 여성 삼인조 밴드 ‘썸씽 쉬Something She’의 공연 장면으로 시작된다. 공연을 멋지게 끝낸 밴드의 멤버들이 무대를 내려와 대기실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시동을 건다. 여자친구와 함께 딸을 데리고 온 헤어진 전남편에게 짜증과 비난, 분노를 퍼붓는 베키와 이를 말리는 주변인들의 모습이 신경질적인 사운드와 핸드헬드 촬영,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빠른 편집으로 혼란스럽게 제시된다. 설상가상으로, 베키는 오컬트 종교에 빠져 있는데, 이 오컬트 종교 의식을 하러 온 종교인 덕분에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기괴한 느낌마저 더한다. 오랜 시간 지속되는 이 대기실 시퀀스는 촬영과 편집, 사운드와, 결정적으로 엘리자베스 모스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어우러져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영화는 이 대기실 시퀀스처럼 한 공간 안에서 베키의 패악질(어떤 표현이 적당할지 고민했는데 이 단어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 같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현재 시점의 시퀀스와 필름으로 찍은 듯한 화질의 4:3 화면비의 과거 회상씬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이 과거 회상씬은 현재의 참담한 밴드 상황과 대비되는 ‘썸씽 쉬’가 성공 가도를 달리던 때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 씬들은 그들이 함께 겪어온 시간을 짐작케 해 베키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할 여지를 열어준다. 


〈그녀의 내음〉에서는 공연장의 대기실 공간에서 진행되는 시퀀스가 총 세 번 등장한다. 베키의 괴팍함이 처음으로 보여지는 오프닝씬 이후의 첫 시퀀스와 베키의 패악질이 절정에 달하는 ‘에이커 걸즈’의 공연날, 그리고 재활을 거친 베키가 자신을 데뷔시켜준 제작자의 기념공연 무대에 다시 오르기 직전의 시퀀스가 그것이다. 압도적인 첫 시퀀스와 처절하기까지 한 두 번째 시퀀스도 인상적이지만, 마지막 대기실 시퀀스는 다른 방식으로 압도적이었다. 마치 호러영화를 연상케 하는 무시무시한 서스펜스가 느껴지는데, 이는 앞에서 베키가 벌인 패악질의 여운이 관객에게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기에 더욱 그 효과가 크다. 


일련의 이 시퀀스들은 강렬한 영화적 몰입과 체험을 선사한다. 알렉스 로스 페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를 "외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보내는 최악의 시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내음〉 속 대기실 시퀀스들은 마치 베키가 통과하고 있는 그녀 삶에서의 '최악의 시간'을 관객에게 같이 겪어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내음>은 이 ‘최악의 시간’을 겪어내고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동료 여성 뮤지션들과 강령회를 하는 장면과 딸을 안고 앵콜 요청을 거부하는 마지막 엔딩씬은 '최악의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을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주변 사람들의 단단한 정신적 지지와 더불어 결국 자신의 단호한 의지와 선택만이 '최악의 시간'에서 벗어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녀She는 베키 대신 리베카로 되돌아가길 선택했고, 더 이상의 '썸씽Something'은 없을 것이다.




*키노라이츠에서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 프레스로 선정되어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내 재현된 마지막 춘화 한 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