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모 Sep 08. 2020

수요 없는 공급
: 어느 편집자의 자기소개

브런치를 시작하며

저는 2년차 출판 편집자입니다. 이직은 그새 두 번을 했구요. 첫 1년은 인문·학술서를 주로 내는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6개월을 지내다 잽싸게(좀 더 빨랐어야 했는데…) 탈출했습니다. 지금은 자기계발, 경제경영, 과학, 심리, 청소년 교양서를 두루 내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세 출판사 모두 '종이책 단행본'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였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자비출판'인 점이 조금 달랐네요. 진득하진 못했지만, 2년 차치곤 제법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는 최대한 오래 다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이직은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안물안궁의 자기소개(수요 없는 공급)를 하는 이유는…… 브런치에 글 좀 써보려고요. 두 번의 이직을 하고, 이제는 한 직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 자신 안에서 점점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편집자로서 일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어졌고, 그리고 편집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두고 바라본 세상의 온갖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취향과 지향과 인식이 닿는 한에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네이버 블로그를 2009년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해왔습니다. 주로 영화나 책에 대한 감상과 메모를 남기는 용도로 썼는데, 정돈된 글을 쓴다기보다는 생각의 파편을 널어놓는 정도의 글만 쓰게 되더군요. 파편적인 생각들을 엮어 하나의 정돈된 글을 꾸준히 쓰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었는데, 의지와 끈기가 부족해 여태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플랫폼을 바꾸는 것이 하나의 '계기'로 작동해 나의 부족한 의지와 끈기를 극복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브런치에서는 어느 정도 지향점을 두고 꾸준히 정돈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끈기가 없는 제겐 꽤나 큰 도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요 없는 공급이 탄생했습니다! 저의 브런치에서의 글쓰기에 있어 하나의 준거점을 마련하고자, 독자를 적극적으로 의식한 글을 쓰고자, 저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편집자로서의 저를 소개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편집자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두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저는 아주 얕게, 그리고 넓게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애호하는 사람인지라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를 소재나 주제, 형식으로 제한을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집자의 정체성' 같은 두루뭉술한(?) 준거점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두루뭉술하기는 해도 주로 쓸 글들은 편집자로서 일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편집한 책의 후기나 읽은 책의 편집에 관한 이야기 등을 가끔 올리게 될 것 같고요. 이외에 저의 얕고 맥락 없는 취향들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년 넘게 꾸준히 운영해온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 글을 썼지만, 사실 여전히 막연합니다. 저 자신도 제가 브런치에 어떤 글들을 쓰게 될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네이버 블로그에 썼던 글들 중 옮겨 오고 싶은 글 몇 개만 올려둔 상태입니다. 작가 신청이 통과할지도 잘 모르겠지만……(통과했네요!) 그럼에도 일단 시작하는 데 의의를 둔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시작할 때 떠오르는 문장이 저에겐 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 문장을 떠올리며 시작해볼까 합니다.



뭐든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_ 기형도, '소리 1', 《입 속의 검은 잎》중에서






*커버 이미지: Photo by hannah grace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