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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모 Sep 09. 2020

'선택의 프로'가 되지 못할 바엔…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개정판(3판) 편집 후기

10년을 버틴 대화법 자기계발서의 개정판을 맡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은 함부로 말하며 남을 괴롭히는 무례한 사람을 상대하는 대화법을 제안하는 대화법 자기계발서다. 2011년 5월 한국 시장에 처음 출간되어 2015년 11월에 이미 개정판(2판)이 한 번 출간된 적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또 한 번의 개정(3판)을 내가 맡게 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출판시장 트렌드에서 개정판을 두 번 내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3판을 낸다는 것은 적어도 (외서의 출간 계약 기간이 통상 5년이고, 개정판을 재계약할 때 냈다는 전제하에 계산하면) 지난 10년간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 또한 여전히 어느 정도 시장성이 있을 거라 출판사가 판단한 타이틀인 셈이니까.

작가는 샘 혼Sam Horn. 한국 시장에서는 2013년 베스트셀러이자 화술책 스테디셀러로 여전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과 최근 출간된 《오늘부터 딱 1년,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로 익숙한 작가다. 미국에서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워크숍 및 강연 활동과 여러 권의 자기계발서를 펴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TED 강연에도 선 적이 있다.

한국 시장에서의 작가의 대표작인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의 원제가 재미있다. 'Tongue Fu!', 즉 '혀로 하는 쿵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원제는 'Take the Bully by the Horns: Stop Unethical, Uncooperative, or Unpleasant People from Running and Ruining Your Life'이다(넘 길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원서 표지



기나긴 원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우리를 괴롭히는 비윤리적이고, 비협조적이며, 불쾌한 사람들(한국어판에서는 '악질' 혹은 '괴물'로 번역했다)에 맞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다루는 화술 자기계발서이다. "~ 대화법" 류의 제목을 단 화술 자기계발서들은 많이 나왔고, 여전히 나오고 있다. 레드오션이라 할 만한 이 분야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제목의 힘 때문이지 않을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무나 흔하고 많으니까.

'가스라이팅' '언어폭력' 등의 이슈가 더 가시화되기도 했고, 개인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데 특히 더 민감해진 최근의 경향을 고려해보면 여전히 이 책의 제목이 독자들에게 유효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개정판 기획을 하면서 제목과 부제 변경을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이전 판들이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만큼 결국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부제는 좀 더 부드럽게 바꾸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데…… 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본문과 표지 작업기 _ '선택의 프로'가 되지 못할 바엔…


한 번 개정까지 했던 책이라 본문 교정은 볼 게 그리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교정 작업에 꽤 품이 들어갔다. 부자연스럽거나 너무 예스러운 대화체 문장들,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원어 병기, 불필요한 표현과 긴 문장 줄이고 보조용언 붙이기(판형을 작게 바꿔서 최대한 쪽수가 덜 늘어날 수 있게 교정했다) 등을 주로 봤다. 특히 인물의 원어 병기가 모두 성만 표기되어 있어서(이런 식으로 병기한 책은 처음 봤다) 일일이 원서 대조해가며 성과 이름 모두 표기하는 것으로 원어 병기를 통일했다. 그리고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인(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야 흔히 볼 수 있지만) 곳곳에 배치된 명사의 말을 인용한 인용구들도 표현이 어색하거나 오역인 문장이 있어 원서 대조해가며 수정했다. 인용구 부분은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기 편하게 위아래의 여백을 넉넉하게 두도록 했는데, 독자들에게 의도가 잘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본문 교정을 볼 시간은 넉넉해서 일정에 차질은 없었는데, 표지 디자이너의 피치 못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정이 점점 늦춰졌다. 며칠 늦게 받은 1차 시안을 회사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추가 시안을 더 요구했고, 그래서 며칠 더 딜레이…… 추가 시안을 받은 뒤 1차 시안과 함께 놓고 표지 회의를 해서 최종 후보를 세 가지 시안으로 압축했다. 세 시안을 두고 컬러 프린트를 해서 보기도 하고, 프린트한 시안을 들고 서점에 나가 매대에 올려 보기도 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시안이 결정됐다.

그 결과 4월말에 인쇄하기로 했던 일정이 5월 초(연휴가 끝난 후)로 미뤄졌고…… 연휴를 맘 편히 보내지 못하고 월요일에 출근……! ㅜ.ㅜ 결정된 표지 시안은 아쉽게도, 내겐 최선이 아니었다. 세 시안 중 차선도 아니었고…… 그래서 아쉬움이 좀 남는다. 표지 디자이너가 밀었던 시안도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시안이라 서로 아쉬워했다.

세 시안 중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시안으로 결정된 것 같다.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시안이 (내 눈엔) 예쁘기는 했지만, 시장에서 잘 통할 만한 선택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의 표지가 최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독자들의 선택과 시장에서의 결과는 한낱 편집자와 출판사가 정확히 예측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다. 그저 막연한 추측을 조금이라도 덜 막연하게 만들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고, 모니터링을 하고, 서점에 나가고, 머리를 쥐어짜는 거겠지. (아쉽긴 했지만 실물로 책을 받아 보니 모니터로만 볼 때보다 훨씬 더 지금의 표지가 맘에 든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표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은 나의 견해와 안목에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분명 나는 B 시안이 마음에 드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다 보면 흔들린다. 내 선택을 고집해 밀어부쳐서 성공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회의를 거듭할수록 점점 안전한 선택으로 결정이 기울 수밖에 없다.


한 권의 책이 입을 옷(표지)을 정하는 데 있어 표지 디자이너, 담당 편집자, 출판사 사장님과 다른 직원들, 독자 모니터링 결과 등 다양한 목소리가 경합한다. 결국 이 다양한 목소리들 가운데에서 조율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동등한 발언권을 지니진 않는다. 목소리들이 시끌시끌하게 오가는 와중에 사장님 한마디면 모든 목소리를 무시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니까…ㅎㅎ) 어쨌든 이러한 편집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다가 이런 내 고민과 맞닿는 지점이 있는 소설을 만났다.


확신을 갖는다는 건 왜 그렇게 힘든걸까. _ 32쪽


"그 수많은 사람들이 왜 감독의 말을 듣겠어. 남들보다 잘 선택해야 돼.
선택의 프로가 되어야 해." _ 35쪽


박원호 교수님이 말했던 선택의 프로,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_ 256쪽


위 문장들은 소설《GV 빌런 고태경》(정대건, 은행나무, 2020)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소설은 자신의 첫 연출작을 말아먹은 후 방황하던 주인공 조혜나가 "GV 빌런"이라 불리는 예술영화관 단골 관객에게 흥미를 느껴 그를 담은 인물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소개하는 글은 아니니 짧게만 감상을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지망생, 준비생들에게 특히 격려가 될 만한 소설이라고 느꼈다. 난 비록 준비생, 지망생의 신분은 아니지만, 읽고 나서 꽤나 든든한 격려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사실은 우리 대부분은 어떤 의미에선 '준비생'이고 '지망생'이지 않을까).


아무튼 위 문장들은 영화감독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편집자의 역할과 책임 또한 잘 설명해주는 문장 같다고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선택의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출판 편집자와 영화감독은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선택에 '확신'을 갖는다는 건, 한 톨의 의심 없이 믿는 것이 아니라 일말의 의심을 떠안고 결단하는 일에 가까울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무언가를 선택한 후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확신을 가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성공해야만 하는 '선택의 프로'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면서 '선택의 아마추어'로 남아 내 일을 사랑하면서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을 편집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다.




구판 표지 돌아보기


표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분위기를 바꿔《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의 구판 표지들을 살펴보자. 1판의 표지는 "제목이 무조건 잘 보여야 해!" 스타일의 표지. 무려 앞표지의 대략 70%를 제목이 차지하는 것 같은…… 지금 보기엔 폰트 스타일도 너무 촌스럽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초판 표지



개정판(2판)은 좀 더 낫지만 좀 심심하다. 이 표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표지의 심플함이 좀 더 넓은 범위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요즘 흔히 보이는 인물 일러스트를 쓰는 표지는 타깃 독자의 성별을 한정 짓게 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 표지들에 비하면 특정 성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책이 의도하는 바(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대화 상황)를 간명하게 드러내는 이미지를 적절히 쓰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심플하고 평범한 표지가 제목을 외려 부각시켜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다만 역시 '요즘 책' 같은 느낌은 덜 들어서 표지 교체는 필요하긴 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개정 2판 표지



자기계발서는 처음이라…


처음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개정판 작업을 맡았을 때, 나는 자기계발서 독자였던 적이 없어서 어떤 자기계발서가 좋은 독서경험을 주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계서 독자들은 어떤 표지를 좋아할까?' '어떤 사람들이 자계서, 그중에서도 대화법 책을 사지?' 처음 편집을 맡게 됐을 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때문에 기획서 쓰는 것도 엄청 골머리를 썩였다. 나름의 시장 조사를 거듭한 끝에 편집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여전히) 확신은 부족하다.

'자기계발서'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가진 나와 타협하는 과정도 힘겨웠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특히 원고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자기계발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나름의 출간 의의를 찾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고, 그래서 변화와 발전의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자기계발서도 나름의 가치와 의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좋은 자기계발서'란 무엇일까(더불어 나쁜 자기계발서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과 경험이 쌓이면 글로 써보기로.



'개정'할 수 없는 부분의 아쉬움


앞서 말했듯, 이 책의 장점은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은 겪었을 만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나 흔한가. 그만큼 이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보편적이지만, 그 메시지를 담은 언어들은 10년 전의 것에 멈춰 있다. 한마디로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 원고를 읽으며 10년 전의 사람들의 인식과 지금의 인식은 얼마나 빠르게, 많이 달라졌는지 실감했다.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 혹은 행위'에서 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지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그리고 그 세부를 개념화/언어화한 것들이 세상을 얼마나 더 선명하게 바꿨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가스라이팅, 갑질, 언어폭력, 사이버 불링, 수동 공격…… 이 책의 내용에서도 이 세부들과 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통제에 길들여져서 남성이 없는 자리에서도 남성이 정해둔 규율을 어기지 못하는 여성의 이야기.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사례이다. 하지만 10년 전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 충분히 최근의 이슈들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는 책이지만, 책 안에는 이를 연결할 언어가 없다. 그렇다고 개정판에서 최신의 언어들을 무리하게 책 안에 넣기도, 홍보에서 이 지점을 포인트로 잡아 적극 내세우기도 힘들다(서브 카피 정도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 지점이 가장 아쉬웠다. 지금도 먹힐 만한 내용을 다루는 책인데, 그 내용을 담은 언어가 업데이트되질 못했다. 구간舊刊이기에, 그리고 번역서이기에 어쩔 수 없는 지점이긴 하다(국내 저자였다면 개정하면서 좀 더 시대에 맞춰 개고를 할 수 있었으리라).




나가며


이직 후 첫 책은 회사의 배려(?)로 개정판 작업을 맡아 비교적 수월히 해낼 수 있었다. 거쳐왔던 두 회사와 또 다른 작업 방식과 체계를 갖춘 곳에서 일하려니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또 몰랐던 부분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특히나 회의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회사는 처음 다녀보는 터라 이제야 정말 '기획'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직 후 첫 시작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 후기를 써보니 나름 일한 과정이 정리도 되고 좋은 듯하다. 사실 처음이라 그냥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쓴 것뿐이지만… 다음엔 좀 더 정돈된 글로, '편집 후기'를 써보기로 다짐.



개정 3판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 꼭 이런 영상을 찍어보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혼자 생쇼하며 찍은 거라 의도대로 예쁘게 나오진 않았지만……ㅎㅎ




+) 이 편집 후기는 사실 쓴지 몇 개월된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결과물이다. 사실, 그새 두 번째 책은 이미 출간했고, 세 번째 책을 열심히 마감 중……. 밀린 두 번째 편집한 책의 편집 후기는 9월 안에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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