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모 Sep 03. 2020

팔레트의 주인은 아이유

아이돌과 뮤지션의 경계에서

 아이유의 정규앨범 4집 [Palette] 타이틀곡  〈Palette〉의 뮤직비디오를 보았고, 이에 대해 간단한 감상을 써보려 한다.


나는 아이유라는 가수가 아이돌과 뮤지션이라는 경계 위에서 자신의 자아를 표출할 때 나타나는 그 긴장이 좋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가 가사를 참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그의 가사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싱글 단위를 제외하고, 미니앨범과 정규앨범 단위의 앨범 타이틀곡에만 한정해서 지금까지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를 돌아봤을 때, 〈Palette〉의 뮤직비디오가 이전의 뮤직비디오들과 달라진 점은 뮤직비디오 내에서 아이유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좋은 날〉 이후, 타임슬립물인 〈너랑 나〉, 동화를 차용한 〈분홍신〉과 〈스물셋〉까지 이어지는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판타지적 요소적극 차용해 만든 세계를 전제로 한다. 뮤직비디오에서 아이유는 이러한 판타지 세계 안에서 방황하거나 헤맨다.


 판타지를 걷어낸 〈Palette〉에서의 아이유의 세계는 어떠한가. 기본적으로는 미술도구인 팔레트를 형상화한 듯한 흰색 배경과 다른 인물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의상과 메이크업을 바꾼 다양한 아이유의 모습만이 나온다. 마치 아이유의 다양한 모습들이 팔레트의 하얀 칸에 담긴 다양한 색의 물감의 은유인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Palette〉의 뮤직비디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끊임없이 화면 위에 뜨는 텍스트들과 각종 미디어를 암시하는 시각적 장치들이다. 아이유를 가리며 뜨는 텍스트들, 인스타그램 창, 노래방 화면, 컴퓨터 프로그램 창 등은 뮤직비디오 영상의 프레임과 그 속에 담긴 아이유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든다. 결국, 〈Palette〉 뮤직비디오는 팔레트를 형상화해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색색깔의 아이유를 보여주고 있고, 이는 곧 여러 매체의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아이유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판타지가 아니라 '아이유'라는 현실세계의 뮤지션/연예인을 적극 의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전의 뮤직비디오들과 확연히 궤를 달리한다.)


 〈Palette〉의 가사는 아이유의 전작 미니앨범 [CHAT-SHIRE]의 타이틀곡 〈스물셋〉의 가사의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스물셋〉의 가사는 연예인으로서의 아이유 자신이 그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소비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도발적인 가사로 읽을 수 있다. 타이틀곡에 아이유 자신의 자아를 직접 드러낸 첫 시도로 보인다. 아이유 자신의 (그 당시) 실제 나이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이지만, 〈스물셋〉의 뮤직비디오는 판타지의 세계로 포장되어 그 도발적인 목소리를 슬쩍 얼버무린다.


〈Palette〉 또한 〈스물셋〉처럼 아이유 자신의 자아를 드러냄과 동시에 연예인으로서의 아이유와 대중-소비자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가사라고 생각한다. 표면은 스물다섯이 된 아이유가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내용의 가사이지만, 단 두 줄의 문장으로 〈Palette〉의 가사는 아이유 자신과 대중-소비자의 관계로 확장된다.





날 좋아하는 거 알아

날 미워하는 거 알아



 이 두 문장은 〈Palette〉의 전체 가사를 아이유가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읽으면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타자의 취향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 주어는 생략되어 있다. 날 좋아하고 미워하는 타자는 누구일까. 작사가인 이지은(아이유)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Palette〉의 뮤직비디오, 아이유의 지금까지의 행보, 그리고 〈스물셋〉가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볼 때 저 두 문장은 역시 아이유를 미디어를 통해 소비하는 팬, 안티, 대중 모두를 아우르는 소비자를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생각하고 다시 저 두 문장을 살펴보면, 이 문장들은 중의적으로 읽힐 여지가 보인다. "니가 나를 좋아/미워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뜻과 "니가 나에게서 어떤 것을 좋아/미워하는지 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Palette〉를 통해 아이유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유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혹은 자신과 소속사가 만들어낸 '아이유'라는 아이돌/아티스트를 둘러싼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기 자신의 팔레트 안에서 직접 선택하고 고를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팔레트'는 아이유 자신이 스물다섯이 되어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고 고백하는 자신의 취향, 그리고 아이유가 깨달은 아이유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취향과 잣대가 공존 혹은 경합하는 장이다.


〈스물셋〉에서의 아이유는 자기 자신을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색안경 쓰여진 채 보여지는 게 싫어 이리저리 도망친다. 자신을 어떠하다고 확정 짓지 않고(혹은 못하고) 여전히 판타지의 세계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길을 잃은 채 헤맨다.

하지만 스물다섯의 아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고 하지만 코린의 노래는 여전히 좋다. 핫핑크보다 진한 보라색을 좋아한다. 자신만의 취향을 알아가고 있는 아이유는 그러한 자신의 취향을 팔레트에 담는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이 아이유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그리고 그 호불호는 아이유 자신의 의도와 취향을 때론 초과하기도 할 것이다). 그 대중의 선호, 때로는 미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휘둘리지 않고, 때로는 타협하거나 수용하고, 견제하거나 방어하면서 자신만의 팔레트를 만들 것이라는 선언을 <Palette>를 통해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물섬을 발견하는 두 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