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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May 09. 2018

60년 간극을 사이에 두고 사는 우리

<청둥아 진정해>, 윤필, 다음웹툰, 2014-15

    '역사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2년 전 봄 밤새워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던 의원들의 모습,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이어진 광화문의 겨울과 이어진 봄의 사건들. 그리고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우리는 또 한번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를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라고 말한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타의에 의해 국경선이 그어진 나라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냉전이라는 이름의 이념전쟁 때문에 국경선을 나눠야 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통역을 대동하지 않았다. 서로 말이 통하고, 심지어 실향민이나 이산가족이라는 말도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간 우리는 지독하게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해왔다. 북한의 지도자가 '멀리 평앙에서... 아,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라는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린건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청둥아 진정해>는 2014년 윤필 작가가 그린 통일부 브랜드 웹툰이다. 하지만 윤필 작가의 캐릭터인 흰둥이와 야옹이가 나오고, 브랜드웹툰임을 알 수 있는 지표들이 거의 없다. 12화로 짧은 분량의 만화임에도, 심지어 브랜드웹툰임에도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반짝인다.


    웹툰의 배경은 통일 후 일종의 신청을 받아 남한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청둥이는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서울에 와서 일자리를 찾으려다가 짐을 다 잃어버리고 흰둥이와 야옹이를 만나게 된다.

흰둥이와 야옹이, 그리고 청둥이의 첫 만남.

    이 웹툰은 지난 60년 세월동안 서로 달라진 남과 북의 문화, 언어를 조심스럽게 비춰보인다. 청둥이는 자리를 잡을 때 까지 함께 지내자는 야옹이의 제안에 "일 없습네다"라고 답한다. "일없다"는 말은 "괜찮다"는 거절의 정중한 표현이지만 야옹이와 흰둥이는 '일자리가 없다'는 말로 알아듣고 청둥이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그렇게 얻게 된 첫 일자리에서, 청둥이는 갑질하는 손님에게 버럭 화를 냈다가 바로 짤리게 된다.


    다행히 청둥이는 다음 일자리를 얻게 되고, 그 일자리에서는 남한 사회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일자리에서 갑질에 꾸벅 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흰둥이를 보고 아무 말도 못해서 불편하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청둥이는 곧 통일되기 전의 인민들이나 일하는 중인 자신이나 말하지 못하는건 똑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넘어온 청둥이는 두 사회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결국 사람의, 개인의 존재를 지우는건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하는 청둥이

    야옹이, 흰둥이와 청둥이는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들이다. 어느날 청둥이는 자신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배달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배달 일을 겸업하게 된다. 그러다 비를 잔뜩 맞고 몸살이 났는데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몸이 아프다는, 내가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들켜선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이었다. 하지만 야옹이와 흰둥이는 청둥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아프면 말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현재에도 유토피아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말이 아직도 수정될지언정 회자되는 이유는, 이런 연대가 가진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출판사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키링을 발매했는데, 거기에 적힌 표어는 이랬다. "회사가 도발하면 노동자는 단결이다". 대부분 국가의 헌법에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잘 보장되지 않는다. 몇주 전 한 마트 캐셔가 몸이 좋지 않음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을 하다가 일하던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한공의 조씨 일가의 행태, 그리고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등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기에 무감각한지 잘 알수 있다. 이 웹툰에서는 청둥이의 모습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연대에 더 열려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연대의 힘이 가장 잘 발휘된 장면은 아마 세 친구가 나들이를 갔다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는 장면일 것이다. 다리에서 모든걸 끝내려고 했던 사람에게 다가간 청둥이는 주먹밥을 내민다. 함께 앉아있던 그들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곧 그 사람은 주먹밥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브한 낙관론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무 조건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님에 안심할수 있다. 청둥이가 건넨 주먹밥은 별것 아닌 호의였지만, 그 당사자에겐 구원의 손길이 될 수도 있다는 장면을 작가는 두 컷으로 표현했다. 


    또 재미있는건, 이 작품이 통일부의 브랜드 웹툰이라는 사실이다. 2014년 박근혜정부 시절 통일부에서 브랜드 웹툰으로 <청둥아 진정해>를 만들었고, 2017년에는 마찬가지로 통일부에서 동명의 웹드라마를 제작, 유튜브에서 무료로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당시는 소위 '통일 대박론'이 있던 때였다. 정권을 잡은 어린 김정은을 불신한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북한 체제가 2015년에 붕괴할 것이므로, 우리는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브랜드 웹툰이었다니

    물론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당시에는 꽤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청둥이가 얻은 두번째 일자리에서, 청둥이가 받은 임금은 햄버거였다. 2014년 통일대박론 이야기가 나올때 이 작품을 볼 때와, 2018년 4월 27일 이후에 이 작품을 볼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2014년 당시 이 작품을 볼때는 '지나치게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때문에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보다는 캐릭터성에 더 집중했고, 청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과장된 북한의 어휘와 생활습관등이 우리에겐 재미 요소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지금, 2018년에 읽는 이 작품에선 이런 지점들이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주장한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북한 내에도 수많은 문화와 다양한 층위가 존재할테지만, 그걸 하나로 뭉뚱그려 '북한이라면 그럴 것'이라는 말로 뭉개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남한 내부에서도 서로에게 이런 행위를 하곤 한다. 어느 지역 출신이니까, 어느 세대에 속해 있으니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과장된 어휘들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앞서 말했던대로 작품이 연재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마지막 청둥이의 대사, '어서들 오시라요, 동무들'이라는 말은 어쩌면 오지 않을 낙관적인 미래로 가자는 허무하고 공허한 외침처럼 들린다. 그러나 지금 판문점에서 '평양이 멀다고 하면 안되겠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 이 말은 의미가 달라진다. 

청둥아 진정해의 마지막 컷.

    웹툰에서 청둥이가 '동무'라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마지막 컷에 굳이 세글자를 가운데에 배치해 한 컷을 다 소비한게 어떤 의미인지는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맥락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 작품이 가지는 메시지는 같을지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게 되는 지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60년의 세월동안 달라진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우리에겐 언어라는 큰 무기가 있다. 청둥이도 처음에는 서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심지어 말이 통하지 않는 흰둥이와도 언어-비언어적 소통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질지, 그것이 실제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다가도, 북한의 싼 노동력과 지하자원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면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둥이가 첫날 임금 대신 받은 햄버거, 그리고 언어의 차이, 흰둥이와 야옹이의 무조건적인 배려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하게 만든다.


    새 시대가 열렸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 있는 우리는, 이 페이지의 다음 문장이 어떻게 쓰여질지 아직 알 수 없다. 우리는 주로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현재가 될 미래는 그렇게 낙관적이거나 장밋빛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청둥아 진정해>는 2014년에 나온 웹툰이지만, 현재 2018년의 우리가 미래를 그리는데 주의깊게 생각해야 할 지점들을 짚어주는 웹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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