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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Nov 29. 2018

책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같은 말을 도대체 몇번이나 하는지 모르겠어서 쓰는 글

2018년도 다 갔다. 열받는 일도 많았고, 화나는 일은 더 많았고, 그 둘을 합쳐서 365로 나눈 것 만큼 기쁜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 과잉 사회라는 말은 더이상 진단이 아니라 사실을 아주 건조하게 풀어내는 말일 뿐이다. 처음 웹툰을 리뷰하겠다고 나섰던 해부터 지금까지 터진 사건들을 생각하면 이 판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게 참 용하다 싶다. 거기에 더 가까이 발을 붙이면서 알게 된 사기꾼들과, 그 사기꾼들에게 빌붙어 떨어질지도 모를 콩고물을 바라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만나면 숨이 막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 좋아서, 그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하는게 좋아서 계속 하다 보니 업이 됐다. 일이 되고 나서 만난 세상은 보기보다 더 거칠었고, 아름답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꾸준히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일관되게 말했지만 누구도 듣지 않은 말이기도 하고, 관점을 바꾸면 모두가 말하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공허한 선언이기도 했다. 하나는 주간연재가 너무 과중하다는 것, 두번째는 독자와 작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세번째는 모든 책임이 작가에게 쏠리는 구조라는 것. 이 이야기는 정말 지겹도록 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작가도 사람이라는 말. 이 말을 해야 알아 처먹느냐고 화도 내 봤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다 풀어놓기도 했고, 감정에 호소하기도 해 봤다. 몇명이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별로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다.


2018년은 말하자면 웹툰계 안에서 곪았던 사건 사고가 폭발하는 한 해였다. 웹툰계 한정으로, 올해 '다사다난'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보이면 그는 표현력이 죽어버린 사람이니 꼭 끌어안아 주자.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다독여줘도 좋다. 물론, 평소에 이쪽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이라면. 이 전쟁통같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말하자면 책임을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책임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더 답답한 일이다.


태초에 '티셔츠' 사태가 있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으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모든 씨앗이라고 할만한 것은 201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위 '메갈리아 티셔츠 사태'가 있었고, 여기에 목소리를 낸 작가들은 SNS에서 여지없이 '자칭' 독자들의 타겟이 됐다. 각종 만화계 협단체들은 작가들을 보호하는데 소극적이었다. 플랫폼들은 '오직 독자만' 본다며 에이전시를 통해 작가를 해고한 곳이 있었다. 이 플랫폼은 BL관을 오픈하며 '이 일을 잊었을것 같냐'는 독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사과했지만 끝내 BL관을 오픈하지는 않았다. 다른 곳은 작가들에게 'SNS를 통해 회사에 불이익을 끼치는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은 곳도 있었다. 그곳은 아직도 이때 사태에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고 있다.


고립된 웹툰 작가들은 자칭 독자들의 사이버불링에 시달려야 했고, 동료(라고 말하기도 뻘쭘한) 작가들의 조롱은 덤이었다. 그 작가들의 면면을, 당사자가 아닌 나도 기억하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약 두달 가까이 지속된 괴롭힘이 낳은 것은 '이퀄리즘'이라는 괴상한 말과 피폐해진 작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 사태가 향후 벌어진 모든 싸움에서 작가들, 특히 젊은 여성 작가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가장 큰 맥락이 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2018년 여름에는 '팀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2016년 이후 서브컬쳐 업계 반페미니즘 피해를 입은 작가들이 함께하는 전시프로젝트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열렸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중에는 <MG프로젝트: Millions of Girls>라는 작품집을 만든 작가들도 있었다. 여성이 이야기하는 여성서사의 움직임 속에서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던 '그 회사'가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이 없이 2018년의 일을 들으면 그저 단편적인 맥락으로만 소비되게 마련이다.  


1) 대명사가 된 '그 회사'


웹소설 사업부를 시원하게 접어버린 '그 회사'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나아가 당시 대표는 미성년자를 착취했다는 의혹과 함께 대형 법무법인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회사는 마침 앞서 블랙리스트로 '찍어'두었던 작가들을 고소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곳의 대표는 현재 대표직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전부터 '두 작가간에 해결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작가'이자 '전 대표', '현 이사회 의장'의 필명이 회사의 이름과 같다. 그리고, 그는 현재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올라온 201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약 440만주 가운데 약 170만주, 전체 주식의 38.8%를 가진 최대주주다. 또한 현재 대표이사직을 맡은 사람의 이름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2) 황회장이 시키드나? 케이툰 일방적 계약변경


이 회사와 관련된 일만 있었으면 그나마 깔끔한 편이다. 한쪽에선 대기업 kt가 운영대행사를 끼고 운영중인 케이툰이 계약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했다는 이슈가 있었다. 이 이슈를 파악하려면 A4용지 5장짜리 배경설명이 필요하니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황창규 현 kt회장은 이전 kt 회장단이 가지고 있던 브랜드이름인 '올레' 지우기에 나섰고, 때문에 올레마켓웹툰의 이름이 케이툰으로 바뀌면서 수익을 내길 바랐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케이툰의 전신인 올레마켓 웹툰은 수익구조 마련이 되어있지 않았고, 체질개선은 느리게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 2017년 10월 황창규 회장이 직접 '케이툰 2.0'을 언급하며 IP산업에 뛰어들 것을 예고했으나 결과는 내년 4월, 계약변경이 있을 때까지 kt가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3) 위비툰이 뭔데? 위비툰 서비스 종료 예고 사태


겉보기엔 이와 비슷한 사태가 우리은행을 통해서도 있었다. 우리은행 자체 앱인 '위비톡'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위비툰'이라는 서비스가 문을 연지 4개월만에 문을 닫으면서 '원래 1년짜리 사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회장이 위비톡 이야기가 나온뒤 2개월만에 바뀌었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하다. 높으신분들이 바뀌니 전에 높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업적을 지우려고 한다는 얘기는 너무 많이 해서 손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아무튼, 그런 의심이 강하게 드는 상황에서 중간업체와 또 그 중간업체가 계약한 다른 업체와 우리은행의 말이 모두 다르고, 계약의 주체가 어디인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위비툰이 자체 서비스 홍보를 위한 플랫폼임에도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홍보비를 책정했어야 하는데, 그 홍보비가 0원이었다는 이야기가 작가들을 통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당연히 돈이 된다. 성공만 하면 누워서 땅파는 장사다. 그런데 콘텐츠를 파는 장사는 얘기가 다르다. 콘텐츠 사업은 돈먹는 하마에 가깝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농사에 가깝다. 땅을 개간하고 종자를 고르는 것 부터 열매를 맺는 것 까지 자기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우리은행은 23조 7천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면서도 그건 잘 몰랐나보다.


4) 일단 연재중지? 봄툰과 레진


A 작가와 B 작가간에 설전이 있었다. 중요한건 이 내용보다, 봄툰과 레진코믹스의 대처였다. 레진코믹스는 자사 연재작가인 A작가의 문제제기를 B작가가 연재중인 봄툰에 전달한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봄툰은 B작가의 작품을 일단 연재중지 시킨다. 그리고 사과문을 게시했다. 여기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두 회사는 이야기를 나눌 테이블을 만들거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보지도 않고 작가들에게 해결을 맡겼다. 이 과정이 고스란히 밖으로 전달되며 작가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받아야 했다. 사실여부를 떠나 B작가는 연재중지를 당해 문제제기가 '팩트'인 것처럼 알려져 괴롭힘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B작가는 28일 글을 하나 올렸다. 다행히 B작가의 안전이 확인됐다고 해서 이 글을 올리기로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 절차조차 없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그 다음은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수단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눈에 보였다. 봄툰과 레진이 문제 해결을 위해 법무팀을 동원하건, 대화테이블을 마련하건 하는 '노력'보다, 작가들끼리 해결하도록 '선처'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더 쉬운 방향이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추정하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알계'들은 작가를 물어뜯었고, 작가는 병들어갔다. 병든 작가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감상적인 말이 아니다. 정말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 상황에서 플랫폼은 무엇을 했는가?


흔히 농담처럼 던지는 말 중에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라는 말이 있다. 너무나 쉽게 대체되어버릴 부품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작가들은 그보다 못하다. 지금 적은 네가지의 큰 사례와 그 앞에 적은 BL관을 닫아버린 회사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두 작가들이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경영진의 경영판단을 통해 일어난 피해를, 작가들이 고스란히 받는 모양새다. 티셔츠 사태때 플랫폼들이 컨텐츠 제작자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다면, 그리고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작가들에게 배포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협회는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작가들에게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작가로서의 나'를 구분하는 법을 찾았어야 했다. 이미 벌어진 피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작가들의 정신건강을 챙길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 웹툰작가협회가 정신과 병원과 연계해 상담사업을 하겠다고 한지가 오래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질타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이 문제는 문체부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롯이 협회를 탓할순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토로할 곳이 협회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곳은 오히려 문체부와 예술인 복지재단등의 단체라고 보는것이 정확하다.


무엇보다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플랫폼이다. 웹툰작가들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작가를 버려두고 방치하는 것이 그들의 창작예술활동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창작과 예술은 배고프고 괴로운 상태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그럴 때 나오는 작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안전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대리체험으로써의 즐거움은 가상의 경험으로 충분하다. 작가가 직접 경험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연히, 이런 일들에 책임을 명확하게 나누고 담론장으로 끌고 나와야 할 나같은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 충분히 더 이야기하지 못했고, 더 세밀하게 파고들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담지 못했다. 사람이 적어서라는 핑계 앞에 너무 많은 것을 멈춰버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큰 책임은 이 모든 것을 방기한 사람들과, 그들의 손가락에 홀려 작가들을, 가장 큰 피해자들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악랄한 사람들이다.


책임을 흘려보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며, 모른척한 시간만큼 대가를 크게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도록. 그런 마음을 꼭꼭 눌러담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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