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없는 이야기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참 많이 맞았다. 밥을 남겼다고 맞고, 자율활동을 빠졌다고 맞고, 당시 유행하던 유희왕을 했다고 맞고 하루 놀자고 합숙 했을 때도 시끄럽다고 맞았다. 피멍이 든 엉덩이와 다리를 담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학교 놀이터에서, 그의 지시에 의해.
내가 왜 이렇게 맞아야하나 싶어서 당시에는 담임에게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뭐든 갚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나 보다. 담임이 아껴서 기르던 화단이 있었는데, 서넛쯤 되는 친구들과 그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쇠 폴대와 플라스틱 케이스가 있는 우산으로 꽃을 내려치고 짓밟으면서, 나는 쾌락과도 비슷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뭔갈 갚아주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화단에서 내 힘을 느낀 것이다.
그 이후로 담임에게 맞을 때마다 나는 그 일을, 그때의 힘과 쾌락을 비밀처럼 떠올렸다. 이후는 비슷한 일의 반복이었다. 나는 어느순간 이 일들을 즐기고 있음을 자각했다.
맞고 부수고 자위하는 모든 일들이 자극적인 놀이처럼 느껴졌던 거다.
내가 메갈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여혐으로 지칭하는 것들은 일부에서나마 실재하는 것이지,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다. 그리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확대재생산된 그 일부의 여혐은 여성집단에게는 거대한 위협이자 잠재적인 공포로 느껴질만 하다. 반대로 그들이 생산하는 남혐은 남성집단에게 위협으로 느껴질지언정 일상에서의 잠재적인 공포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여성이 잠재적인 범죄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맥심 표지가 그렇게 비난받은 것 아닌가.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며 안 된다는 당위명제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위협과 잠재적인 공포에 억눌려왔던 여성집단에게 메갈리아가 플랫폼과 미러링이라는 도구를 제공해준 순간부터, 이들은 다른 커뮤니티처럼 놀이문화를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처음 메갈리아가 만들어졌을 때는 어떤 여성주의적인 저항의 일환으로 남초사이트의 어휘와 메커니즘을 따왔을지모르나, 베스트 글이 조회수 평균 25000에 이르도록 확대된 지금은 그것들이 놀이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내가 담임의 화단을 부수면서 느꼈던 것처럼, 일상의 씹치남들을 조롱하며 '놀고 있었다'
일베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했는데, 핵심은 놀이문화다. 그들의 정치성향, 역사에 대한 인식, 그들이 보는 사회의 작동메커니즘 등은 정치적 주장으로 이어지기보다 놀이의 소재로 소비된다. 메갈리아도 그렇다. 일부 구성원이나 메갈리아 탄생 취지와 무관하게 그들의 여혐에 대한 혐오, 원하는 남성상, 씹치남의 행동 등은 마찬가지로 놀이로 소비된다. 그래서 일베가 우익 정치집단이 아닌 것처럼, 메갈리아도 여성주의 집단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메갈리아는 그 놀이의 명분이 강력하고 그것을 대외에 내세워서 메갈리아를 놀이의 플랫폼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