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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May 21. 2019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야금야금 읽고 싶은 책! W2C4 분자 가족의 탄생


이 땅의 모든 1인 가구들에게 보내는 듀엣 응원가!

4인 가족이 기준인 이 나라에서 살아갈수록 아쉬웠던 두 사람이 

혼자도 그렇다고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을 이루어

한집에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이루어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장점을 모두 취해 살아가는 삶

보디클렌저를 딱 하나 두고 쓰는 사람과 욕실에 나와 있는 보디클렌저만 열두 개가 넘는 사람의 싱글 라이프부터 

함께 살게 되기까지의 과정,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겪은 웃픈 에피소드들,

피할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와 그 해결 방법 등

결혼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공동체든 한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될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다. 


이 책은 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자주 등장하게 될 Yul로부터 추천 및 대여받았다. 그는 새해 들어 '책 읽기'라는 목표를 세웠는지 요새 핫하다는 책은 모조리 사들이는 듯했다. 덕분에 크게 공감하고 같이 웃고 싶은 책 몇 권을 나에게 빌려주었는데 한 권은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고 다른 한 권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다.


 '언니 내가 지금 책을 하나 읽고 있는데, 여기서 한 사람은 나 같고 한 사람은 언니 같아. 다 읽으면 빌려줄 테니까 한 번 읽어봐. 우리도 테팔 대첩해야 할지도 ㅋㅋ' 


처음에는 떡볶이를 먹으려 줄 서서 기다리다 이 책 얘기가 나왔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한 사람은 나 같고 한 사람은 본인 같다는 걸까? 얘는 대체 나와 본인을 뭘로 보고 있는 거야? 하며 내심 궁금했다. 우리도 내년에 집을 공유하고자 하는 큰 꿈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 둘이 사는 삶에 대해 호기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작가인 김하나와 황선우는 처음에 트위터로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만나다 보니 취향이 비슷했고 김하나가 황선우를 설득해 지금의 집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을 다를지언정 yul과 나도 비슷한 상황이라 초반부터 몰입도가 굉장했다. 우리는 운동하는 모임을 통해 처음 만났다. 활동하는 얼마간은 싸가지가 없는 애라는 소문과 뚱한 표정 때문에 나는 yul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사실 그 싸가지는 귀찮은 세상사에 별 관심 없고 단체 생활을 싫어하는 거였고 뚱한 표정은 나랑 맞지 않는 사람한테 굳이 맞추며 살아야 하나 싶은 거였다. 나는 주로 감추려고 하는 편인데 반해 솔직한 그가 본능적으로 끌렸다.

그의 진가는 한참 뒤서부터 발휘됐다. 내 피부같이 붙어 지내던 남자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그 허무함과 빈 시간 대부분을 그와 보냈다. 맨얼굴에 추리닝 바람으로 휘적휘적 동네를 걸어 다니다 가끔은 치킨에 떡볶이를 가끔은 라면에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때때로 뜨듯한 탕에 가서 목욕도 하고 찜질방에서 계란에 식혜를 먹기도 했다. 왜 여자들은 목욕탕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 책에서 나오는 구구절절 우리 얘기 같았다.

책에서 두 사람 중 황선우는 yul, 김하나는 나 같았다. 황선우는 20년 동안 패션잡지사에서 일했다. 이런저런 제품이나 물건들을 보고 느껴왔기 때문에 트렌디하거나 정말 좋은 제품이 뭔지 알 확률이 높고 또 간혹 브랜드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제품들도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매거진은 대체로 월간지기 때문에 지난달에 들어온 제품을 다 쓰기도 전에 또 새로운 제품을 써봐야 하는 상황도 있었을 것. 반대로 김하나는 프리랜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데다 정리 정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으로 물건 하나를 들이더라도 반듯하고 제대로 된 것으로 혹 부서지거나 고장 나면 버리거나 수리를 해서 쓰는 쪽으로 주로 결정을 해왔을 것이다. 사람의 성향도 분명히 작용하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놓인 환경 자체가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yul은 삶에 있어서 언제 쓰게 될지 모르는 것도 일단 최고 좋은 브랜드로 사고 결국엔 쌓아놓는(간혹 잘 쓰는 것들도 있다) 맥시멀 리스트다. 그에 비해 나는 꼭 필요한 것을 가성비와 디자인을 따져사는 실용 주의자다. 우리도 유사하게 대입해 볼 수 있다. yul은 패션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하루에도 보고 만지는 옷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 옷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니 예리한 눈과 명확한 판단을 해왔을 것이다. 아마도 그 결과 원단이나 브랜드가 좋은 옷이 정말 좋은 옷이라고 결론 내렸을 것이고, 그 법칙이 여러 사물에도 작용했을 것이다. 본인이 다른 사람에 비해 수치적으로 얼마나 많은 옷을 경험하고 있는지 평소에 잘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물건들도 모으는 것 아닐까?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반대로 나는 세상만사 물욕이 별로 없어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는 편인데 한 번 살 때 후회하기 싫어서(호구도 되기 싫음) 최대한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난 것을 고르려고 검색에 엄청난 시간과 힘을 쏟는다.

아마 둘 다 자취한 경력이 오래라 테팔 대첩뿐만 아니라 청소기 대첩, 침구 대첩, 세제 대첩 등 갈 길이 멀고 멀다. 벌써부터 나는 각오를 하고 있다. 대단히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물건은 yul에게 맞춰주기로... 어차피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만약 엄청 비싼 걸 사자고 조른다면 돈을 더 벌어오라고 할 것이다. 각오해라.

같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집을 보는 관점이다. 책에서 두 사람은 망원동 감성으로 그곳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아마 우리는 성수동에서 처음 만나 계속 살아온 바 같이 살게 될 집도 성수동에 구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사실 나는 위치야 강남과 접근성만 좋으면 됐다. 오히려 같은 가격 대비 집이 넓고 시원시원하길 바랐는데 yul은 직장이 앞으로도 동대문에 고정이 되어있는 터라 이리저리 아무리 각을 재어봐도 성수만 한 곳이 없는 것이다. 땅값은 좀 터무니없어도 나름 한강과 서울숲을 가까이 끼고 있고 골목 샅샅들이 잘 알고 있으며 단골집도 모두 성수동에 있다. 찾아보니 역에서 좀 멀고 가격은 좀 타이트해도 신혼부부를 위해 잘 만들어놓은 쓰리룸이 꽤 있었다. 


둘이 바라는 집의 공통점
1. 지리적으로 성수동, 자양동, 구의동 인근일 것 (최근에 합의를 본 것)
2. 싱크대가 널찍하고 거실이 시원시원할 것
3. 신축이면 좋겠지만 새 집이 아니더라도 벌레 나올 것 같은 오래된 집이 아닐 것
4. 이왕이면 빌트인이 잘 되어있을 것
5. 투룸 이상일 것 (현재는 쓰리룸 기준으로 생각해보고 있다)


황선우는 직장을 다니고 김하나는 프리랜서인 바, 자연스럽게 황선우가 바깥사람이 되고 김하나가 안사람이 된 듯했다. 순전히 내 정의에 의하면 바깥사람이라 함은 회사 일에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주말이나 되어서야 겨우 집을 돌보게 되는 사람이고 안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꾸리는데 관심이 더 많아서 집을 갈고닦는데 늘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나뉜다. 나는 대체로 바깥사람에 가까워 같이 살게 될 누군가를 만난다면 안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yul은 안사람이다. 나 대신 주방에 관심이 많고 음식도 뚝딱뚝딱 잘 해낸다. 게다가 자기 살림 누가 손대는 거 싫다고 설거지도 잘 안 시킴(개 이득) 만약 같이 살게 되면 주로 청소기나 밀고 수건이며 검은 빨래 흰 빨래 나눠서 빨래 돌리고 너는 거나하면 되지 싶다. 정 아니면 책에서처럼 가사도우미를 불러도 되지만 지난번에 한 번 부른다고 했다가 호되게 혼났기 때문에 아마도 그건 못 부를 것 같다. 다만 이 사례에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참 멋진 지론이라고 생각했다. 잊지 말아야지.

ㅋㅋ복싱을 배우기 전에 수영을 했었기에 김하나의 저 행동이 매우 공감이 갔다. 어쩜 저런 것조차도 대입해보면 나야...?ㅋㅋ

혼자 사는 삶보다 둘이 사는 삶은 불편함이 훨씬 많을 것이다. 멋대로 벗어놓고 늘어놔도 괜찮았던 양말과 속옷이 빨래통에 자리 잡아야 할 것이고 대충 쓰고 던져놨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아야 다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없던 규칙이 생김으로써 생활하는 데는 불편해지겠지만 더 넓고 쾌적한 곳에 살 수 있음과 둘이라서 고민 없이 시켜 먹을 수 있을 배달음식과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아도 술 마시고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의 장점을 크게 느낄 것이다. 책에서처럼 상대를 의식함으로써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배려하려고 힘을 쓰는 사람이 되겠지. 

사실 나는 동거에 한 번 실패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던 동갑의 직장 동료와 조건만 맞춰 같이 살다가 화법과 생활습관이 안 맞아 이후로 교류가 전무할 만큼 냉랭한 사이가 되었다. 둘이 살다가 다시 혼자 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혼자 살 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거였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는 좀 줄었지만 원하지 않는 생활비가 늘었고, 각방을 쓰긴 하지만 상대가 화장실 문을 열고 닫는 소리에도 짜증과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뒤늦게 심리 상담을 받았을 땐 아주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마 yul과도 싸울 일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미 일주일에 4-5일은 함께하고 어지간한 소비 패턴도 비슷하지만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전혀 다를 것이다. 가끔은 혼자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특히 크게 싸우는 날은 황선우처럼 직방과 다방을 잔뜩 깔아서 내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집을 검색하겠지. 동시에 가전과 가구는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고민하겠고. 같이 살기 전에 최대한 충분히 대화를 해보고 협의해봐야 한다. 그는 심지어 본인의 지인들과 내가 어울렸을 때 개족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더라. 


나는 이 책을 야금야금 읽으면서 책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주말에 집에서도 아주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누어 읽고,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먹으면서 겨우 몇 페이지를 넘겼다. 책에 나오는 작가 두 사람이 우리와 유사한 데가 있어 더욱 이입해서 읽었지만 누구든 1인 가구에서 2인 가구가 될 때 읽어야 할 바이블 같은 책이다.


심지어 이번 주 금요일에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북토크에 당첨돼 yul과 함께 방문할 예정이다! 벌써 설레고 기대되고 다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도 우리보다 알차게 준비할 수는 없을 거다. 여력이 된다면 북토크 후기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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