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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근긍 Mar 03. 2019

<밤치기> 셜록이 된 도시의 젊음들

어둠이 깃든 밤. 술집이라는 무대와 네온사인의 조명. 거기에 술병까지 더해지면 익숙한 도시의 밤 풍경이 완성된다. 거기에 한 쌍의 남녀가 앉으면 우리는 그들의 관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밤 ‘가영’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낯설다. “하루에 자위 두 번 해본 적 있어요?” 시나리오 인터뷰라는 안전한 핑계가 그날의 대화를 위한 명분이 되어서일까. 가영의 질문은 거침이 없다. 이쯤 되면 생각 없이 따라서 온 남자 ’진혁’은 어떤 시나리오를 쓰는 거냐며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질문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남자가 묻고 싶어지는 것은 시나리오의 내용이 아닐 것이다. 가영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온 것이 맞을까. 진혁과 자기 위해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두 행위 중에 진의를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할 것이다. 진혁과 술을 마시는 것도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서로에게 핑계가 되어줬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이날 밤 가영에게 ‘시나리오 쓰기’와 ‘남자 꼬시기’는 동반하는 행위이다.



여기서 가영은 ‘시나리오 쓰기’와 ‘남자 꼬시기’ 사이에서 오가며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그녀는 오늘 밤 진혁과 잘 수 있을지 그의 마음을 추리하는 것도 멈출 수 없다. 그녀는 의도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범인이고, 추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탐정이다. 술집에서 자리를 옮기며 시나리오의 내용을 묻는 진혁의 질문에게, 가영은 “영화는 비밀이에요 관객은 탐정이야”라고 둘러대듯 답한다. 진혁은 잘 모르겠다는 듯 “수사물, 추리물 그런 거야?”라고 재차 묻는다. 어쩌면 이 실없는 대화는 그날 밤 둘의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단어일 것이다.     


가영의 시나리오에는 ‘프렌치 블루 사파이어’라는 식물을 먹고 정액 색깔이 바뀐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영의 다소 엉뚱한 변명 같은 이야기는 곧이어 ‘파란색’ 병에 든 ‘봄베이 사파이어’를 마시는 진혁의 모습과 겹쳐진다. 눈앞의 남자를 보며 변명처럼 떠올린 시나리오는,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이날 밤을 닮아있다. 추리극을 쓰는 이날 밤의 풍경은 그런 의미에서 가영이 쓰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가영의 추리 영화에서 진혁은 속아 넘어가야 하는 관객의 자리에 앉아 있다. 룸카페에서 밤을 찾지 못한 채 방마다 걸린 분홍색 커튼 사이를 헤매는 진혁의 모습은 추리 게임에서 길 잃은 이미지의 전형이다. 앞서 남자 꼬시기와 시나리오 쓰기는 동반하는 두 가지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최소한 이날 밤에는 추리극을 쓴다는 점에서 두 행위는 서로 닮아있다. 술집과 룸카페를 거쳐 청춘의 쓸쓸한 공간을 떠도는 이날 밤의 ‘탐정’은 범인을 잡는 대신 이성의 마음을 흔든다.     



추리극에서 가능한 결말은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가능할 것이다. ‘상대를 속이거나’, ‘상대에게 속거나’ 정가영은 자신의 단편 <극장에서 한 생각>에서 그것을 추리 영화와 멜로 영화의 공통점이라 지적하며 ‘거대한 착각’이라고 불렀다. ‘거대한 착각’의 완성은 이날의 멜로를 그 끝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가영이 “저 오빠랑 자는 거 불가능하겠죠”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시나리오를 쓰려는 영화감독과 남자를 꼬시려는 여자 사이를 오가는 추리극이 선명해지고, ‘거대한 착각’은 들통이 난다. 이제 진혁에게 눈앞의 가영은 영화감독이 아닌 자신을 꼬시려는 여자다. 그리고 돌아오는 건 “너 원래 이런 식으로 얘기해?”,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남자들이 다 자주지?”라는 폭력적 말들이다. 추리극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가영이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그녀는 남자의 정의 속 ‘그런 여자’가 된다. 진혁이 노래방에서 새로운 남자 ’영찬’을 두고 말없이 떠날 수 있는 것도 그녀가 더 이상 영화감독 ‘정가영’이 아니라 남자와 자고 싶어 하는 ‘가영’이기 때문이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노래를 부르던 진혁이 뭐 그렇게 열심히 부르냐는 가영의 농담에 “여자에게 질 수 없지”라는 유아적 대사를 던지는 것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제 망쳐진 추리극을 다시 살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가영 자신이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진혁의 아는 형이라고 소개된 영찬은 대화의 첫 마디부터 “오빠는~”으로 시작하는 남자다. ‘영 대 영, 삼 대 삼 법칙’을 주장하며 별 볼 일 없는 자신의 인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혈액형 따위의 얘기를 하며 가영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영찬의 말 속에서 그가 가영에게 관심이 있음을 느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쩌면 진혁을 대하는 가영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는 영찬은 오늘 밤 가영과 잘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가영은 자신을 속이려는 영찬의 추리 게임에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의도를 가영 역시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가영은 오늘 밤의 남자로 영찬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찬은 자신의 인생 영화로 가영이 좋아하는 <봄날은 간다>를 말한다. 하지만 그는 김윤아가 자우림의 보컬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봄날은 간다>의 OST를 부른 김윤아를 말이다. 영찬은 그저 <봄날은 간다>를 좋아하는 남자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그것은 영찬의 속임수의 일환이다. 그러니 영찬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찬의 저 허접한 속임수를 믿는 척한다는 것이다. 영찬과 키스하는 가영의 상상 장면은 그와 잘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속는 척할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에서 깨어난 가영은 속아 넘어가지 못한다.

     


‘완벽한 결말’을 꿈꾸던 그날 밤의 영화는 그렇게 엎어지고 만다. 마지막으로 가영은 진혁에게 전화를 건다. 끈질긴 부름에 돌아오는 진혁의 발걸음과 <최고의 결말>을 말하는 가영의 목소리가 겹쳐질 때, 우리는 가영과 진혁이 그날 밤 함께하기에 실패할 거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날 밤의 추리극에서 ‘거대한 착각’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짝’과 ‘마녀사냥’을 좋아한다던 정가영은 우리들의 연애에서 추리극을 발견한다. 거기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자신을 속이며 진심을 내뱉지 말기. 진심을 내뱉는 순간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폭력적으로 규정된다. 혹은 상대방의 얕은수에 속은 척하기. 그들은 어설픈 정의로 자신의 초라한 취향을 꾸민다. 폭력적 규정과 어설픈 정의 속에서 <최고의 결말>을 꿈꾸며 밤거리를 헤매는 오늘날의 젊은 셜록홈즈들은 그렇게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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