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서 시작하는 팀 플레이
셋밖에 없는 회사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첫 3개월은 적응하느라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고 그다음 3개월도 두 번 깜빡하니까 지나갔다. 그 사이 일하는 법이 여러 번 바뀌었다. 셋이서 합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고 일을 조금씩 더 잘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사람이 셋밖에 없으니까 내가 경험했던 10명, 50명 단위 조직에서 일하는 것과는 다르게 일해야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팀의 도구들을 소개한다.
준비물 : 노션, 구글 드라이브, (가끔) MS 오피스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N월 M일 단위로 문서를 정리했고 노션 문서에 특정 일의 진행상황을 적어가면서 공유했다. 각자가 맡고 있는 일이 몇 개 안 될 때는 이 방법이 유용했다. 나도 같이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딱히 없었고 온보딩 하는 중이었다. (온보딩이라기보다는 바닥에 길을 직접 깔아서 착륙했다는 편이 좋을지도
그러다가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프로젝트 별로 일이 횡으로 각각 진행되고 일자는 종으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체크해서는 하루 종일 서로 일한 것 공유하기만 하다 끝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 가장 간단한 칸반 보드를 도입했다. 칸반 보드는 노션에서 Board View 형태를 이용했다. 심플하게 to do(작업 예정), in progress(작업중), done(작업완료) 로 나눴다.
아 그리고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고 시스템을 도입했다. 셋밖에 안되어서 의견수렴에 용이하고 매주 피드백을 반영해 더 일을 잘하고픈 마음이었다. 회고에 대한 의견은 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는 회고의 과정이 조금 더 팀의 안전함을 끌어올리고 팀이 발전해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모든 주간에 완료된 것이 합쳐져 있다가 회고에서 이번 주 한 일을 확인하기 위해 주차별로 done을 정리했다. 이렇게 하니 이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한눈에 보인다.
다음으로 잠깐 도입했다가 사라진 방법은 개인별로 view를 나눠서 보는 방법이다. Jira 혹은 Trello에서도 내 일만 뽑아서 볼 수 있다. 어차피 셋밖에 되지 않아서 각자 일을 다 늘어놔도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보드만 보다 보니 남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게 되는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니 각자의 일은 건건이 확인이 되는데 큰 그림에서 전체 일이 진행되는 것이 잘 안보였다. Jira에서 에픽 일감이라고 부르고 그 하위에 일들을 테트리스하듯이 이 일 다음엔 이다음 일, 다음일이 끝나면 누군가로 넘겨주고 이런 식으로 정렬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전체 그림에서 보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것은 우리 팀 만의 방식인데, Manage 열을 하나 생성해서 프로젝트 별 전체 일정은 해당 열(to do 처럼 넘어가는 것이 아님)의 각각의 프로젝트 카드에서 관리했다.
그다음 변화로는 due date의 개념을 확실히 했던 것이다. 같이 일한 지 1달이 넘었을 때인 것 같다. 셋이서 일하다 보니 "아 그거 곧 끝나",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잦았다. 또 "아 맞다 그거 다음 주까지 해야 되는데 벌써 금요일이네", "이 일 2주 뒤까지 마감이면 우선순위를 좀 낮출까요?" 같은 말도 빈번했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던 마감일을 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무 카드를 만들 때 무조건 due date를 지정하고 이것을 calendar view로 보니, 일의 우선순위가 확실히 보였다.
드디어 '우선순위'라는 개념이 생겼다.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그중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논하는 일이 많아졌다. 애자일에서는 스프린트를 진행하기 전에 '스크럼 회의'를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스크럼 회의' 보다는 그냥 '회의'에 가까웠다. 그날의 일을 공유하기보다 아이디에이션을 하거나 외부 미팅에 대해서 논의하는 일이 잦았고 그러다 보면 오전에 금방 날아갔다. 같이 일한 지 2달 가까이 되어서 마침내 우리는 이 방식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는 큰 일의 일감 카드를 모두 계획하고 매주 월요일에 모든 일정을 정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회의는 필요할 때 필요한 시간만큼 모여서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이렇게 하니 확실히 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내일의쓰임에서는 크게 모여서넷제로 사업과 우리 제품을 만드는 일, 마지막으로 팝업스토어를 준비하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 모여서넷제로 사업과 팝업스토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반면 우리 제품을 만들 때는 우리가 할 일을 매주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다. 일의 방향이 한쪽은 수렴하고 한쪽은 발산하는 업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나다 보니 자꾸만 해야 할 일이 하나 씩 빠지거나 발산해야 하는 제품 개발이 우선순위로 밀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방식을 결정했다. 일주일에 3일, 2일을 나눠서 3일은 해야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2일은 창의적으로 우리의 제품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을 꽤 잘 작동했다. 특히 product 개발 시간에는 내가 임시로 pm을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PM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인스파이어드 를 읽고 실전에 적용했다. 당연히 책대로 일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식으로 제품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 조금씩 감각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3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시간에는 칸반 보드 대신 엑셀을 사용했다. 조직 내에서 엑셀을 조금 더 편해하기도 하고 ms 오피스에서 클라우드 문서를 지원해서 공유도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엑셀로 자체적인 양식을 사용했다. 왜 이렇게 했나 하니, 칸반 보드는 그래도 어느 정도 큰 업무 카드를 관리해야 했다면 '해야 하는 일'들은 너무 자잘한 일(5분 - 1,2시간 이내에 끝나는)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방식에 적응했고 몰려드는 일들을 우리 인원에 비해서는 나름 효과적으로 잘 방어해 냈다.
허겁지겁 일하다 보니 벌써 12월을 앞두고 있다. 곧 모여서넷제로 사업도 끝이 나고 오래 준비한 팝업스토어도 오픈한다. 제품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중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많이 생각났다. 특히 처음 일할 때는 일정이나 업무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자책을 많이 했었다. 잘하는 분들을 보고 따라 하려고 조금씩 노력하다 보니 그래도 지금은 전보다는 자신 있게 커다란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같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올해 내내 일한 동료들에게도 새삼 고마운 마음이 솟아났다. 고맙습니다 모두 :) 올해의 시행착오를 기억하고 내년에도 더 효율적으로 잘 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팝업스토어는 12월 4일-11일 서울숲 근처에서 진행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팝업스토어 정보 보러가기 >> https://www.instagram.com/stepping.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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