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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의 Feb 29. 2016

#3. 원풍식당

겨울에 칼칼한 낙지탕 한 그릇. 태안에서 찾은 원풍식당.

박과 조선간장으로 낙지 맛을 알려주는 집이 있다.


가을/겨울철 대표적인 보양식 낙지. 앓던 소를 벌떡 일으켜 세운다니 말 다했다. 9~2월이 제철인 이 낙지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낙지의 고장에서 찾았다. 


커다란 낙지 동상이 반겨주는 태안군의 작은 마을 원북면. 2차선 도로 좌우로 늘어선 가게들은 마치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을 한 가운데, 장터 같은 느낌이 나는 곳에 '박속밀국낙지탕'을 하는 원풍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박속밀국낙지탕'이라니 이름이 생소하다. 요리는 말 그대로다. 박국에 끓인 낙지탕이란 뜻인데, 중간에 들어가는 밀국은 낙지를 건져낸 뒤 끓여주는 수제비와 칼국수를 의미한다. 소박한 마을과 대조적으로 긴 이름 때문에 처은엔 당황했지만, 요리는 이내 이 마을과 잘 어울리도록 소박했다.


먼저, 간을 한 박국을 가져와 끓여주신다. 처음 탕 속에 있는 박을 보면 이게 박인지 무인지 가늠이 힘들다. 국물을 한 번  떠먹으면 무가 탕 속에서 내는 단맛이 느껴지지 않아 다시 쳐다보게 되고, 무보다는 조금 질긴 느낌이 나니 박으로 인식하게 된다. 박과 파, 고추만 건더기로 넣고 간을 해서 나오는 탕 속에 이윽고 산낙지 두 마리가 나온다.


박속밀국낙지탕


힘이 느껴지는 낙지는 탕에 들어가자마자 격렬하게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데, 이내 하얀 분홍빛으로 바뀐다. 해물탕은 의례적으로 뚜껑을 열고 끓이는 분들이 있다. 비린 맛을 좀 더 날려버리려는 목적인데, 이 집은 이미 잘 헹군 낙지기에 비리지 않다. 그냥 끓여도 괜찮다. 낙지가 분홍빛을 띄면 바로 머리와 다리를 자른다. 다리 부위는 조금만 지나도 금방 질겨진다. 살짝 데쳤다는 느낌이라도 식감이 충분하다. 다리부터 잘라서 먹도록 하자. 



이 집의 조선간장을 찍어먹을 수 있게 내준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가 흔히 해산물을 찍어먹는 진한 양조간장과는 확연히 다른 투명한 빛깔이다. 색이 투명하고 염도가 좀 더 높게 느껴져서 나물을 무칠 때나 국에 넣어 깔끔하게 간을 할 때 많이 쓰는 것이 조선간장이다. 그래서 으레 국간장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렇게 양념장으로 나오니 독특하다. 아마도 낙지가 물을 많이 머금고 있으니 조선간장을 내어 주시는 것 같다. 양념장은 정말 조금만 찍어 먹어도 충분히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찍어 먹을 때 주의하자. 


박이 들어간 국물에서는 약간 고소한 맛이 난다. 낙지는 보통 기름장에도 많이 먹는데, 고소함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 낙지인가 싶다. 그리고 청양고추가 충분히 칼칼하니 소주 한 잔 생각나기도 한다. 무와 비슷하나 좀 더 질기고 심심한 맛의 박 또한 조선간장에 살짝 찍어서 맛을 보자. 


밀국 : 수제비와 칼국수

이렇게 낙지를 먹고 나면, 칼국수와 수제비를  가져다주신다. 일반적으로 수제비가 먼저 익으니 수제비부터 건져먹고 칼국수가 충분히 간을 머금었을 때 건져먹도록 하자. 낙지의 간도 우러나서 한층 더 국이 진하다.


이거 연포탕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 있다. 대답은 yes다.  향토문화사전에 따르면, 두부와 닭고기를 함께 끓여낸 탕을 말하는데, 요즘에는 낙지를 주재료 해서 끓인 탕은 다 연포탕이라고 부른다. 낙지가 익었을 때, 연꽃이 핀 것 같은 모양으로 낙지의 다리가 펴진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그러니 박속밀국낙지탕 역시 연포탕으로 볼 수 있으니 헷갈리는 분들은 참고가 되면 좋겠다.


밥공기가 필요 없을 만큼 커다란 낙지에, 작은 요구르트 하나 디저트로 내주는 소박한 태안의 맛집. 원풍식당.

낙지가 생각날 땐, 겸사겸사 과감하게 태안으로 떠나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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