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소개받는 건 쉬워도 만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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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Fisher의 'Technology hasn't changed love. Here's why’ 강연을 보았다. Helen Fisher는 사랑-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문화 인류학자이다. 그녀는 주로 사랑을 할 때 뇌의 움직임, 여러 사람이 아닌 특정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는 이유,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관련된 처음 본 Ted 영상은 2008년에 강연한 ‘Brain in Love’라는 강연이다. 사랑과 마약을 비교한 2008년의 강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영상 마지막에 소개한 왜 특정 사람과 사랑하게 되는 연구가 더 궁금해 관련된 영상을 더 찾아봤다.
찾아보니 2016년에 강연한 ‘Technology hasn’t changed love’ 가 2008년에 언급한 연구 내용일까 싶어 시청했는데, http://match.com에서 수석 과학 고문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점을 정리한 내용이었다. 오늘은 그 강연을 보고 느꼈던 짤막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강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제목 그대로 왜 기술이 사랑을 바꿀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기술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변화된 것이지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가 바뀐 것은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DM, 소개팅 앱 등 인터넷 매체를 활용해 사람을 만나기 쉬워졌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나와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면서 주변에서 찾지 못했던 다양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만나고, 고를 수 있게 되었다. Helen Fisher는 다양한 조건을 비교하게 되면서 인지적 과부하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너무 많은 조건과 사람을 비교하다 보니 오히려 선택을 못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쯤 되는 농경 시대는 사람을 만나는 폭이 동네로 한정된다.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좁고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만난다. 산업 시대에는 다양한 환경을 지닌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범위가 넓어졌고 지금은 도시를 벗어나 인터넷으로 연결되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남자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역할이었고, 여자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역할이었다. 직업도 농부, 어부 등 전지 포스터에 다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일의 범위가 있었다. 지금은 남녀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집안일을 하는 역할이 성에 따라 구분되지 않는다. 또 새로운 직업도 많이 생겼다. 내 직업만 해도 친척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전에는 없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하면서 산다. 일이 한 개가 아닐 수 있고 평생 직업이란 말이 우스울 정도로 직업이 계속 바뀌는 시대다.
정리하면 이전보다 다양한 성의 역할, 직업, 가치관을 봐야 하기 때문에 나와 맞는 사람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이 사랑을 바꿀 수 없는 이유는 기술로 인해 사람을 만나기 쉽고 편리해졌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을 위한 절대적인 시간을 기술이 대체할 수는 없다.
국내에도 무수히 많은 소개팅 앱이 있다. 5km 이내의 사람들을 찾아주는 앱, 얼굴 평가를 통해 사람을 주선하는 앱, 학벌/직장을 보는 앱.. 등등 타사 앱과 경쟁하기 위해 저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남녀를 매칭 한다.
어떤 기준으로 만나는지는 다르지만 앱의 핵심 기능들을 보면 어울릴만한 상대를 추천하고 추천된 사람 중 괜찮은 사람을 선택하거나 다음 추천을 기다린다. 세세한 사항까지 매칭 해주는 앱의 광고를 보면 이미 상대방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재밌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종종 든다.
Helen Fisher의 말처럼 현재 소개팅 앱이 ‘소개’를 어떻게 해줄 것인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단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