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이야기 - 1
20160301 - 일기
프라하에서 맞는 첫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고요하다. 프라하는 관광객 많은 곳 말고는 조용한 거 같다. 사람들이 요란스럽지 않다. 차분하고, 다부지다.
더 잘까 하다가 어차피 늦게까지 못 돌아다니니 일어난 김에 아침 먹으러 나가자 싶어서 씻고 나왔다.
테스코 찾아가는 길. 여기저기 보고 내가 여기 있구나를 느낀다. 정말 신기하다. 처음 온 나라인데, 언제부터인가 계속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런데서 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테스코 식품점은 정말 귀하다. 싸고 탐스럽고 다양하다. 딸기랑 물을 구입하고 위층으로 가서 조카 민진이에게 사줄 옷이 있나, 구경했다.
나와서 중앙역으로 걸어가는데 커다란 헌책방이 눈에 띄었다. 정말 디스플레이를 잘해놓았다. 품격이 있고 정갈하다.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들어가서 체코어는 모르지만 책 구경을 하며 감탄했다. 종이 재질은 다소 거칠고 투박한데 디자인이 정말 감각적이다. 이건 무슨 책이지 하고 보면 과학책 이런 건데 표지를 보면 우와, 탄성이 나왔다. 체코인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책 디자인만 구경할래도 하루 종일 걸릴 거 같다. 내일 또 와야지 하고 나왔다.
중앙역 가는 길,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큰 서점에 들어갔다. 테스코 옆에 있는 헌책방에서도 놀랐지만 여기서 또 한 번 놀랬다. 책을 어쩜 이렇게 감각적으로 디자인하는 걸까. 재질이며 색의 사용이며 여러 가지 혼합재료를 사용하여 커버를 표현한다. 기억하고 싶은 디자인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 지금도 기억 안 난다. 체코에서 이런 거 배우면 정말 좋겠다. 흑백사진이 프린트된 엽서가 이뻤다. 여기서 안사고 결국 숙소 가는 길에 다른데서 샀다. 프라하에는 서점이 많이 있다. 헌책방 같은데 굉장히 깨끗해 보이기도 하고 그냥 서점인 거 같기도 하고. 디스플레이도 깔끔하게 주인의식이 느껴지게끔 해 놓았고 서점 안을 메우고 있는 음악 또한 굉장히 감각적이다. 체코인들은 이런 정서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나 보다.
20160302 - 일기
어젯밤에 숙소 오면서 본 뮤직샵에 들어갔다. 음악과 관련된 상품들이 많다. 숨 막히게 조용하다. 손님이 없다면 여기서 주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곳 헌책방이나 서점은 아주 조용하거나 감각적인 음악이 조용히 흐르거나 인 거 같다. 대형 매장이 아니 고서야는. 파란색 배경의 엽서 한 장을 샀다. 다음에는 선물용 노트를 사야겠다 마음먹고 나와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20160305 - 일기
프라하에서 이제 5일째. 어제는 빨래도 하고 잤다.
아침에 옆 침대를 쓰는 애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길래 일어나서 일찍 나왔다. 어차피 나올 거 긴 했지만.
까를교 앞에서 핫도그 사서 먹으면서 레기교쪽으로 향했다. 페트르진 언덕을 올라갈 참이었다.
어제 올랐던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올라가고 싶어서 커피숍을 찾았는데 9시 이전이라 그런지 문 연 곳이 거의 없었다. 포기하고 그냥 올라가자 하는데 문을 연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들어가는데 주인이 도브리덴 이라고 인사해서 나도 처음으로 도브리덴이라고 인사했다! (여행 내내 '도브리덴'이라고 인사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체코어로 인사를 하자 주인아주머니가 폭풍 체코어 발사하셔서 대충 마시고 갈 거냐고 묻는 거 갈길래 'to go'라고 대답하고 카페 안을 구경했다. 온통 책이다. 카운터를 받치고 있는 것도 책이고 안쪽 인테리어도 모두 다 책이다. 체코는 참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카푸치노를 들고 다시 페트르진 쪽으로 향했다.
20171130 - 프라하의 서점을 떠올리며
프라하에 가면 헌책방에 꼭 가 보아야지, 리스트에 적어갔다. 막상 가서는 노트를 뒤적거릴 필요도 없이 도시 곳곳에 헌책방과 서점이 심심찮게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원어로 사 오고 싶었는데, 내가 갔던 헌책방에는 그의 책이 없었다. 프라하의 서점은 보고 배울 부분이 참 많다. 책 표지, 종이 재질, 색 사용, 디스플레이, 안에 흐르는 고요한 음악 등등. 평소 책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었는데 여건이 된다면 몇 권이라도 사 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체코 사람들에게 '책'이란 어떤 존재일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서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뒷짐을 지고 서서 유리창 너머 진열된 책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무슨 책 보세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얼마 전 친한 동생이 프라하로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 '프라하 가서 어떤 서점이든 눈에 보이면 꼭 들어가 봐. 정말 멋있어.'라고 추천해 주었다. 지금 프라하에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서점에 가보시는 것 격하게 추천.
가게로 들어서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낡은 것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주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한쪽에선 인형극에 나올 법한 당나귀 인형이, 다른 한쪽에선 아련한 분위기의 흑백 인물 사진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들여다볼수록 신기한 책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오래된 러시아 과학 정기간행물, 다양한 크기의 그림책, 엽서, 드로잉집 등등. 손바닥만 한 크기에 레터링이 고전적인 문고판 책을 한 권 사고 싶기도 했지만, 체코어에 서툰 나로선 그저 살짝 찌그러진 책 귀퉁이에서 운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프라하, 소풍> 중 헌책방 MINGUS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