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푸드 인문 다큐 2부작「냉면 랩소디」
몇 년 전, 충무로에서 일할 때였다.
친구가 냉면 먹자고 해서 따라간 곳이 '필동면옥'이었다. 맑은 육수에 면과 고기 고명이 (덜렁) 얹어 나왔다. 만 원 넘는 이런 비주얼의 냉면은 초면입니다만. 얼음도 없고 양념도 없는 냉면 육수를 한 모금 꿀꺽했는데, 맛도 없었다.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정말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맹물인가 해서 친구를 올려다보니 벌써 후루룩후루룩 냉면 삼매경이었다. 난 사실 슴슴한 음식을 참 좋아한다. 평냉의 맛은 두세 번은 먹어봐야 안다는데 나는 육수 몇 숟갈 더 떠먹고 고소한 면발 후루룩 먹고, 평양냉면의 마력에 홀렸다. 정말 홀렸다. 집 가서 누우니, 평양냉면 생각이 났다. 이런 말이 있다. 음식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위안이다. 고로, 위안이 필요할 때 나는 평양냉면을 먹는다.
집 근처에 갈 만한 평냉집이 없어 평냉이 그립던 어느 날 밤, 넷플릭스에서「냉면 랩소디」를 발견했다. 냉면은 한국인에게 꽤 중요한 음식이었다. 몰랐다. 여름이면 으레 먹는 음식 정도로만 알았다. 냉면은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한다. 자칫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느껴질 그 육수를 위해 흘린 땀과 톡톡 끊어지는 고소한 메밀 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을 알게 되니 만 오천 원 육박하는 그 값이 제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종원이 소개하는 여러 냉면집 중 몇 곳은 가본 곳인데 정말 평양냉면이라고 다 똑같은 냉면이 아니었다. 조금씩 다르고 매력도 다르다. 특히 평양냉면을 무미無味의 미美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 깊다. 향긋한 메밀향을 위해 육수는 최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금 거창하게 다짐해본다.
심플하고 딥한 인생을 살아야겠다,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평양냉면이 그리운 밤,
혹은 평양냉면 그리며 저녁 식사할 때 보면 좋은
다큐멘터리「냉면 랩소디」
끝.
내 사랑 평양냉면
배 터져도 국물까지 끝까지 먹어줘야
그나마 자기 전에 생각 덜 난다.
능라도·진미평양냉면·봉피양·상원냉면·평가옥·평양면옥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