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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뇌오리 Dec 30. 2017

연말 정산

올 1년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여행을 가서도, 맛있는 걸 주문하고서도. 

완전히 하나도 안 찍은 건 아니지만 안 찍으려 했다.


놓쳐버리는 순간들을 회복하고 싶었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는 안도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순간을 지나치더라도 놓치진 않고 싶었다.

향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상상으로 떠올릴 수 없는 감각이지만

그런 향기가 있었노라. 좋았었노라. 


향기는 떠올릴 수 없지만, 아련히 남은 존재만으로도

마음 한 켠에 피어나는 뭉게거림을 간직하고 싶었다.

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내 차례가 보였다. 

한 발짝 물러서 있으니 내 위치가 보였다.


이 정도의 사람이었고, 이 만큼의 사람이었다.

순간을 좀 지나쳤을 지라도 나는 지나치지 않았다.


나로서 온전히 순간에 임할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게 순간은 그런 것이 되었다.


올 한 해도 어영부영했고 어리석었던 해였지만,

살아가는 이유는 모르지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알게 된 

한 해였지 않을까


행복하길 바라진 못하겠다.

억울한 생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ㅁㄴㅇㄹ #무뇌오리

#시 #자작시

#감성포르노 #감정의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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