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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날씨 Aug 09. 2019

너의 도쿄 2

진짜 앞에서 긴가민가 하는 일은 없지.


며칠 전에 우리는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룰게. 아직 마치지 못한 도쿄 방문기를 이어가야 하니까.


나는 다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던 그 날의 도쿄로 돌아가. 낯선 해외에서 보고 싶은 이를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감정이 일렁이는 경험이었어. 너와 만나기로 한 지하철 출구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이 너인가, 아닌 것 같다, 그럼 저쪽인가, 아니, 너는 저렇지 않지, 하는 동안, 나는 왠지 너의 얼굴을 잊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너를 본 순간 긴가민가 하는 일은 없지. 확실한 것 앞에서 우리는 불안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이런 것. 누군가 그리울 때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가 보이고,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와 닮은 먼지 한 톨만 발견해도 심장이 내려앉지만, 진짜 그 사람을 만나면 심장이 내려앉고 말고 할 시간도 없이 확신에 찬 시선이 그에게 꽂히고 확신에 찬 미소가 번지는 그런 것 말야. 확신을 느껴 본 사람은 그래서 가짜에 흔들리지 않아. 진짜를 마주할 때의 마음을 알아버렸으니까.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건가' 혹은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가' 고민한다는 건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 말야. 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너를 기다리던 순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낯익은 경험이었어.


너를 만나고 나니 신기하게도 한결 마음이 편안했어. 언어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여행자 신분이란 게, 여행으로는 꽤 긴 시간인 일주일이 지났어도,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나 봐. 널 만나고부터는 여행 왔다는 느낌보다 네가 사는 곳에 놀러 온 기분이 컸어. 너의 동네, 네가 장 보는 마트, 외식하는 쇼핑몰, 케이크를 사 가는 디저트 가게, 집 근처 골목,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딸기 쇼트 케이크를 샀던가, 일본 소설에서 많이 보던 이름의 케이크들이 진열되어 있었어. 일본 여행에서 팬케이크 맛집을 가거나 빙수를 파는 카페에 간 적은 있지만 케이크를 사는 건 처음이었어. 앉을 만한 자리가 없는 테이크 아웃 전문 케이크 가게는 떠도는 여행자와 거리가 머니까. 여행지에서는 케이크를 갖고 돌아갈 익숙한 내 집도 없고 누군가를 축하해 줄 일도 없잖아. 여행자 신분으로 하게 되지 않는 일이라니, 다음 여행지에서는 꼭 테이크 아웃으로 케이크를 사볼래. 길거리 벤치에 앉아 먹든 좁고 낯선 숙소 침대에 앉아 먹든 말야. 그게 어떤 느낌일지 벌써 궁금해.


너의 식탁에 앉아 네가 내려준 차를 마시며 우리는 오래 이야기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고 가라앉은 공기 덕분인지 우리의 대화 또한 꽤 밀도 높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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