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를 위한 마법의 주문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내가 비록 미니멀리즘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을 쓰고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자기소개를 할 때 그 단어를 꺼내본 적은 없다. '아니, 실명까지 걸고 블로그에 이래라저래라 하던 사람은 어디 가고?' 당신은 되물을 수 있겠지만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으니 나는 눈만 내리 깔뿐이다. 내가 물건을 버리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변태인지 남들은 평생 모를 것이다. 알릴 생각도 없다.
누군가는 "#오늘부터 #미니멀리즘 시작이다!"라고 해시태그를 달고선, 도미니크 로로가 쓴 그런 류의 책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전의를 다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 마음은 이해하나 주변인들을 향한 빠이팅 넘치는 선언을 보는 것 자체는 썩 민망하다고 느껴진다. 외래어가 섞인 이 요상한 단어는 옷, 가방, 신발 등 소유물(stuff)로 넘쳐나는 세상 유행과 동떨어지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동떨어져 살지 않고 그냥 적당히 소비하고 적당히 낭비하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이것이겠지 싶다.
유난 떠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요즘 베스트셀러에 놓인 미니멀리즘 서적을 들춰보고는, 도전했다가 며칠 안 가서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겪는다. 당장 필자의 누이도 그랬다가 단 3일 만에 너무나 완벽하게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와 흥미롭고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의 브런치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미니멀리즘과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는 느슨하고 유연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는 걸 알 것이다. 바쁠 때는 집이 어지러워지더라도 언제든 돌아가면 된다는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튼 새 라이프스타일을 제법 자신의 것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노하우는 다들 알 것이니, 이 글에서 미니멀리즘의 성패 문제는 논외로 하자.
문제는 앞선 인스타의 반응에 더하여, [애초에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 + [한 번 도전해봤다가 실패하여 그 라이프스타일이 더더욱 허세라고 믿는 사람]의 "유난 떤다"는 인식인 듯하다. 우리는 모두 소심한 시민들 아닌가. 그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늘 누구 앞에서 "내가 바로 요즘 유행한다는 그 미니멀리스트요"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표방까지 해놓으면 가끔 내 라이프스타일이 살짝 망가지는 순간에 얼마나 민망해지던지! 그래서 나는 내 누이가 어디선가 도미니크 로로의 책을 들고 왔을 때 "사실 내가 그걸로 인터넷에 글까지 써 내려가는 놈이야"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묵묵히 응원만 했다. 그 말 듣고 날 엄청 비웃을까 봐... 나도 가끔 집이 더러워지는 사람인 걸 누이는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같은 맥락으로 누군가가 SNS에 실명 선언을 해버리면 같은 노선을 표방하는 사람으로서 덩달아 민망해진다. '차라리 혼자 속으로 간직하며 잘 지켜나가는 게 나을 텐데.'라는 노파심과, '나는 자랑 안 하고도 혼자서 잘 지켜나가지요'라는 찌질/간사한 우월감도 조금... 함께하기 때문. 아무튼 같은 미니멀리스트끼리도 민망해하고 다른 라이프스타일끼리는 유난 떤다고 여겨지는 이놈의 미니멀리즘. 이런 은근한 압박감과 나의 찌질함, 거기에 남들 눈치까지 보이는 상황들을 마주하며 미니멀리즘을 처음 시도했을 때 필자도 나름 고민이 많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나름 명쾌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짤방(사진)이 있었으니.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 만화는, 관심을 받지 못해 쓸쓸해보이는 소년의 표정과 동작이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사서 유명해졌다. 이 아이가 뭘 하든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관심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가 카톡방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회심의 유머나 사진을 올려도 그냥 무시당했을 때, 혹은 짓궂게 그걸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을 때 이 사진을 투척해주면 효과가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 문장을 가져와 나의 미니멀리즘에 적용해보자. "나의 미니멀리즘에는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시도해서 잘 안 입게 되는 옷을 다 버려버렸다고 치자. 1년 내내 유행타지 않는 색의 유니클로 맨투맨에 청바지만을 입을 수밖에. 그런데 이런 나를 패션센스가 꽝인 사람으로 본다면 어떡하지? 그런 마음으로 옷장을 다시 봄 신상으로 채우고 싶은 욕망이 들 때, 이 손가락을 든 꼬마와 마법의 문장을 기억해내자!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나의 패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건 누군가에게는 패션의 이야기이며, 누군가에겐 아침 식단의 이야기이고, 또 나 같은 누군가에겐 전자기기의 이야기이다. 누가 무엇을 선택하든, 남들은 나에게, 당신에게,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혹자는 반박할 것이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데 감히 그런 말을 하는가?" 음... 생각해보니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맞다. 이곳은 집단주의와 꼰대 문화, 보여주기 식 물질주의와 악플러 창궐, 줄 세우기의 총본산인 헬조선! 며느리가 무슨 화장품을 쓰는지, 옆집 애는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직장 동료가 여자 친구와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까지도 궁금해하는 사회였지. 이곳이야말로 피로 사회의 끝판왕 아니던가?
그러나 나는 그 지긋지긋한 회의감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보자. 그들이 품었던 간섭에 가까운 관심들이 과연 얼마나 가던가? 나아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극성맞은 그 관심들은 정말 내가 잘되기를 바래서 보내오는 것들이었나? 두 질문들에 나는 모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내 밥그릇 문제가 아닌 이상 남에 대한 관심은 얼마 안 가기 마련이고, 나를 괴롭히기 위한 간섭들이라면 거기에 내가 머리 뽑힐 정도로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다 너를 위해 하는 소리야'라는 같잖은 말은 미안하지만 사절 마땅히 무시할만하고, 무시해야만 한다. 더 이상 세상은, 내 인생의 행복을 타인이 뒤흔드는 걸 용납해주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 사회는 비록 더디더라도, 생각보다 제법 꼰대 문화가 자리를 잃고 있기도 하다.
글의 초입에, "#오늘부터 #미니멀리즘 시작이다!"라는 SNS에 나 역시도 '유난 떤다'라고 생각한 적 있노라 고백했다. 그러나 이 유난 떤다라는 생각마저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한 번 쓸어내리는 순간이면 나부터도 까먹고 마는 생각이었다는 걸 곧 깨닫는다. 그 사진을 올린 친구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솔직히 나는 이제 궁금하지 않다. 설사 궁금하다 해도 이게 중요한 궁금증일까? 아니다. 나는 여전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나의 미니멀리즘 또한 마찬가지다. 내 신발장에는 운동화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슬리퍼 한 켤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사시사철 검정색 뉴발란스 574 시리즈만 신고 다닌다는 걸 그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내 운동화에 얼룩이 뭍은 걸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결벽증 환자가 그걸 신경 쓴다 해도 그게 내 인생에 무슨 상관일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멋진 신발로 가득한 ABC 마트를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거야!" 나의 얕은 미니멀리즘은 이 마법과 같은 문장으로 오늘도 제법 단단해진 듯하다.
간만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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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출처: 레바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