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entric 한 glory
I love Prince in all his eccentric purple glory.
가수 프린스를 이야기하며 나온 첫 문장이다.
일단 이렇게 해두자.
'나는 독특한 보라색 의상을 입고 무대를 빛내는 프린스를 사랑한다.'
그런데 love를 꼭 사랑한다로 옮겨야 할까. 미국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말도 사랑한다고 과장하니까 꼭 사랑한다고 옮기지 않아도 되겠지. 좋아한다로 바꿀까. 프린스가 좋다로 할까.
eccentric는 사전을 찾으면, 괴짜인, 별난, 기이한 으로 나온다. 프린스의 보라색 의상과 별난, 기이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 이색적인, 이채로운, 색다른, 독특한. 유별난, 희한한, 개성적인, 독보적인, 고유한은 어떨까. 세상에서 하나뿐인, 이라고 하면 너무 길어지겠지. 프린스 대표곡 하면 퍼플 레인이고 프린스의 보라색은 그의 상징색이니 상징적인, 이라고 할까. 아니야 문맥상 정확하지도 않고 딱딱해.
가장 큰 문제는 glory다. 사전에는 영광, 영예, 찬양이란다. 이쯤에서 프린스의 이미지를 찾아본다. 프린스가 너무 흔한 명사이기 때문에 가수 프린스라고 쳐야 한다. 팝의 전설. 2016년 사망 어쩌고 저쩌고. 다 읽을 시간이 없고 보라색 옷을 입은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저자가 왜 글로리를 썼는지는 알 것 같다. 주렁주렁 반딱반딱 때깔 나고 광나네 무려 왕자님이시니깐. 그러면 휘황한, 이라는 단어를 활용할까. 휘황한 불빛은 몰라도 휘황한 보랏빛은 어색하다
결국 해결을 못 내고 또 넘어간다.
가끔 아주 만족스러운 문장도 나온다.
갑오징어는 수컷 암컷 성비가 4대 1이기 때문에 수컷들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몸의 색깔과 패턴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데 왜소한 수컷들은 암컷처럼 패턴을 바꿔서 덩치 큰 수컷들이 싸울 때 암컷에게 다가가 짝짓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Brains win over brawn.
brawn 이란 단어는 처음 본다.
1, 체력 2. (편육으로 먹는 소나 돼지의) 머리 고기
두뇌가 체력을 이긴다,라고 번역해 놓을 찰나, 잠깐. 저자는 일부러 brain과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해 라임을 맞췄다. 그래. 브레인이라고 해서 두뇌를 쓸 필요는 없잖아.
'지력이 체력을 이긴다!'
이거야. 뜻도 리듬도 맞으니 원서 느낌을 정확하게 살려냈어!
그런데 영광 영광 프린스 어쩌지?
아침에 일기를 쓰다가 '휘광'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휘광으로 빛나는. 그래 보랏빛 휘광으로 감싸인,으로 할까. 광채도 있다. 광채를 발하는?
일단 교정 진도를 나가며 ~것, ~에 대한 이 들어간 문장을 고치고 이것은, 이러한, 그러함은 없애거나 바꾼다. 명사구를 가능하면 절로 바꾸고 반복된 고유명사를 빼고 접속사를 빼고 두 문장을 하나로 합쳤다가 다시 나누었다가 주어 동사 순서를 바꿔서 한 문장으로 바꾼다.
마감을 하는 일주일 정도 1,2 킬로가 빠진다. 피부가 얇아지면서 광대뼈가 만져지고 가뜩이나 없는 힙이 더 평평해지고 바지는 휙휙 돌아간다.
나는 이때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살이 내린다, 고 느낀다.
챙겨 먹을 마음의 여유가 없고 입맛도 없고 그나마 생존을 위해 먹는 건 몸이 아니라 몽땅 두뇌로 공급되는 느낌이다.
가끔은 이럴 때면 내가 이렇게 집요한 사람이었나? 싶어 진다. 방구석에 쌓아둔 옷더미는 그 아래 거지가 자고 가도 모를 정도에 부엌의 참기름병은 뚜껑도 닫지 않고 내버려 두고, 택배는 이전 작업실로 보낸 다음 전화로 해결하기 싫어 몇만 원을 포기해버린 나.
이렇게 흐리멍덩하고 덜렁거리는 내가 번역할 때만 마치 셜록 홈스라도 된 것처럼 원서를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가 인터넷을 수백 번 검색한 뒤 모든 정보와 단서를 조합해 정답을 찾아 헤맨다.
아차 프린스.
보랏빛 광채를 찾으니 화장품 광고들이 나오는군.
신비로운 보랏빛 광채를 발하는 프린스를 사랑한다?
황홀한 보라색 의상을 입고 마성의 무대를 선보이는 프린스를 사랑한다?
보라색으로 휘감고... 는 어떨까
배철수 아저씨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