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청소는 두 가지 종류, 데일리 청소와 하드코어 청소로 나뉜다. 하드코어 청소는 버리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냉장고 정리 후 발생한 각종 김치 10리터 버리기라든가 10년 전에 아웃렛에서 사서 단 두 번 입은 재킷 버리기, 중고매장에서도 안 받아주는 책 버리기 등이 이에 포함된다.
살림을 못해서 싫어하고, 싫어하니 더 못한다. 정리정돈에는 젬병이다. 이런 내가 가정주부로서 살아남는 방법은 짐을 최소한으로 남기는 방법밖에 없었다. 책 내고 강연하는 백인 청년들 같은 철학적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아이 셋 키우는 일러스트레이터 일본 주부처럼 생존형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오랫동안 번역가로 책만 들여다보면서 살다 보니 물질적인 욕심이 자연히 사그라들었다. 이 또한 고차원적인 이유가 아니라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쇼핑과 담쌓도록 진화해버린 케이스.
취향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렸는지 뭘 봐도 예쁜 건지 아닌 건지 갖고 싶은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되었고 오직 실리적인 목적을 갖고 물건을 구입하고 대한다. 애지중지하는 그릇이 하나라도 있나? 당연히 없다. 가끔 생각한다. 이 집이 불이 나서 살림살이가 싹 없어진다고 해도 그렇게 아쉽지 않을 거라고. 사실 오늘내일하는 낡은 전자제품과 신혼 때 산 삐걱대는 가구들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돈만 있으면). 노트북과 핸드폰만 사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래 봬도 소싯적에는 패션에 관심이 많아 쇼윈도와 거리 패션을 흘끔거리고 새벽까지 인터넷 쇼핑을 했다. 하지만 옷을 보관할 공간이 없는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3일째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은 번역가로 살면서 옷에 대한 애타는 갈망도 드디어 없어졌다.
버리기에는 짜릿한 쾌감이 따라왔다. 가끔은 과거까지 세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후회와 미련을 질척거리며 끌고 다니지 않고 더 나은 경험과 사고로 정신의 집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까지 생겼다.
그 날은 책을 버리는 날이었다. 드디어 내가 번역한 책들도 깡그리 버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는데 오래전에 나와 절판되거나 나도 재미없게 번역하고 누구에게 선물할 수도 없는 책이 그저 내 이름이 붙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오래 이 작은 집의 공간을 차지했는지 깨닫고 신나서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버리기 시작하자 버튼이 눌렸는지 이번엔 버릴 옷은 없는지 옷장을 살펴보았다. 겨울 코트 딱 두 벌, 패딩 두 벌. 간소했다. 그런데 그 코트가 어디 갔지? 없네? 15년이 넘게 살아남은, 내가 사랑하던 아이보리색 마인 모직 코트가 어디 있냐고? 버리기의 쾌감에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해져 그것도 버린 건가?
2002년 겨울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쥐꼬리만 한 방송작가 월급을 받으며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들었다 놨다 하던 이십 대의 내가 몇 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꾸밈비라는 명목으로 받게 되었다. 쇼핑에 일가견이 있는 당시 절친을 데리고 명동 롯데백화점으로 향했다. 카드도 아니고 새하얀 봉투에 든 수표를 꺼내면서 샤넬 화장품을 사고, 가방을 사고, 위에서 말한 마인 코트를 샀다. 당시 가격으로 50만 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면 100만 원은 훌쩍 넘었을 코트다. 단순한 A 라인 디자인에 코트 깃이 크고 질리지 않는 베이지빛 아이보리색이다. 지금까지 보풀 한번 나지 않았을 정도로 고급 원단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입을 일이 없었다. 유행이 지난 코트라는 게 의식이 되었고, 점점 더 패딩을 선호하다 보니 예쁘장한 정장형 아이보리 코트는 점점 구석에 처박혀 나올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련을 못 버린 이유가 혹시, 결혼식과 신혼여행 준비 이야기를 친구에게 재잘대며 최고급 브랜드에서 가장 비싼 코트를 세일하지 않을 때 당당하게 소비하면서, 결혼생활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잔뜩 품었던 28살의 내가 아직도 눈에 아른아른해서 그런 것인가.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인생이 뭔지도 모르면서. 바보같이.
아이를 데리러 도서관으로 걸어가면서 혹시 그 코트로 상징되던 결혼식의 설렘이 모파상의 목걸이 같은 허상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단 한번 파티에서의 허영 때문에 목걸이를 빌렸다가 십 년 동안 빚을 갚은 마틸드처럼 나도 그 백화점에서의 순진무구한 행복과 웨딩드레스와 신혼여행을 받고 혹시 나의 젊음, 나의 꿈, 나의 인생을 운명의 신에게 냉큼 주어버린 건 아니었나.
모파상의 목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동화 구연 발표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건 전래 동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난 교탁 앞에 나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반 친구들을 둘러보며 발표했다. "제가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모파상의 <목걸이>입니다." 선생님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웃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았던 나는 다른 5학년들과 수준이 다른 나에게 더욱 도취되어 마지막까지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은 알고 보니 가짜 목걸이 었던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내 결혼생활이 종종 고통스러웠다 해도,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엎드려 울던 날들을 거치고, 끝나지 않는 가사노동과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지치고, 이 답답한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해도, 내가 무지한 채 뛰어들어 지도 없이 헤쳐온 지난 세월이 가짜 목걸이는 아니었다. 귀족들의 진주 목걸이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 목에 착 붙어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견고했고 가끔 사파이어 같은 빛을 내기도 했다. 28살 때 품었던 결혼에의 막연한 환상이 거칠고 남루한 현실로 바뀌었다 해도 내가 가짜 싸구려 목걸이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늦은 밤 도서관에서 집까지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왔다. 아이가 집에 와 자기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다시 옷방에 들어갔다. 옷장 문을 열고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내가 작년에 그 옷을 버렸다면 분명 버린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입어 보았을 것이다. 그때보다 몸집이 작아진 나에게 너무 커서 휙휙 돌아갔을 것이다. 작년과 재작년에 단 한 번도 안 입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것이다. 베이직한 코트가 갖고 싶다면 다른 코트를 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괜찮아.
그렇게 완전히 포기한 다음 옷장 안을 손으로 쓱 훑는데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 손에 집혔다. 내가 옷을 걸어놓은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옷이 한 벌 걸려 있었다. 꺼냈다. 그 코트였다.
있어. 있어. 있었어. 버리지 않았어.
나는 소리 지르며 아이를 불렀다. "이리 와봐, 빨리. 엄마한테 와봐."
"엄마 이거 결혼하기 전에 산 코트다? 엄마 아빠 한겨울에 결혼식을 했잖아. 결혼식 끝나고 공항 갈 때 예쁘게 입으려고 산 거야. 어때? 아직 예쁘지?"
아이는 대답 없이 씩 웃었다. "이거 내가 버린 줄 알고 얼마나 속상했었는지 알아? 그런데 안 버린 거 있지? 너 한번 입어볼래? 너한테 물려줄까?"
아이에게 입혀 보았더니 아이에게는 팔이 짧아서 우스꽝스러웠다.
"아, 이건 엄마의 옷장에서 발견한 빈티지 코트는 안 되겠네. 엄마가 계속 입어야지. 늙을 때까지 입어야지. 절대 안 버려야지."
버리지 않고 구석에라도 모셔두었던 오래전 코트를 입고 단추를 채우고 거울 앞에서 빙 돌아보는 날 보며 나 자신을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버리기 대장이고, 아무리 물건에 집착하지 않고, 물건에 얽힌 추억에 연연하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정말 정말 예쁘고 특별한 아이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물여덟 살 겨울,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아이보리 코트를 버리지 않을 정도로는 추억을 끌고 다니며 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