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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Aug 20. 2019

어쩌면 사랑이야기

번역 수업을 듣고 번역가가 되기 위해 말 그대로 발버둥 치던 시절에는 악간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나중에 돈을 떼어먹으려고 온갖 술수를 쓰던 이름 모를 출판사에서 이름 모를 책을 번역하게 되어 당시에도 턱없는 번역료로 계약서를 쓰고 와서도 신도림역에서 그 책을 꼭 안고 지하철 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던 기억도 있다. 아. 정말 행복하다. 까만 창에 비친 내 얼굴 아니 내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후배와 같이 한 책의 샘플 번역에 도전했다가 그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고 나는 그 친구 번역의 어떤 점이 나보다 좋은 지 한 문장 한 문장 뜯어보기도 했다. 

마케팅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을 앞세우고 나는 대역을 한 뒤 그 책을 서점에서 보고 서글퍼서 제대로 들춰보지도 못하고 얼른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에이전시에서 괜찮아 보이는 책을 골라 기획서를 쓰고 관심이 있다는 신사역의 어느 출판사에 갔다가 "번역가들 돈도 못 벌고 대우도 안 좋은데 왜 하려고 하세요?"라는 굴욕적인 말을 듣고서 한 시간 반 걸려 부천 집까지 오면서 이 쓸쓸한 감정의 정체가 뭔지 생각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책의 기획서가 통과되었지만 내 연락처가 없어 나에게 연락을 못하고 다른 번역자에게 넘어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꼬박 이틀 동안 잠을 못 자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한참 울기도 했다. 

무엇이 그렇게 번역에 절박하게 매달리게 했을까. 

아기를 낳고 막연히 방송을 다시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방송작가 시절 특별히 일을 잘한다거나 같이 일하기 편하다는 평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건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1년 가까이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다가 '절대 안 되겠다, 나가야겠다, 나는 일을 해야겠다.'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을 수도, 경력단절 위기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더 이상 학교 이름이 나를 포장해주지 못한다는 걸 직시하고 방송일을 하면서 꿈의 직업이란 없다는 걸 깨달아 겸손과 도전정신을 장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작업에 내재된 근본적인 매력이 있고 그에 내가 단숨에 깊이 매혹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정확한 이유일 듯하다.


자존심 다 버리고 맹목적으로 매달려 겨우 번역을 내 곁에 가까이 오게 했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처음의 열정은 애증으로 변질되었다.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적도 없지 않았다. 

몇 달 내내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이 번역한 뒤 통장에 찍힌 번역료를 보고 이렇게 외치고 싶은 날도 있었다. "너무해. 너무해. 아무리 그래도 이보다는 많이 벌어야 하는 거 아니야?" 


불행은 잘 차린 밥상처럼 한꺼번에 온다더니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닥쳤을 때가 있었다. 

불운을 먹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사람, 수습해보려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지만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가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는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일상도 지뢰밭이었다. 일렬 주차했던 내 차가 미끄러져 어떤 차를 밀고 그 차가 다른 차의 헤드라이트를 깼으며 차 주인 두 명이 번갈아 전화를 걸어 빨리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일을 해결하고 난 뒤 얼마 후에 카페에 가서 일하고 나왔는데 내 차가 움푹 파여있었고 그 때문에 경찰서에 가고  CCTV를 확인하고 트럭 운전사와 싸우고 카센터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고 며칠 뒤에는 내가 다른 차를 스치고 지나가 보험회사에 또 연락하는 식이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오직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며 아이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날들.

남편과의 무시무시한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아이와 둘이 집을 나가 호텔에서 자고 난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도 뭘 했었나 생각한다. 

나는 단어를 찾았다. 왜냐하면 찾아야 했으니까.  

나에게는 늘 번역해야 할 책이 한 권이라도 있었고 그 책은 날 원했고 나를 기다렸고 나와 싸웠다가 화해했고 아침마다 씻고 밥 먹고 가방 메고 자전거를 타고 양재천을 달리게 했다. 

구박하고 무시하고 더 잘하라고 채찍질하면서도 가끔은 수호천사처럼 저기 멀리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밥을 사주고 옷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었다.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일은 내게 더 친절해졌고 함께 하는 시간은 더 느긋해졌다. 이제는 서로의 장단점을 알아서 딱히 잔소리하지도 않고 큰 기대도 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심전심 사이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내 행복과 성취감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나는 가장 과대평가되고 한심한 캐릭터이자 결말에서 '뭐 어쩌라고?'를 중얼거리게 하는 책이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 같다. 

아내는 사랑할 노력은 하지 않고 딸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도 방치하고 오직 문학에서만 위로를 찾다가 죽기 전에 자기가 쓴 특별하지 않은 책을 쓰다듬는 남자라니.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만나면 일 이야기만 하는 건 진부하기 그지없다.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일로 돈벌이를 하여 책을 사고 운동을 등록하고 여행을 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정도지.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고 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만드는 일이 언제나 우선이지. 


다만 가끔씩 책장 정리를 하거나 작업실을 바꾸면서 나를 스쳐갔던 원서와 번역서를 한 권씩 먼지 털어 꼽을 때면 이것들이 나를 패배하지 않게 지켜준 병정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앞으로도 서로의 늙은 얼굴을 바라볼 것이고 주름진 손을 잡을 것이라고, 이 사랑이야기의 결말은 높은 확률로 나쁘지 않을 거라 믿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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