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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레트번역가 Sep 18. 2019

등산과 탁주의 나날

정확하게 따지면 그 날이 첫 만남의 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첫 만남으로 새기고 있다.

청계산 매봉을 올라갔다가 계단을 내려오면 사방이 트인 공터가 나왔고 그곳에는 늘 막걸리를 파는 테이블이 펼쳐져 있었다.

한 잔에 2000원이었던가. 우리 눈이 마주쳤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 한잔만 나눠 마실까?'

아저씨 두 명이 노란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따라주었고, 무한 리필되는 마늘종과 오이를 쌈장에 찍어먹을 수 있었다. 남편은 한 입 마시자마자 화색이 돌았고 나에게도 건넸다. '맛있다.' 얼굴이 적당히 불콰해진 아저씨들은 한 잔을 공짜로 더 따라주었고, 우리가 감사해 해자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아저씨들은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어서 장사에는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었고 너와 나 산과 막걸리로 하나 되자 니나노를 외치는 중이었다.

남편은 그날을 마늘종과 처음 만난 역사적인 날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 날 이후 막걸리를 사는 날에는 무조건 세트처럼 마늘종을 사 왔으니까.

(이건 2018년 9월 13일 국립공원 음주 산행 전면 금지가 실시되기 이전의 일임을 밝힌다)


나는 이 날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 선사하는 마법에 반하고 말았다. 세상에, 밥과 국과 술이 한 그릇에 다 들어 있을 수 있다니. 아니 하나를 빼먹었다. 약. 갑자기 세상이 유리알처럼 반짝이고 발걸음에 리듬이 붙고 웃음이 실실 나오게 하는 마약.

사실 화려한 색상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녀의 커다란 백팩에 막걸리와 각종 안주와 과일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얼굴을 찌푸렸었다. 등산이 목적인 거야 술이 목적인 거야?

하지만 나도 막걸리가 목적인 산행을 두어 번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관악산 연주대 주변에서, 한 번은 청계사 근처 바위에 올라가 산바람으로 목덜미의 땀을 말리며 서울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그러나 안 그래도 덩치에 비해 체력이 달리는 남편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낑낑대는 바람에 우리는 다시 가벼운 차림으로 돌아갔다.

(이 역시 2018년 이전이다.)


등산을 즐기기, 아니 사랑하기 시작한 지는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렸을 때도 관악산 옆에 살았었고 주말이면 부모님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항상 물었었다.

"산에 갈래?"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산에 왜 가?" 그리고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인기가요를 보고 라면을 끓여먹을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30여 년 후 나는 그 시기의 나와 똑같이 산에 왜 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른 엄마 아빠가 사라지길 바라는 아이를 집에 두고 연둣빛 봄에, 녹음의 여름에, 밤송이가 밟히는 가을에 동네 산을 찾는다.

등산로 초입에 서 있는 준비 운동 게시판은 번잡한 지상과 유리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다. 흔한 비유지만 나니아로 통하는 옷장이다.

잘 왔어. 오길 잘했어. 마치 보장된 행복을 기대하며 달리기를 하는 러너처럼 산에 오르는 즉시 나는 여기서 오늘치의 아니 주말분의 행복을 몸에 저장 해갈 준비를 한다.

자주 게으름과 무기력에서 허우적대고 자기 환멸과 만성적 후회라는 병증에 시달리고, SNS을 보며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나는 사라지고 잔가지 사이를 민첩하게 움직이고 이파리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경탄하고 약수 한 모금에 감읍하는 또 하나의 나로 돌아온다.

30분 전 거실에선 천박한 물질 주의자였는데 입산 5분 만에 월든의 소로가 된다.


내가 막걸리의 마법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했던, 애틋한 추억의 장소는 산은 아니고 서울대공원 동물원 저수지다. 그날 남편의 가방에는 막걸리와 마늘종이 있었고 내 가방에는 김밥과 바나나가 들어 있었다. 흐린 날이었고 비가 자잘한 소름이 돋은 팔 위로 톡톡 떨어지자 준비해온 우산을 쓰고 걸었다. 가늘고 촘촘히 내리던 빗물은 해후한 연인처럼 잔잔한 호수의 팔에 감겼다.

여기서 먹을래?

우거진 나무가 비를 가려주는 평평한 바위 위에 우리는 가지고 온 모든 음식을 펼쳤다.


내가 우리 딸만한 나이였을 때는 EM 포스터라든가 제인 오스틴 원작의 19세기 영국 배경의 영화에서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이 바구니를 들고 연인과 갈대밭으로 피크닉을 가는 장면을 동경했었더랬다. 그런데 어쩌나, 나 또한 한국인의 국민 취미에 동참해 버렸는 걸.

와인과 장미의 나날을 꿈꾸었던 소녀는 등산과 탁주의 나날에서 작은 보석 같은 순간을 찾는 여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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