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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안 들어요, 말을 잘 들어요.

잘 듣는다는 건 잘 묻는 다는 것




-야!


-아, 왜?


-너 이리 와 봐!


-왜?


-빨리 안 와?


-에이 씨


-이게 뭐야?


-아 몰라. 담임이 엄마 갖다 주래.


-너 애들 때렸어?


-아니! 내가 왜 때려!


-근데 이게 뭐야!


-욕해서.


-무슨 욕을 얼마나 했길래.


-몰라. ***끼가 *치길래 니네 엄빠 **이지 그랬더니 지*이잖아.


-너 진짜 그랬어?


-아 왜! *치면 그럴수도 있지. 엄마는 나한테 안 그래?


-뭐! 이 *끼가. 너 이따 아빠 오면 보자.


-아빠한테 들은 건데 아빠한테 말하면 뭐 어쩔 껀데?


-뭐?


<다음 날>


-진호야.


-아, 왜요!


-이리 와봐


-아, 진짜. 쟤가 먼저 저 째려 봤다니까요!


-그래서 네가 뭐라고 했는데?


-아, 몰라요.


-진짜 몰라?


-니 엄빠 **이라고요.


-**가 무슨 뜻이야?


-아 몰라요.


-모르는데 그냥 쓴 거야?


-네!


-민준이한테만 그랬어?


-네? 왜요?


-진영이도 그러던데.


-아 걔가 저한테 먼저 화내잖아요


-왜 너한테 화를 냈는데?


-몰라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우개 몰라?


-아, 진짜 치사하게. 지우개 하나 빌린 거 갖고 너무하네. 주면 되잖아요.


-빌려가서 안 준거야?


-안 준 게 아니라 못 준거에요.


-왜 못줬어?


-지우개 쓸 일이 있어서요.


-언제?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진영이는 자기 지우개 쓸 일이 없어?


-그건 저도 모르죠.


-그럼 진영이도 네가 지우개 쓸 일이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되겠네?


-친구가 그러면 안돼죠!


-그럼 너는?


-저요?


-그래 너. 네가 친구라면 어떻게 해야 해?


-아, 알았어요. 주면 되잖아요.


-또 할 거 없어?


-뭐요?


-진영이 부모님한테 네가 한 말.


-아...진짜.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뭘 할 건데?


-사과요.


-한 번 해봐.


-싫어요.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지 보려고.


-아, 알아서 할게요.


-좋아. 그럼 진영이 부른다?


-부르세요.


-왜 부르셨어요?


-진호가 너한테 사과한다고 해서.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사과 안 받아도 괜찮다고요


-너 속상하잖아.


-어차피 사과해도 또 그럴거에요. 옛날에도 그랬어요. 걔.


-진호를 못 믿는구나.


-어떻게 믿어요? 말로만 사과하고 뒤돌아서 또 욕하는데.


-민준이도 진호를 안 믿을까?


-아마 그럴걸요? 진호 말을 믿는 애가 있을까요?


-아무도 없어?


-하아...진짜. 하지 말래도 계속 장난치고, 욕하고. 그래서 화내면 지가 더 난리치는데 어떻게 좋아해요?


-그렇겠다. 선생님이어도 못 믿을 것 같아. 진호도 알겠지?


-뭘요?


-친구들이 자기 말 안 믿는다는 걸.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진호야


-왜요?


-진영이가 네 사과 안 받겠다네.


-잘 됐네요.


-뭐가 잘 돼?


-사과 안해도 되잖아요.


-왜 안 받겠다고 하는지 안 궁금해?


-안 궁금한데요?


-난 말해 주고 싶은데?


-그럼 하세요


-네가 사과해도 또 욕할 거라고 하더라. 못 믿겠데.


-이..


-왜? 화나니?


-아뇨(씩씩대며)!


-진영이가 너 무시하는 것 같아?


-(화를 내며)그럼 아니에요?


-(웃으며)너를 못 믿 는게 속상하구나.


-네?


-진영이가 너를 못 믿으니까 화가 나는 거잖아. 아니야?


-...


-왜 네 말을 못 믿을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에 진영이한테 사과한 적 없어?


-있어요.


-그리고 사과할 일 없었어?


-있어요.


-몇 번이나 되는지 알아?


-몰라요


-선생님이 기억하는 것만 다섯 번이야.


-뭐 그런 걸 다 세요.


-너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네?


-네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저한테 관심 주지 마세요.


-왜?


-그냥요.


-안돼.


-왜요?


-그게 내가 네 선생으로 해야 할 일이니까.


-...


-진호 어머니 오셨어요?


-네. 선생님.


-진호한테 이야기 들으셨어요?


-네? 아뇨.


-그럼 왜 오시라고 했는지 모르시는 거에요?


-그냥 종이 하나 주던데요. 거기에 오늘 3시까지 교무실로 오라고 써 있더라고요.


-다른 건 안 보셨어요?


-진호가 애들한테 뭐라고 한 거요?


-네.


-아니. 애들이 크면서 화가 나면 그럴 수도 있죠.


-진호가 화가 나서 그랬대요?


-네


-왜 화가 났다고 그러던가요?


-네?


-왜 화가 났는지, 얼마나 화가 나서 욕을 했는지 어머니께 말하지 않았나요?


-그건 잘...기억이 안 나네요.


-진호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셨나 보군요. 잠시 만요. 어머니. 진호 오라고 할게요.


-진호야. 여기 앉아.


-에이씨


-너 이....


-어머니 잠시 만요. 진호야.


-네.


-네가 왜 화가 났었는지 엄마한테 말씀드려.


-싫어요.


-왜 싫어?


-지난번에 말했어요.


-엄마가 기억이 안 나신다는데.


-그 *끼가 깝치잖아요.


-진영이가 어떻게 했는데?


-모둠 준비물 가져 오는 게 있는데 못 가져 왔다고 그랬더니 저보고 빠지라잖아요.


-준비물은 왜 안 가져 왔어?


-엄마한테 준비물 말했는데 안 사주잖아요.


-니가 언제 말했어?


-내가 세 번 말했거든.


-그래. 진호야 잠깐. 진영이가 너보고 빠지라고 해서 화가 난거야?


-네.


-그걸 몰랐네.


-네?


-네가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고. 왜 몰랐을까?


-말했잖아요.


-그랬지. 깝친다는 네 느낌말고 네가 진짜 화가 난 이유.


-그게 뭔데요?


-너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빠지라고 해서 화가 났다는 걸 아무도 몰랐잖아. 그쵸 어머니?


-그..그렇네요.


-그걸 물어봤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진호야.


-네?....


-진호에게 더 잘 물어봐야겠습니다 어머니.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네...선생님. 저도 노력할게요. 죄송합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는 말


어른들은 아이가 커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누굴까요? 아이일까요? 어른일까요?


엄마는 진호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나요? 모르고 있었죠. 왜 진호가 진영이에게 화가 났는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물어보지 않았으니 말하지 않았죠.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세 번이나 말했어도 엄마는 잊어버렸어요. 엄마도 진호의 이야기를 안 들었어요.


진호는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하지만 엄마는 챙겨주지 못했어요. 바쁘니까요. 진호는 엄마가 왜 준비물을 챙겨주지 못했는지 물어봤나요? 묻지 않았죠. 진호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진호가 준비물을 못 가져 왔을 때 진영이가 뭐라고 했었죠? 빠지라고 했죠. 왜 빠지라고 했을까요? 준비물을 안 가져왔으니까요. 준비물을 안 가져온 이유를 물어봤나요? 묻지 않았죠. 진영이도 진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잘 듣는다는 건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해요. 잘 모르면 물어봐야 해요. 잘 듣는다는 말은 잘 물어본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이에게 왜 화가 났는지 물어봐 주세요. 친구에게 왜 준비물을 안 가져왔는지 물어봐 주세요. 엄마가 왜 준비물을 못 챙겨 주었는지 물어봐 주세요. 말을 잘 듣는다는 건 잘 물어본다는 말과 같거든요.


#슬기로운언어생활

#잘듣는다는건잘묻는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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