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꿔야 할까?
1. 영유아 발달 검사라는 것이 있다. 생후 1개월부터 42개월까지 영유아의 발달 기능을 개별적으로 측정한다. 아이의 인지, 언어, 사회성, 운동 영역의 발달을 잰다. 문항은 총 300문항 정도 되는 것으로 알 고 있다.
2. 아동 청소년의 발달을 잰다. 신체 발달이 또래에 비하여 어디에 위치하는지 재기 위해 키와 몸무게를 잰다. 그 외에 아이의 인지, 언어, 사회성, 운동 영역의 측정은 교과의 성취기준으로 갈음한다. 난 이 점이 의문이다. 성취기준은 무엇을 기준으로 설정하였는가?
3. 학습은 입력된 정보와 출력된 정보의 양과 질로 측정할 수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정보의 양은 비슷하지만 어느 영역에 얼마의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기억이란 흔적의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아이가 타고난 자질에 더하여 주어진 환경(가족과의 상호작용, 의식주, 거주지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 등)에 의해 차이가 생긴다.
4. 입학기준. 초등학교 입학 조건은 단 하나 연령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차이에 따라 입학 과정에서 학생을 선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과정은 해당 연령의 발달 평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발달의 평균은 인지, 정서, 신체 발달의 어디를 가리키고 있을까?
5. 만 7세 아동이 해내야 할 발달과제와 해낼 수 있는 발달의 정도는 무엇일까? 학습이란 과정에서 습득 가능한 정보의 평균은 얼마일까? 사용 가능한 어휘의 양과 질은 어느 정도일까? 교과서로 드러난 교육과정은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을까?
6. 학년별로 사용하는 어휘의 수와 어휘의 수준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로 대표되는 계층이 사용하는 어휘의 양과 질이 세대를 거쳐 전이된다고 볼 때 현행 교육과정은 다분히 편파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계층에 따라 습득한 어휘와 어휘의 수준이 매우 다르며 학령기 초반부터 계층에 따라 실패의 경험이 크게 누적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7. 연령의 발달 수준에 맞는 발달과제와 더불어 교과의 존재 이유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평가 목적에 따라 평가 방법이 달라진다. 평가 방법에 따라 수업이 달라진다. 따라서 성취가 아닌 변별을 목적으로 하는 중고등학교의 평가는 고질적으로 학습 그 자체를 왜곡한다. 무슨 말일까?
8. ‘지능의 함정’이나 ‘스켑틱’과 같은 책을 읽다 보면 높은 학업 성취를 이룬 이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일목요연하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의 주변에도 높은 학벌을 가진 이들의 비이성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아느냐로 변별해온 평가 방법에 익숙해진 사회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관점을 잃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9. 학문은 사회를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경제학자는 경제로, 정치학자는 정치로, 교육학자는 교육으로 사회를 본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음악, 미술, 체육, 도덕과 같은 과목을 통해 사회에 접근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얻는 것이다. 기초 기본 교육은 바로 이 관점을 획득한 교양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0. 따라서 수업은 학생에게 교과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 각 개인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의 정도를 동일한 척도를 통하여 잴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다양한 개인들의 이해 수준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그렇다면 단일 척도를 사용한 기계적 공정이 아닌 다양한 척도를 적용한 맞춤형 공정이 가능하지 않나?
11. 바로 이 점에서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주어져야 하지 않나 나는 생각하게 된다. 교과를 도구로 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획득하게 하는 교육과정. 그래서 성격강점과 덕목을 중심으로 하는 긍정심리학 바탕의 교육과정을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