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Oct 20. 2021

"이러다 다 죽어" 에너지 대란과 오징어게임

제국주의시대 떠올라

오늘은 갑자기 에너지 대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냥 재미있는 포인트가 몇개 보여서...다만 사견이니까. 나이브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이브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당신이 가여워..




에너지 대란이 심각합니다. 19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0.52달러(0.63%) 상승한 배럴당 82.96달러에 거래를 마감, 무려 4거래일 상승세를 탈 정도며 그 외 에너지도 대란에 가까울 정도의 공급망 교란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석탄은 중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파격적 선언으로 가격 상승에 제동이 걸렸으나, 이 역시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에너지 대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입체적입니다. 일단 팬데믹이 서서히 끝나가며 각 국의 산업발전량이 늘어나고 있으나 에너지 생산이 원만하지 않아 공급망이 교란되고 있으며, 국제유가의 경우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단기적 영향도 받았습니다. OPEC+의 제한적 증산도 당연히 에너지 대란, 국제유가 상승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천연가스는 기존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의 사이에 있다는 포지션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유럽 길들이기로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석탄은 중국 전력난에서 촉발된 공급망 붕괴가 세계적인 석탄 공급망 교란으로 이어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각 국이 에너지 안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그린플레이션의 역습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그린플레이션의 역습'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대란이 팬데믹 이후 극심해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친환경 에너지로의 어설픈 전개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신조어입니다.


한 발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그린플레이션이 '왜' 벌어지는가.


산업발전에 따른 탄소배출량이 많아지며 기후변화 등 환경오염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탄소중립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공격적으로 나섰습니다. 


문제는 이 친환경 인프라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친환경 에너지의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도 멈추게 만들었던 올해 초 북극 이상한파, 유럽 서부에 설치된 풍력 발전소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무(無)바람 현상, 아시아의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증상이 벌어지며 친환경 에너지가 충분한 발전량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에너지 대란의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그린플레이션으로 가는 길이 열렸지요.


흥미로운 대목은 그 이후입니다. 친환경 에너지가 생각보다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해 발전량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팬데믹 종료 후 에너지는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까요. 각 국은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느슨하게 투자했던 기존 에너지원에 부랴부랴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탄소중립 시대라면서 미국은 석탄 발전량을 다시 키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 에너지정보청은 올해 미국에서 석탄화력 발전이 전년과 비교해 22%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탄소중립에 매달리던 중국도 전력난 한 번 크게 당하자 석탄 수급에 집중했고, 가격이 올라가자 아예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네요.


아이러니, 그 자체

그린플레이션의 역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입니다. 기후변화를 막겠다며,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며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나섰으나 이미 망가진 지구환경은 친환경 에너지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에너지 대란, 그린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각 국은 다시 석탄을 찾고 있습니다. 


과수원 경영에 빗대자면, 오랫동안 화학비료를 써 과수원을 경영했으나 땅 상태가 나빠지자 친환경 비료를 통해 과수원을 경영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미 화학비료를 오랫동안 쓴 땅은 '소프트'한 친환경 비료에 적응하지 못했고 나무들은 죽어갑니다. 그러자 주인은 부랴부랴 화학비료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로아미타불, 아이러니, 딜레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장면에도 펼쳐집니다. 일종의 책임소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과수원에 여러 명의 주인이 있었다고 생각합시다. 그 중에서 A라는 주인은 오래전부터 화학비료를 써왔고 이내 땅 상태가 나빠지자 다른 주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이제 화학비료 그만 쓰자"고요. 그런데 다른 주인들은 약간 황당합니다. 지금까지 A는 화학비료를 마음껏 뿌리며 그 과실을 통해 큰 부자가 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A와 달리 뒤늦게 과수원 경영에 뛰어든 다른 주인들 입장에서는 속이 뒤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A는 자신이 오랫동안 망친 땅의 토질을 내보이며 "이대로는 모두 다 죽어"라며 오징어게임의 오영수처럼 외치네요. 다른 주인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쩔 도리가 없어요. 오영수의 오징어게임에 고삐 끌리듯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여기서 오영수는 한마디를 더 보탭니다. "이제부터 화학비료 쓰는 사람은 벌금을 따로 내야해"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과, 유럽연합이 발표한 전기 및 비료, 철강, 알류미늄 등에 적용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초안을 골자로 하는 피프 포 55가 오버랩됩니다. 1,2,3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지루를 망친 장본인들이 이제는 탄소국경장벽을 세워 후발주자인 아시아 국가들을 견제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못된 환경오염의 화신이 중얼거리는 것 뿐일까요. 


이번 에너지 대란, 그린플레이션 현상을 통해 유령처럼 고개를 드는 '그렇다면 원전이 답이다'라는 맥락없는 주장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우리가 한 번 고민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카카오모빌리티, 논란 탈출 하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