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유는 차고 넘치네
지난달 삼성 언팩 당일. 저는 코엑스 인근 술집에서 다른 매체 기자 후배들과 달리고(...) 있었습니다. IT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나 변방 오랑캐에 준하는 쩌리였기에 IT의 꽃인 전자 영역에서는 손을 뗀 상태라, 걍 신경쓰지 않고 술을 먹을라 했는데 동석하기로 한 후배 기자가 언팩 취재를 하는 바람에 장소를 코엑스 인근으로 잡은 것이었죠.
열심히 달리던(...) 중 언팩 취재를 하러 간 후배 기자가 다시 돌아오겠노라 다짐한 것까지는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데 어느덧 부어라 마셔라 장소를 막 옮기다보니 어느새 그 기자가 돌아와 있어요? 그래. 언팩 취재를 하고 온 소감이 어떠냐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물으니 딱 두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아이브 장원영. 그리고 복장.
이야기가 좀 길어지니 짧게 말하자면..그러니까 삼성전자가 갤럭시로 MZ세대 잡고 싶은데 언팩을 보니 영 분위기가 아니더라(...) 뭐 그런 뜻으로 요약할 수 있을듯 합니다.
자.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제 사견입니다. 좀 긴 호흡으로 고민의 고민을 해봤습니다.
삼성전자의 고민
삼성전자를 비롯해 많은 ICT 전자기업들은 MZ(일단은 이 표현을 쓰겠습니다)세대와 동행하고 싶어합니다. 구매력이 한정된 이들이지만 그들은 미래 세대지요. 그리고 트렌드를 주도하고요. 끌어당겨야 하는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끌어당겨야 하는가.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 힙한 MZ들의 아이콘과 손을 잡는것. 갑자기 멀쩡히 오프라인 점포 잘 돌리던 유통가들이 메타버스에 상점 차린다고 보도자료 내는 것과..KT가 나이스웨더 마켓과 협력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유튜버를 섭외하거나 기타 등등. 많죠. 그리고 두 번째는 MZ가 되어보는 겁니다. 정확히는 스스로가 MZ에게 팔리는 무언가가 되어서 한번 스며들어가 보는 것. 마지막 세번째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하는 것이 있겠지요.
첫번째 방법은 나름 쉬운 방법일겝니다. MZ에게 힙한 이들도 돈은 필요할테고 레거시와 손을 잡는 것은 도움이 되니까....뭐 나름 코드만 잘 맞으면(돈만 쓰면) 그럭저럭 해낼 수 있습니다. 취재현장에 있으면서 판단한 사견이지만...효과는 차치하더라도 평타는 쳤던것 같습니다.
두번째 방법은 성공하면 대박입니다. MZ 스스로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트렌드 쫒는다고 힙합바지를 입은 배나온 중년남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생각납니다. 통신 대기업과 시중은행이 합작해 만든 모 핀테크 기업 출범식에 갔는데 개막행사로 비보이가 춤을 추더군요. 맨 앞줄에 앉은 임원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는 가운데 '젊은 느낌!' '강렬한 컬러!'라는 멘트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는 그 비보이님이 안쓰러웠어요(...) 그로테스크했습니다. 네. 삐끗하면 혼종이 태어납니다.
삼성전자 갤럭시 마케팅은 이 두 번째에서 시작해 세 번째에서 갇힌 것 같은 느낌입니다. 스스로 MZ가 될 두툼한 지갑은 있어요. 그런데 뭔가 어울리지 않아...삼성전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듯 합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임원과 직원들의 타운홀 대화가 많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타운홀 대화 자체가 열린다는 것은 삼성전자도 이제 위기감을 본격적으로 느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위기감은 실체가 있습니다. 갤럽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기준, 18세에서 29세까지 갤럭시 점유율은 32%에 불과합니다. 반면 아이폰은 65%에 달합니다. 더블 스코어죠.
물론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갤럭시 점유율도 올라갑니다. 40대에는 갤럭시 점유율이 78%, 아이폰은 18%에 불과하고 50대의 갤럭시 점유율은 86%, 아이폰은 6%까지 떨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아이폰은 젊은 세대만 쓰는 국지적 스마트폰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만...글쎄요. 이건 2023년 데이터죠. 2025년은? 2030년은? 고객의 스마트폰 충성도는 특유의 락인 효과로 말미암아 갤럭시와 아이폰 모두 강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젊은세대가 나이를 먹어 30대, 40대, 50대가 되면 아이폰 천하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기업들이 왜 MZ를 장악하지 못해 안달이났는지 잘 생각해보면...지금 갤럭시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 여실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질문 워밍업
MZ는 왜 갤럭시를 외면할까. 이 문제로 돌아오면 몇가지 단서들이 있기는 합니다.
"요즘은 아이폰 에어드랍으로 헌팅포차서 헌팅하는 시대인데 갤럭시는 이런거 없다"
"왠지 아이폰 안쓰면 따당하는 것 같다"
"아이폰쓰면 IOS로 다른 기기도 다 연동되어 너무 편하다"
"어렸을때 구린 갤럭시A 쓰던 경험이 뭣같아서 아이폰 바로 갈아탄다"
"아이브도 쓰던데?"
...대충 이 정도인 듯 합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기서 질문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질문 자체를 'MZ는 왜 갤럭시를 외면할까'가 아닌 'MZ는 왜 아이폰을 쓸까'로 바꿔야 합니다. 사실 이쪽이 더 명확하죠. 갤럭시도 프리미엄 스마트폰입니다. 플립과 폴드보세요. 막 접히고 이쁘고 난리났어. 좋은 스마트폰이에요. 그런데 안써요 젊은세대는. 그런데 아이폰은 쓰네? 그러니까 우선 질문부터 'MZ는 왜 아이폰을 쓸까'로 시작해야 더 명확하고, 더 확실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MZ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MZ라는 표현을 쓰지만(사실 저도 씁니다) 이건 사실 명확하지 않은 규정의 시도일 뿐입니다. MZ? Z? 그런거 누가 정하나요? 뭐 정한다고 해서 나쁠것도 없기는 하지만...최소한 이 문제에 있어서는 MZ 정의내리기는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갤럽의 자료에서 말하는 18세에서 29세까지의 고객들을 MZ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정확히는 Z) 이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 특유의 요소들을 모두 반영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의 특징 있잖아요. 쿠팡플레이 MZ오피스에서 웃길려고 만들어 놓은 요소들. 뭐 말 그대로 이런 요소들을 재미로 소비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질문처럼 심층적이고 과학적이며 이성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맘충이 아니고 모든 노인들이 틀딱충이 아니듯이. 사람의 특성을 MBTI나 혈액형처럼 규정하고 정의내리는 것은 유사 통계학이자 웃기려는 시도이며, 걍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일단 알기쉽고 편하게 규정하고 보려는 인류문명사 보편적인 시도일 뿐입니다.
차라리 그냥 젊은세대. 즉 생물학적으로 젊은 사람들이라 칭한 후 그 주변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고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아이폰을 쓰는 젊은세대를 MZ라는 특성에 묶지 않는다고 치자. 그럼 이들 고객들에 대한 타깃분석도 결국 걍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일단 알기쉽고 편하게 규정하고 보려는 인류문명사 보편적인 시도일 뿐이냐? 그럴수는 없죠. MZ라는 이름과 패러다임에 과도하게 묶일 필요가 없다는 것일뿐. 역시 어쩔 수 없지만 뭔가의 규정은 해야 합니다.
그 규정은 무엇인가. 저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세대는 걍 젊은세대에요. 그들을 MZ라 묶어 과도하게 정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은 분명 세대별 차이가 있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 기아. 급속성장. 유지. 퇴보. 이런 것들이요.
그리고 지금의 젊은세대는 유지의 단계에 있습니다. 이건 뭔 소리냐. 1970년대~1980년생들이 어린시절 LP에서 CP, 파일,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경험을 시시각각 해볼정도로 다이내믹했다면 지금의 젊은세대는 모바일에 갇힌 시대라는 것. 즉 눈부신 성장 후 찾아온 긴 호흡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물론 지금도 기술의 발전은 엄청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더욱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것들을 말합니다)
다이나믹한 경험을 한 세대의 자녀세대인 이들은 이미 발전된 세계에서 아직 추가적인 한 방을 경험하지는 못한, 일종의 낀 세대라는 점이지요. 추억의 응답하라 1998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의 흐름은 온 몸으로 관통한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살기 어려워져요. 지금의 젊은세대 주변을 관통하는 시대적 상황이자,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입니다.
그들은 왜 아이폰을 쓸까?
자. 그렇다면 이 젊은세대들은 왜 아이폰을 선호할까. 위에서 거론한 이유들도 맞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흐름을 쫒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낀 세대. 다이내믹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 어려운 세대. 그러니까...모바일 시대를 맞이해 사회 곳곳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살면서도 고립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세대.
그런 이들이 본능적으로 찾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연대입니다. 다만 민감하고 다소 신경질적이에요. 우리가 X세대라 부르는 이들처럼 개성을 쫒을 여유는 없습니다. 또래 집단의 유행에 더욱 민감하고 여기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또래들끼리만 뭉쳐요.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1990년대~2000년대 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또래 연대의식이 강한 이들일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아이폰으로 돌아오면, 그렇죠. 이들은 아이폰을 쓸 수 밖에 없죠. 아이폰이 그들에게는 하나의 연대니까요. 정확히는 연대의 의식이자 상징물입니다.
아이폰은 이 욕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켜줍니다. 우선 고급져요.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이야. 그리고 기기 자체의 기술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모바일AP 벤츠마크할때마다 A 시리즈는 따로 떼어둡니다. 왜? 너무 뛰어나서. 아이폰 성능 죽여요.
이러한 기초체력에 소프트웨어가 들어갑니다. 에어드롭 보세요. 아이메시지. 페이스타임 보세요. 갤럭시도 잘 됩니다만 아이폰의 IOS는 다양한 기기들과 너무나 잘 연결되고 연대됩니다. 심지어 장원영도 쓰네? 그 어느때보다 강한 연대의식을 가진 젊은세대들이 우루루 따라갑니다. 물론 무지성으로 따라가는거 아니에요. 방금 말한 요소들.
GOS 사태따위 없는 아이폰. 성능 죽이는 아이폰. 너무나 잘 연결되고 연동되는 아이폰. 소통이 되는 아이폰. 연대가 되는 아이폰. 아이브도 쓰는 아이폰.
작은 것 부터?
저는 MZ의 아이폰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대신 다양하고 젊은 인간군상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아이폰을 택하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뭐.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아이폰? 팀 쿡도 아재에요. 그런데 스토리텔링 잘 하면서 소프트웨어로 승부를 보며 젊은세대를 사로잡은 겁니다.
쉽게 말해 젊은세대가 아이폰을 쓰는 이유? 아이폰이 좋은데다 제격이라서.
그럼 삼성전자는 정말 답이 없나? 소프트웨어 파워를 키우면 됩니다. 그런데...좀 늦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MZ 흉내만 내면 상황은 더 꼬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시도하면 어떨까요? 지난 6월 AWS 워싱턴 서밋에 참가했을 당시 현장에서 만난 마크 슈워츠(Mark Schwartz) AWS 엔터프라이즈 전략가 겸 에반젤리스트에게 클라우드 디지털 전환을 고민하는 기업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 적 있습니다. 그가 말하더군요. 애자일 방식으로 아주 좁은 영역부터 하나씩 해보라고.
지금의 젊은세대가 아이폰을 쓰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아이폰이 이를 미리 준비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애플의 준비도 철저하고요. 무엇보다 가지고 있는 패가 너무 많습니다. 이럴때 정면승부는 답이 없으니...차라리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통해 젊은세대가 연대하고 연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것. 아무 의미없어 보여도 이모지 하나만 달랑 주고받거나 파격적으로 A 시리즈 중 하나를 전용 단말로 키워 역시 전용 소프트웨어를 키우는 것. 이런 거 말입니다.
하드웨어 폼팩터 변신은 나쁘지 않으니. 이제 소프트웨어에 아주 조금이라도 욕심을 내는겁니다. 방향성은 역시 연대. 동질감으로 잡고 말이죠.
....많이 어렵겠지만 말이죠. 그래도 삼성전자를 응원해봅니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