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스타트업 창업자와 업계의 큰 형, 정복군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지난 7일 이사회 의장직과 우아DH아시아 의장에서 사임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통해 "구성원들과의 함께 했던 그 열정의 시간들 너무 행복했다"면서 "그러나 열정은 너무 뜨겁고 너무 큰 힘을 쓰는 일인지라 좋은 쉼표가 있어야 좋은 마침표로 완성된다"고 말했습니다.
자. 2023년 기준 네이버 신사옥이 공터일 당시부터 네이버를 출입했던 기자 두 명중 하나인 업계의 미친 고인물인 제가.(네이버 홍보팀에서 들은 찐 이야기입니드아아) 오랜만에 취재수첩을 한 번 열어보며 '그땐 그랬지'를 한번 시전할 순간이 왔군요. 와.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이게 된다고?"
네오위즈와 네이버 등에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김봉진 의장은 2010년 우아한형제들을 통해 배달의민족을 전격 출시했습니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모바일 혁명이 꿈틀거리던 시기, O2O의 바람을 타고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씨앗이 심어지는 순간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대중에게 '배달음식을 스마트폰으로 주문해야 하는 행위'를 납득시키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 등 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컸다는 설명입니다.
치열한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김 의장은 지난 2018년 2월 '스타트업 한국을 만나다' 행사에 참석해 "경쟁사가 앱 내부에서 주문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했으나 배달의민족은 아직 서비스가 준비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던 때가 있었다"면서 "경쟁에서 밀릴 것을 우려해 배달의민족도 앱 내부에서 주문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급하게 출시했지만 관련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고객들이 배달의민족 앱에서 주문을 하면 내부 직원들이 이를 확인하고 전화로 음식점에 전화해 주문을 완료했던 일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본엔젤스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당시 배달앱 시장 1위는 배달통이었으나 배달의민족이 1위라고 끝까지 우겼다"면서 "결국 투자를 받은 후 1년이 더 지나자 배달의민족이 진짜 1위를 했다. 유리한 상황이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우겨서 목표를 달성해도 좋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꺼내기도 했습니다.
그 치열한 전장의 한복판을 관통한 배달의민족은 결국 한국 스타트업 업계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우뚝 성장했습니다. 특유의 B급 감성을 내세우며 배민팬덤을 조직했고 '말도 안되는 지표'를 생성해내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2016년 9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출범한 가운데 김 의장은 초대 의장을 맡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출범 초기 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것에는 결국 실패했고 무엇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을 두고 우려가 컸습니다. 당시 김 의장에게 "인기협에 지나치게 기대어 (2중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나"고 묻자 "무간도 한 편 찍어야지요"라 답하던 김 의장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김 의장은 의욕적으로 코스포를 이끌었고 확장시켰으며, 그 결과 약간의 논란은 있으나 현재 코스포는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인상적인 성과이자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김 의장은 그러나 쉬지 않았습니다. 2019년 DH의 배달의민족 인수를 끌어내며 한국 스타트업도 해외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마중물이라는 평가를 넘어 김봉진이라는 한국 스타트업의 인물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은 있었지만! 새로운 전기로 볼 수 있지요.
깐깐한 감동 중독자
업무 특성상 우아한형제들이라는 기업과 김봉진 의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그 결과 가깝게 붙어 꼬치꼬치 캐물어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김봉진 의장이라는 인물이 어떤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우선 김 의장은 깐깐합니다. 실제로 한창 배달의민족이 폭풍질주를 거듭하던 때,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폭군(?) 스타일에 깜짝 놀란 이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동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면 그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요. 인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철두철미한 업무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B급 감성 및 특유의 사내문화, 나아가 기업비전의 구축에도 그의 깐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16년 4월. 당시 배달의민족 우아한형제들 내부에서 심상치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모바일 결제 수수료 0%를 선언하며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던 시기, 외식배달 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와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인 배민프레시 등을 키워나가며 아이돌로 부상하던 우아한형제들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들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근직 직원들에게 교통비 지원을 하지 않고 이를 실질적인 연봉에 포함하는 것과 채용비리 의혹이 있었습니다. 특히 우아한청년들이 서울지역 매니저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관이 합격 내정자를 미리 정한 후 인원채용을 시작했다는 지적은 약간 심각해 보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혹의 상당부분은 '문제될 소지'가 아니었습니다. 걸고 넘어가면 걸 수 있지만 그럴 가치는 없는....좀 김이 빠졌었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 의장과 우아한형제들의 대응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회사가 실패하거나 경영상의 문제를 겪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악당의 편에 서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약간 미묘한 대목입니다만 이건 아주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악당일 수 있어요 사실. 또 자신을 속이는 것은 의외로 달콤하지요. 그러나 이 대목에서 김 의장은 마지막까지 나아가지 않고 어떻게든, 무엇이든 했습니다. 이건 깐깐함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때 성황리에 열렸던 치믈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동물보호단체의 희한한 어깃장에 꺾이기는 했으나(지금도 이 사건은 역대급이라 생각합니다. 결말도 완---벽) 치믈리에는 배달의민족을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과 삶에 녹여내려던 김 의장의 깐깐함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수 많은 기부와 라이더들과의 상생, 스타트업 업계의 시너지 창출 등 그의 행보 모든 것에 깐깐함이 배어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감동이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 봉진이형이 필요하다
김 의장은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한 획을 그었고, 코스포를 출범시키면서 스타트업이라는 테두리를 명확히 하는 한편 후학 양성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나아가 우아DH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해외 진출 마중물이 되었으며 여세를 몰아 '인물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습니다.
다만 글을 써놓고 보니 김봉진 의장을 무슨 슈퍼맨처럼 써놨네요. 그건 아닐겁니다. 실패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 사옥 방문 시 그렇게 강조했던 AI 데이빗은 지금 어디에 가출했냐고....물어보고 싶고. 우아DH 활동도 생각보다는 허점이 많습니다. 글로벌 진출에 사활을 걸었으나 일본에서 철수하고 베트남에서는 여전히 반등을 일으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업이 그렇지만 우아한형제들도 완전한 기업은 아니지요. 지금도 욕을 많이 먹고 있고....많이 억울하지만 2% 정도는 자초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도 오픈서비스 사태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그렇기에 김 의장, 업그레이드 봉진이형이 필요합니다. 그가 일군 토양에 그가 미처 이루지 못한 퍼즐 한 조각을 맞출 수 있는 사람. 깐깐함으로 무장해 스스로에게 강박을 가지고 그 깐깐함을 유지한 체 끝없이 성장할 줄 안다면? 쉽게 말하면 깐깐함을 더욱 극대화시키면서도 유연하게 살아남으면서 글로벌까지 편하게 시야에 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김 의장의 사퇴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인 이유입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후학 양성을 통해 업그레이드 봉진이형을 만들어 내야 하니까요. 또 김 의장 자체가 일을 쉴리가. 없지요. 그가 찍은 쉼표에 유독 흥분(?)이 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의 쉼표에 박살난 DH 주가에 따른 현타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상상하며....그의 다음 도전이 보여줄 더 재미난 세상. 기대해봅니다. 덕분에 저도 좀 더 업계에서 해먹어(?) 보겠습니다. 다음 목표는 네이버 제 3사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