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것일까"
배달의민족이 또...이상한 프로젝트를 해버렸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치킨과 와인 전문가 소믈리에의 합성어인 치믈리에를 뽑겠다는...음..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탄력을 받으며 정부는 물론 일반기업도 속속 일자리 창출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드디어 배달의민족도 정부와 코드 맞추기 나선 것일까요...방미사절단에 김봉진 대표가 들어가더니 친문으로 가는 겁니까?
사실이라면 의리가 없군요, 의리가. 저는 지금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구 사옥에 덜려있던 사무실 현판 말이죠. 새마을운동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친박의 기조를 걸으시더니, 정말 이러실겁니까? 여전히 누님에 대한 의리를 외치고 있는 모 보수정당을 보고 배우세요! 의리! 의리! 그러고 보니 치킨은 닭이고...닭을 먹는 치믈리에라면....너무 친문 아닙니꽈아아!
..개소리고요. 솔직히 치믈리에. 이거 그냥 '재미있을것 같아'라는 마음으로 시도된 것 같습니다. 내부 워크샵에서 재미로 했는데 반응이 좋아 아예 자격증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하네요. 당연히 브랜딩을 위한 시도이기도 하겠죠? 그 현장을 가봤습니다.
뜨거워..뜨겁다고! 이게 왜 뜨거운거야!
더운 여름날. 오랜만에 아들...이 아니라 손자 보겠다고 올라오신 부모님을 설득해 롯데타워로 모셨습니다. 부모님은 전망대 구경을 시켜드리고..전 그 틈을 노려 치믈리에 자격시험 현장을 보고 싶었거든요. 전망대...보고 싶...ㅠ
현장은 입구부터 열기가 후끈합니다. 접수처에는 시험에 응시하기 위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안으로 들어가니 '절대미각을 찾아라'코너에 긴 줄이 보이더군요. 이곳은 일종의 몸풀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서 먹거리에 대한 스스로의 능력을 재고할 수 있는 뭐 그런...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자리를 잡은 응시생들 중 제 눈을 확 잡아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네. 응시생 중 사이에 왠 닭 한마리가...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뭘 물어봐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세요?" 라던가 "왜...닭 먹는 자리에 닭 가면을 쓰고...", 그리고 "그 디테일은 도대체 뭐임..." 뭐 이런...여튼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고는 그냥 "화이팅하세요"라고 말하고 웃었습니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인물.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티셔츠를 입고 참석한 분도 계시더군요. 정체가 뭐냐 물어보니 프랜차이즈를 실제 운영하는 점주라고 하시더군요. 신선했습니다.(진짜가 나타났다!)
연예인 하동훈 씨도 참석했습니다. 완전 진지...
이윽고 행사 시작. 김봉진 대표가 화면을 통해 인사를 건냅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의 배경을 설명하고 그 의미를 진지하게 말하셨는데 제 귀에는 "아항항항 재밌지? 즐겨요"라고 들렸습니다.
드디어 시험 시작. 필기시험은 총 30문항입니다. 15개 이상을 맞추면 합격. 그리고 실기시험 절반을 맞추면 합격입니다. 그리고 필기시험은 3개가 듣기평가에요. 완전 수능 스타일...특히 듣기평가 아주 웃겼습니다. "다음 중, 닭 울음소리가 아닌 것은?"이라는 진지한 문제출제자의 음성이 울려퍼진 후 아무리 들어도 사람이 내는 것 같은 "꼬꼬댁" 소리가 나오지 않나. "다음중 치킨 프랜차이즈의 로고송을 찾으시오"라는 질문과 함께 익숙한 멜로디가 울려 퍼집니다. 사방에서 킥킥대네요.
필기가 종료된 후 시작된 실기시험. 진짜 치킨 세트가 나왔어요. 그리고 이를 진지한 표정으로 음미하는 응시자들...아...이거 웃긴데 진지해서 더 웃겨...특히 닭 가면을 쓰고오신 분. 왠지 그로테스크 했습니다.
브랜딩, 또 브랜딩
자격시험 중 만난 류진 실장께 물었습니다. 아주 진지하게 물었어요. "이거, 왜 하는겁니까?" 그러자 우리의 남자 류진 실장님. 예의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미국식 어깨으쓱 제스쳐 시전합니다..하지만 전 진지했어요. 우사미 눈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증 따면 뭐 좋은거 있어요?" 그러자 우리의 남자 류진 실장님. 매력적인 미소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런건 없는데요"
...그런데..왜..이런 일을 벌였...냐고 물으니 그때 핵심을 살짝 공개해줍니다. "함께 즐기고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며 재미를 느끼고, 또 자격증 따면 실제 장사에도 활용할 수 있죠. 뭐 특별한 이점은 없지만요"
전 이 말에 모든 의미가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이건 재미입니다. 재미있자고 비싼 호텔 잡고 대규모 행사를 치는 아주 황당하게 스케일 큰 재미에요. 심지어 자격증은 국가자격증 같은것도 아니에요. 4차 산업혁명 지도사 자격증도 나오는 시대인데 뭔들 못하겠냐만은. 여튼 참 대단한 일이에요. 이렇게 노는것도 어려워요.
그래요. 사실 이건 재미에서 출발해, 배달의민족이라 할 수 있는 브랜딩이며 쇼이자, 축제이면서 의미있는 여흥이자 진지한 플랫폼 경쟁력의 발휘입니다. 이 행사 하나로 배달의민족은 막대한 팬층의 결집과 이슈, 그리고 기업 브랜딩을 모두 해버린겁니다. 뭔가 계획적으로 중역회의를 통해 시작된 아이디어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 재미있자고 하는 일은 죽어라 달려들어 해버리는 스타일을 잘 보여주기도 했어요.
여담이지만 시험 기간 내내 진지한 응시생들의 자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치믈리에 자격증을 원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시험 막판에 부랴부랴 omr 카드를 교체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이라도 치믈리에 자격증이 진짜 쓸모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소맥자격증처럼 합격하면 sns에 올리는 수준이지요. 그런데 이 수준이 참 의미있습니다. 합격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팬이 되고 이는 또 다른 팬을 부릅니다. 게다가 치믈리에 자격증이라는 건 원래 없잖아요? 만들어진 의미지만 분명 의미는 의미죠. 이것들은 모두 배달의민족 자산이 될겁니다.
행사를 보며 전 내내 "내가 지금 뭘 보고있는 것일까" 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니 명확해졌어요. 전, 재미에서 시작된 거대한 여흥을. 배달의민족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쇼를 본겁니다. 그 안에는 함께 즐기고 나누자는 분명한 생각의 연대가 꿈틀거렸습니다.
단언합니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곳은 배달의민족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배달의민족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재미있는 구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