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방식 돌아볼 필요 있다
애플이 아주 난리입니다. 팀 쿡 한마디에 수 천억원을 날리더니, 미국에서는 반독점 심사에 걸려 잔뜩 움츠러든 분위기입니다. 혁신의 스티브 잡스가 들으면 피가 거꾸로 치솟을 비판들이 난무하니, 애플 제국도 이제 망쪼가 들었나 봅니다.
사실일까요? 사실일 수 있습니다. 공급망 관리의 달인에서 애플 제국의 2대 황제가 된 팀 쿡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온건하지요.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라기 보다는 은은하게 일을 벌이고 밀어 붙이는 스타일입니다. 분명 팀 쿡의 시대는 '원 모어 씽'이 더이상 기대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왠지 문제가 터지면 당장 무간도를 찍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쨋든 사티아 나델라의 MS와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보여주는 화끈한 브로맨스가 지금은 더 화끈하고 강렬하며 왠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들뜸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이런걸 좋아하며 돈뭉치를 던지는 유구한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그럼에도 한번 더 물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애플은 정말 쩌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지극히 사견입니다.
생성형 AI 시대, 갑자기 을이 된 애플?
지난해 초만해도 팬데믹과 리오프닝.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및 에너지 논란이 터지며 FAANG2.0의 개념이 부상했습니다. "ICT 온택트 트렌드? 거 임팩트 있는건 아는데 지금은 당장 외부의 적과 싸우면서 먹고사는게 더 중요해" 대충 이런 트렌드였어요. 기존 ICT의 상징인 FAANG에 굳이 2.0 버전을 붙이며 농업과 방위산업 등을 올린 것은 일종의 시대전환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판을 단숨에 흔들어버린 것이 오픈AI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AI의 공포에 주목했던 고 스티븐 호킹과 일론 머스크와 같은 현자(?)들이 AI의 공포를 제어하기 위해 만들었다던 은둔의 사원이, 순식간에 MS와 손을 잡고 화려한 네온사인을 자랑하는 둠칫 두둠칫 영등포 호박나이트가 되어 욕망의 탈출구로 재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메인스테이지에서는 최고의 인기가수 생성형 AI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요.
이후로는 뭔 어후 정신이 없습니다. 멀티모달부터 앤트로픽의 등장에 "우리 클라우드 쓰면 생성형 AI 더 강해진다"며 유혹하는 AWS 등 주요 클라우드 업체들. 서울의 봄이 아닌 오픈AI의 봄이 절찬리에 상영되는가 하면 바드와 제미나이의 구글이 보여준 허둥지둥에 페이크 뉴스 논란, AI 서밋과 유럽연합의 AI법 등등등. 전쟁입니다.
여기서 애플이 도마 위에 오릅니다. 그럼 애플은 뭘 보여주고 있나?
사실 애플이 보여준 것은 많은 편이지요. AI 비서 시리를 대단히 일찍 출시해서 추억의 삼성전자 빅스비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고, 한때 유행처럼 세상을 강타했던 스마트 스피커 시대를 맞아서는 아마존 에코의 영혼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MS 코타나와 이런저런 꿍짝쿵짝 재미있게 어우러지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름 알렉사와 코타나가 합종연횡을 펼치는 등 소소한 재미 포인트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의미가 없지만.
다만 생성형 AI 시대에서는 딱히 보여준 것이 없습니다. 팀 쿡이 지난달 초 "애플이 AI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올해 말 생성형 AI 활용 계획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업계에서는 왠지 애플이 애플 답지않게 조금 쫄리고 있다는 반응이지요. 내년 WWDC에서 애플 GPT가 나올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글쎄요..좀 두고볼 필요가 있다는 회의적 반응이 많습니다.
오히려 굴욕을 당하는 눈치입니다. 구글 제미나이를 아이폰에 담는 것을 고려하는 한편, 오픈AI와도 접촉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블룸버그는 애플이 곧 출시할 아이폰 운영체제 iOS 18에 자체 AI 모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능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작성하는 기능을 포함하는 생성형 AI 기능을 강화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바이두에 매달리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바이두와 접촉해 바이두의 AI 어니봇을 중국향 아이폰에 탑재하는 것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 대단하다는 애플이 중국 기업에 손을 내밀다니!
팬데믹이 한창이던 당시 퀄컴과 특허 라이선스 공방을 벌이다가 막상 5G칩을 공급받지 못해 5G 아이폰을 출시못하며 끙끙 앓던 애플이 인텔과의 협력도 무산됐을 당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빙그레 웃으며 "우리 기린은 어때? 짱짱맨이라규"라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던 일이 있었지요. 누가 봐도 애플을 농락하는 것이었고 애플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며 차라리 퀄컴과 친해지겠다며 보상금 지불하며 사태는 일단락이 됐지만, 지금 애플과 바이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아하니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애플은 정말 AI 멍청이일까?
애플이 어쩌다 여기까지 몰렸을까요. 구글이야 검색 엔진이 캐시카우니 이를 갉아먹을 수 있는 생성형 AI가 참 애매했었고... 무엇보다 프로젝트 레이븐 당시부터 착한 AI를 지나치게 지향하다보니(이거도 나름 병입니다 병...) 뭐 지금에 이르러 당장 급해져서 람다 바드부터 지니, 젬마, 제미나이 막 던지고 조지 워싱턴을 흑인으로 그려내는 뻘짓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딥마인드 '가오'가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니 정신이 없지요. 원래 초 엘리트도 이등병 되면 정신이 없어 고문관되는 것이 세상의 섭립니다. 그런데 왜 애플은? 2011년부터 시리를 키워왔는데 도대체 왜? 이제 생성형 AI 시대인데 도대체 왜? 자신들이 메인이 아니라서 신경을 안썼나?
다만 곰곰히 뜯어보면 조금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애플도 사실 AI에 신경 많이 쓰고 있거든요. 일단 멍텅구리기는 하지만 시리도 있고, 또 아이폰은 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하드웨어 플랫폼이라 데이터 확보에도 강점이 있어 AI 인프라를 키우기에 제격입니다. 물론 비슷한 말을 하는 삼성전자처럼 가전제품을 제조하지는 않고, 또 샤오미처럼 공기청정기를 만들지는 않지만 모바일 시대를 맞아 기업과 고객의 가장 극적인 일상 데이터가 만나는 스마트폰. 즉 iOS의 아이폰을 엄청나게 팔아 퍼트렸다는 것은 데이터 확보에 있어 엄청난 강점입니다.
기술력이 부족한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애매한 것이...지난해 10월 애플과 콜롬비아 대학교 연구원들은 오픈소스 형태인 멀티모달 LLM ‘페럿(Ferret)’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생성형 AI 관련 논문 ‘휴먼 가우시안 스플랫(HUGS: Human Gaussian Splats)’과 ‘LLM in a flash: 제한된 메모리로 효율적인 LLM 추론’을 공개해 호평을 받기도 했지요.
AI 스타트업도 많이 쓸어 담았어요.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0년(2010~2023년 9월) 동안 애플은 올해 동영상 AI 스타트업 ‘웨이브원(WaveOne)’을 포함, 총 32개의 AI 스타트업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다른 경쟁자들과는 거의 2배나 차이가 납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말합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필두로 엄청나게 많은 하드웨어 플랫폼을 깔아 데이터 확보에 용의하지만 지나치게 폐쇄적 환경이라 AI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요. 일리가 있습니다. 애플은 다른 빅테크들이 개인정보를 확보해 유용한 데이터 가공을 하려는 것을 두고 "니네들은 데이터군산복합체야!"라고 비판한 정도로 개인정보보호의 요정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역시 식별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AI 전략에 있어 큰 어려움이지요. 최근 개발을 포기한 애플카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해석이기도 합니다. 애플은 비록 폐쇄적이고, 얻을 수 있는 개인정보도 제한적이지만(비식별) 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리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또 유리합니다. 왜? 매우 간단합니다. 폐쇄적이니까! 불순물이 없으니까!
생성형 AI 마저도 고객 만족의 소프트웨어 일부일 뿐?
자. 애플이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구걸하는 을이 되어 모두의 비웃음이될지, 아니면 나름 잘 쟁여놓은(?) AI 기술력으로 한방을 보여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애플에게 있어 생성형 AI 마저도 자신들의 가치인 '고객에게 잘 팔리고 잘 받아들여지는 소프트웨어의 요소일 뿐'이라는 감정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애플의 방식을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자. 사파리를 볼까요? 애플은 폐쇄적이지만 사파리의 기본 검색엔진은 구글을 사용합니다. 왜? 애플 자신들은 (사실상)검색엔진이 없으니 고객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잘 쓸 수 있는 걸 쓰고, 그걸로 또 구글에게 돈 엄청나게 땡길 수 있으니까.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애플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담긴 촘촘하고 폐쇄적인 소프트웨어 영혼을 잘 만들어진 하드웨어 그릇에 담아 파는 기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하드웨어에요. 오프라인. 현실에서 돈을 벌어다주고 그 외 부가수익도 꼼꼼히 챙겨주는 것이 하드웨어니까. 애플은 여기서 M 시리즈를 만드는 등 과감한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거나 공급라인 다변화라는 전략을 통해 진짜 미친듯한 장인정신을 보여줍니다. '그냥 다 필요없고. 고객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만 고민합니다.
생성형 AI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다 필요없고. 고객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사파리에 구글 담는 것처럼, 거대한 스토리텔링과 잘 만들어진 하드웨어의 결합체인 아이폰을 잘 팔 수 있다면 생성형 AI도 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전략의 일부에 불과한겁니다.
생성형 AI 시대. 우리는 쏟아지는 AI 뉴스를 보며 입을 떡떡 벌리다가 지식 장사꾼들이 펼치는 마법쇼에 눈이 멀어 주머니에서 월 20달러 내놓지 않으면 원시인이 되는 것 같은...마치 생성형 AI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엄청난 시대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 확신은 합니다만. 말 그대로 생성형 AI는 변화의 수단이지 변화 그 자체이자 시대 그 자체가 될수는 없습니다. AI가 반도체 산업을 바꾸고 유통 산업을 바꿀 수 있지만 AI가 그 자체로 반도체가 되거나 칫솔, 과일, 쌀알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애플은 이를 알고있는 것이 아닐까요? 생성형 AI는 수단이며. 또 철저한 수단이고 또 완벽하게 유용하지만 감히 세상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막대한 AI 기초체력을 쌓아둔 상태에서 그저 고객에게 오프라인 플랫폼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고민하면서 생성형 AI를 다루는 것 아닐까요? 마치 AWS가 베드록을 통해 다양한 생성형 AI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며 "우리 클라우드로 와..DX가 아니라 AX 시대잖아. 고객님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레고형으로 다 준비해봤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고객에게. 고객에게 맞춰서.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진짜 서늘한 것은..앞서 말했듯이 애플의 AI 실력도 꽤 상당하다는 겁니다. 그럼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지요. 적당히 구글이나 오픈AI AI 써 보다가 어느 순간 확 자신들의 AI를 전면에 내건다면? 비전프로부터 아이폰, 맥에 모두 적용되는 AI에 대한 주도권을 파트너들에게 갑자기 뺏어온다면? 물론 지금까지의 관습도 있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겠지만..애플이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완성해가는 작업들을 보면 또 빈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청업체로부터 부품 잘 받다가 자기들에게 핵심적이고, 또 전체 그림 그리는데 있어 내재화가 필요하겠다 싶으면 걍 수직계열화 한 사례는 꽤 있습니다.
물론 애플이 구글이나 오픈AI와 손을 안잡고 자체 애플 GPT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요. 만약 전자라면 애플은 이미 가진 AI로 판을 흔들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고, 후자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생성형 AI도 소프트웨어의 일부이자 고객만족의 연장선이라는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외부와 협력해서 전혀 새로운 AI를 만들거나 등의 방식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모두가. 아마 애플에게는 "걍 모든 것은 고객을 위한 소재일 뿐"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력도 있고, 체력도 있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애플이 무너지는 시기는, 글쎄요. 아마 지금의 정국은 아닐 거라는데 조심스럽게 한표 던지는 이유입니다.
+애플이 오픈AI나 구글과 AI 협력한다고 애플의 AI 기술력이 후달린다는 뉴스들이 많은데...이건 좀 위험한 발상인듯 합니다. 몇몇 기사는 애플의 AI가 온디바이스 AI를 체화한 삼성전자에도 뒤진다는 기사도 있던데 이건 좀 후덜덜. 삼성전자 온디바이스 AI는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스냅드래곤8 3세대의 퀄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구글에게 상당부분 지분이 있습니다..서클 투 서치는 삼성전자 기술이 아니에요..
++바이두와의 협력은 기술적 측면의 협력이 아니라 아이폰의 중국 시장 점유율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중국은 외산 AI를 탑재한 하드웨어를 못팔거든요...현재 중국에서는 오픈AI 챗GPT 못씁니다. 그러니 바이두와 협력하는건 일종의 현지화 정책으로 봐야할 듯.
+++저 애플 안좋아합니다. 갤럭시 쓰고 버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