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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Deadly Venom Jul 02. 2019

문득 외로움이 몰려오는 이유

외로움의 메커니즘에 대해 고민해 보자면

가끔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실제로 아무도 없는 건 아닌데, 나를 신경 쓰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느낀다. 이런 게 외로움이다. 지금 너무 기분이 안 좋으니까 누가 나한테 와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봐주길 바라며 다른 이들의 눈을 바라봐도 아무 대답이 없다.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흔히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쓰면서 만원 지하철 사진 같은 걸 올려놓곤 하는데, 당연한 걸 갖고 예술적인 척하지 마라.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챙겨준다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사회다. 솔직히 사회 탓하는 것도 웃기다. 본디 사람은 남의 삶에 별로 관심이 없고 제 살기 바쁘고, 남보다 자기 일이 더 중요한 게 당연하다. 본능이다. 


옆사람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박살 나도 나는 여자 친구와 통화하느라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수화기에 대고 누가 들을까 겁나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다. "헐. 어떡해. 방금 옆사람 액정 아작 났어." 남의 소소한 불행에 공감하고 신경써주기보다는 나의 이야깃거리를 챙기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이게 과연 현대인들만이 가진 최신식 부덕일까? 석기시대의 네안데르탈인들도 아마 남의 돌도끼가 깨지든 뼈 창이 부러지든 별 신경 안 썼을 거다.


실은 '시장 인심'도 옛말이라고, 요즘 시장은 인정 느끼기엔 너무 정신없다.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 옆에서 가만히 신문을 보던 사람에게 "저 방금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요."라고 말을 걸어 본다 치자. 그는 연민의 눈빛 대신 의아한 표정을 지을 거다. 물론 어쩌면 아재들만큼은 "저런..."이라고 운을 띄우면서 "나도 대학생 땐 말이야..."라며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넘어선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내 외로움 돌려내.


나 역시 얼마 전 회사에서 이런 고독함을 느꼈다. 외로움이라고 표현하면 좀 없어 보이니까 고독이라는 멋있는 말을 쓰기로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회사에서 후배들은 나를 '인간적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부서의 파트장을 맡고 있기에 나의 업무력에 대한 만족도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다들 서슴없이 대하는 걸 보면 '그래도 내가 인간적으로 미달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항상 내 편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편'이 있다고 느끼던 내가 문득 고독을 느낀 이유는 이랬다. 나는 원래 "잘한다"라고 칭찬하면 힘이 솟아서 더 신나게 일하는 타입이고, "못 한다"라고 하면 의기소침함이 마룻바닥까지 뚫고 내려가 맨홀에서 반신욕 하는 스타일이다. 당연히 눈치도 많이 보는데, 그 날은 나의 인사이트와 능력으로 풀어낼 수 없는 어떤 과제가 내게 하달됐고, 나는 어리버리를 탔다.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혹은 생각하는 듯한 동료들과 헤드의 시선이 느껴졌고 나는 급속도로 외로워졌다.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으며 맥없이 마우스를 휘젓고는 주변을 의식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았다. 눈을 마주쳐도 '뭐야 저 한심한 새끼'라며 질책하는 것 같았다. "저 질문이 있는데..."라고 팀장에게 운을 띄우면, "네... 또 뭔가요"(공기 반 소리 반, 맥 빠지는 사운드)라는 대답이 돌아오니 내가 설 곳이 없는 것 같았다. 문제는 모든 느낌이 그저 '같았다'는 것이다. 팩트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방콕에서 만난 짜뚜짝 시장의 강아지는 외로워 보였지만 쌍커풀이 있어 부러웠다.


외로움은 자존감과 직결되어 있다.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면 인간은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자신의 쓸모가 증명되지 않으면 타인들이 나를 하찮게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이런 쓸모없는 나를 케어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어", "다들 나를 싫어해."라는 식의 우울감에 빠져들고, 결국은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어"라는 결론을 내린다. 요게 매일 반복되고 심해지면, 누군가는 사표를 쓰기도 하고, 심해지면 요단강 위에 세팅된 마포대교를 찾아가기도 한다.


이 과정을 삼단논법으로 재구성하면 1. 자존감이 낮으니 내가 하찮게 느껴진다. 2. 사람들은 하찮은 사람을 무시한다. 3. 그러므로 사람들은 나를 무시한다.로 귀결된다. 무서운 비약이다. 피평가자가 스스로를 평가하면 객관성과 정확도가 떨어지는 법. 타인이 나를 싫어하는지 아닌지를 타인이 아닌 내가 판단하면, 그것은 팩트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를 지혜로운 우리 선조들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라고 표현했다. 혼자 지랄하고 자빠졌다는 거다.


그러니 이를 종합해 결론을 내리자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자존감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무슨 짓을 해도 떳떳한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섬뜩하지만 사이코패스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큰 감정적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 거다. 이런 사람들은 원래부터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신경 엄청 쓰는데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완벽하니, 다들 나를 좋아한다고 느낄 것이고, 나는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오력하는 스누피짱. 외로울 땐 함께 불러보자.


외로움이 두렵다면 빙썅이 되거나 자기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뭐 이런저런 게 있지만, 내가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 내기만 하면 된다. 모 유튜버는 한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빠졌을 때 혼자서 아주 괜찮은 요리를 해 먹으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맛있는 요리를 할 줄도 알고, 이런 맛있는 요리를 먹을 가치가 있어." 라면서 자존감을 회복했다는 거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으로 '평소 할 수 있지만 안 한' 일을 하거나, '안 하기로 했는데 자꾸 하게 되는 걸 안 하기'를 시도해 보자. 졸라 복잡해 보이지만 뭐 이런 거다. 브런치에 하루에 하나씩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한 지 일 년 째라면 정말 오늘 하나쯤 써 본다든가, 오늘만큼은 정말 코를 안 팔 거야 라고 생각하고는 실제로 코에 검지를 안 넣는 거다.


만약 오늘따라 문득 고독함과 외로움이 밀려온다면, 사소한 목표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실현하며 내 가치를 발견하자. 이렇게 장황하고 불쏘시개 같은 글이라도 완성하고 나니, 몰려왔던 고독함이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오늘은 푹 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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