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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ilet Sep 02. 2020

하지만 난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

다.


위 긴 제목 외에는 분명한 나의 의도를 드러내는 제목을 뽑을 수가 없었다. 나의 능력이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아이를 어쩌고 하는 자식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어떻게 감질나게 상징적으로 꼬아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30살이 넘도록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가 지난 1년 전 헤어지기 전까지 나는 결혼을 예정에 둔 사람이었다. 그러니 쉽게 말해 독신주의자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어 졌던 것이다. 평생 이 사람과 살아도 크게 아플 것 같지 않았고 크게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 두 가지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이별한 후 지금, 여전히 결혼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다. 여기서 거의라고 말한 것은 5% 정도 어쩌면 내가 먼 훗날 아이를 갖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열어두고 싶어서다. 일단 엄마의 자격 뭐 아빠의 노릇 이따위를 떠나서 육아는 체력과 경제적인 문제를 긴밀히 동반한다. 두 가지의 대한 충족은 나에겐 없다. 체력도 돈도 없다. 모아둔 자산은 빚뿐이며 나는 나를 위해 매일매일 투기를 한다. 일시적인 기분을 만족하기 위해 말이다. 체력은 저질로 유명해왔다. 운동은 즐기지만 체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 두 부분은 나는 탈락이다. 그럼 배우자가 체력과 경제적 능력이 출중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딱히 그렇다고는 못하겠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 앞으로 더 획기적인 바이러스들이 그 망해감에 가속도를 더해줄 전망이라는 내 예상은 비단 나만의 디스토피아적 망상이 아니다. 이러한 세상에 내 후손을 내려두고 나는 죽음의 버스를 타고 떠난다라. 이게 맞는 걸까. 아무리 내가 좋은 부모가 되고 경제적으로 출중해 자식이 원하는 것들을 해주고 정서적으로 잘 키웠다고 했을 때, 앞으로 200년의 삶이 과연 어떤 장르 세상으로 펼쳐질지. 그 세상에서 내 자식은 살아남긴 할지. 그 누구가 장담할 수 있겠는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떠올려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닮은 미니미를 만든다? 그런 생각은 일시적인 흥분에 의해 낭만적 상상이 그려진 것이 아닐지.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솔직한 나의 바람은 나는 남자와 평생 살기보다 여자와 파트너를 이뤄 평생 함께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레즈비언이 좋다는 게 아니라 여자와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집에서는 함께 머무는, 함께 휴식을 즐기고 미래를 설계하는, 자식을 낳을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여자와 짝을 이뤄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적당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성생활이나 취향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 우리는 꼭 이성을 만나 평생을 살고자 약속을 하는 것인가. 그게 애초부터 번식을 위한 것인데 더 이상 인류가 번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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